#UnwantedIvanka, 왜 이방카 트럼프는 '조롱'의 대상이 됐나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7.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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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깜짝 회동’이 이뤄진 가운데, 손을 맞잡은 두 정상 못지않게 이목을 끈 인물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부터 비무장지대 (DMZ) 방문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일정 대부분을 함께하며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판문점에서 남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함께 북한 땅을 밟은 뒤 기자단에게 “비현실적이었다 (surreal)”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주요 행사마다 트럼프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며 ‘비공식 외교관’을 자처하는 이방카의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별다른 외교 경력도 없이 각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대화에 끼어든다는 비판과 조롱이 줄을 이었다. 지난달 29일 프랑스 엘리제궁이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20초 분량의 영상이 특히 논란이 됐다. 영상에는 이방카 보좌관이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담겼다.

 

대화 도중 메이 총리가 “경제적인 측면을 공략하면 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 (As soon as you charge them with that economic aspect of it, a lot of people start listening who otherwise wouldn’t listen)” 이라고 발언하자 라가르드 총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직후 이방카 보좌관이 “남성 위주로 이루어진 국방 분야도 마찬가지 (And the same with the defense side of it, in terms of the whole business that’s been, sort of, male-dominated)” 라며 맞장구를 쳤을 때 보인 라가르드 총재의 리액션이 화제가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라가르드 총재가 이방카의 다소 뜬금없는 끼어들기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startled-looking)” 며 대통령의 딸과 대화하는 상황에 “짜증이 났음을 보여주는 것 (suggested irritation at finding herself standing alongside the daughter of the U.S. president)”이라 주장했다. CNN도 해당 영상을 소개하며 이방카의 “어마어마한 교만함 (arrogance that was truly breathtaking)”을 보여주는 예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네티즌들도 가세했다. 너나할 것 없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에 이방카의 모습을 끼워넣은 패러디 작품들을 내놓았다. ‘눈치없는 이방카 (#UnwantedIvanka)’ 해쉬태그와 함께였다.

#UnwantedIvanka로 검색한 결과 나온 이미지.

 

이방카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에 국내 언론도 주목했다. 중앙일보는 7월 1일 <짜증나는 듯한 라가르드···G20 간 이방카 치욕의 '19초 영상'> 제하 기사를 내보냈고, 다음날 국민일보 <‘눈치 없는 이방카’ 조롱 ‘#UnwantedIvanka’ 해시태그 확산’>, 조선일보가 <"G20 이방카, 어른 식탁에 끼고싶어하는 애 같았다"> 뒤를 이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주로 인용, 외교 경력이 사실상 전무한 이방카 보좌관의 ‘굴욕’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CNN과 워싱턴포스트의 논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국내외 언론의 주장처럼 이방카는 정말 ‘굴욕’을 당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 수 없다. 영상에 대화의 전체 맥락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엘리제궁에서 공개한 영상은 20초가량으로 매우 짧다. 메이 총리의 발언에 이방카 보좌관이 한 마디 보태는 장면이 담겼을 뿐이다. 메이 총리 바로 다음 이방카 보좌관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라가르드 총재의 고개가 갈 곳을 잃은 듯 좌우로 빠르게 흔들리고 (영상 13초), 이후 라가르드 총재의 시선이 왼쪽의 이방카가 아닌 정면을 향하는 것이 관점에 따라서는 다소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15-17초).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는지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라가르드 총재의 일회적인 반응만을 근거로 이방카 보좌관의 외교적 지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화의 주제, 장소와 분위기 등에 따라 바디 랭귀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이방카 보좌관이 7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에서 라가르드 총재는 이방카 보좌관과 똑바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16-18초, 29초). 대화에 몰입한 듯 양손으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한다 (32초). 일차적으로 외신이 트럼프 행정부의 ‘족벌주의 (nepotism)’를 공격하기 위해 지극히 단편적인 자료를 가지고 입맛에 맞는 내러티브를 생산했고, 국내 언론이 거기에 편승하여 가십성 기사를 잇달아 내보낸 것이다.

 

 

당시 '이방카 패싱'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방카에 대한 조롱이 터져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딸이라는 이유로 백악관 선임 보좌관에 임명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 배경이다. 미국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 첫해 남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논란이 일자 1967년 '친족등용금지법'이 제정됐는데, 해당 법은 행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직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백악관 참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방카가 백악관 선임 보좌관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이방카 보좌관과 쿠슈너 선임고문 부부의 ‘자격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 가운데는 심층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한 생산적인 비판도 다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부의 이해 충돌 의혹이다. 이방카 보좌관은 아버지 소유 트럼프 기업의 CEO로 재직했으며 작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를 운영했다. 쿠슈너 고문도 거물 부동산 재벌가의 장남으로 기업의 국내외 개발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퇴임 이후 언제든지 일선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개인 사업체가 해외 이권에 개입해 있는 가운데 부부가 외교 최전선에 나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6월 가디언은 쿠슈너의 백악관 입성 이후 해외 투자자들이 쿠슈너가 지분을 갖고 있는 부동산 기업에 9천만 달러 (한화 약 1000억) 이상을 투자했다고 전했다. 장인인 트럼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해외 고위급 인사들과 주기적으로 접촉하는 쿠슈너 고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방카 역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년 10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로부터 16건의 상표권 등록 허가를 취득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가족의 사익 추구를 위해 관련 경험이 없는 친족을 외교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렇듯 이방카 보좌관의 다소 ‘뜬금없는’ 정상 외교 뒤에는 트럼프 일가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충돌 문제가 존재한다. 철없는 대통령의 딸이 주제넘게 행동하여 벌어진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태생부터 ‘공사 구분’이 확실치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정치적인 맥락은 빼 놓은 채 흥미 위주로만 소식을 다룬 국내 언론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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