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금지, '상식'이 서로 달라 문제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7.1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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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16일부터 적용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예방과 징계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법으로 규정함으로서 괴롭힘 근절의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직원 5명 이상의 모든 회사에 적용되며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6개월의 유예기간 뒤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기준은 ‘상식’

개정된 근로기준법 76조 2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①직장에서의 지위·관계상 우위를 이용했는지 여부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여부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는지 여부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지위를 이용해 업무범위 넘어 고통을 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됩니다.

문제는 어떤 게 지위를 이용한 것이고, 업무범위가 어디까지이며, 고통이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을 보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는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 통념상 문제가 있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사회통념, 즉 상식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법에 처벌조항이 없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신고되면 회사가 절차를 밟아 이게 괴롭힘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알아서 징계하라는 겁니다.

 

2. 독려는 괜찮다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회 통념’의 모호함 때문에 법 시행 전부터 노사간 해석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은 지난 10일 ‘저성과자 성과향상 촉진 조치와 괴롭힘 구별을 위한 판단요소’ 20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기준에 따르면 공개적인 비난, 성과향상과 무관한 지적과 질책, 인격에 대한 부당한 평가, 신체·정신적 폭력은 괴롭힘이고, 저성과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주며, 명확한 성과 목표를 제시했다면 정당한 독려 행위라고 해석했습니다.

경총은 독려행위에 대해 굉장히 이상적으로 기술을 해놓았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대부분은 성과와 관련된 압박입니다. 경총은 성과를 위한 독려는 괴롭힘이 아니라고 미리 선을 그은 것인데,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는 이 기준을 적용하면 직장내 괴롭힘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법이 적용에 들어가면 초반엔 상당히 시끄러울 소지가 있다는 거죠.

 

3. 문제는 사장님

'회사에 신고를 하면 회사가 조치를 한다' 이 시스템에서 가장 큰 허점은 회사 대표, 바로 사장님의 갑질입니다. 회장님, 사장님이 괴롭혔다고 회사에 신고해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사례를 보면 경영진의 괴롭힘을 고발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계속 갔을 겁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이 엇갈릴 때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것도 실질적 구제를 어렵게 하는 점입니다.

법 시행으로 갑자기 직장 문화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소위 직장에서 ‘쪼는 것’도 괴롭힘이 될 수 있단 걸 인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15일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모른다는 직장인이 6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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