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언론들..."어느 나라 언론인가" 지적도

  • 기자명 민주언론시민연합
  • 기사승인 2019.07.2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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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2012년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 7월 1일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경제 보복 이유에 대해 말을 바꾸며,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폭거에 정부와 기업은 국산화 추진과 소재·부품의 탈일본 등 대책을 모색 중이고, 민간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민언련이 앞선 보고서 <일본 경제보복 보도로 친일역사에 한 획을 더한 조선일보>에서 지적했듯 일부 언론들은 사건 초기부터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본이 청구권협정 이유로 경제보복한 것 자체가 황당한 일

이번 일본 경제보복의 발단이 된 것은 대법원이 2018년 전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으로 5년이나 끌어오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에 대해 확정판결을 내놓은 사건입니다. 일본은 그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기 싫어 65년 청구권협정 당시 한국에 제공한 물자는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자금이라고 주장해 왔는데요. 그러면서도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해 피해자들이 소송을 할 때마다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까지 모두 해결됐다’는 이중적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대법원도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2018년 재상고심 판결문(201361381)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닌 강제동원에 대한 위자료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다음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목적에 대해 한·일 양국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전제한 뒤,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한 것이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점, 한일협정 협상과정에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아 배상금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부인하여 한일 양국이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을 들어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판시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같은 이유를 들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국제법 학자들이 있는 판국입니다.

 

한일 청구권협정 최대한 일본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언론들

따라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65년 청구권 문제를 이번 경제보복의 원인으로 언급하면서도, “개인청구권 문제까지도 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은 일본 측의 주장이라고 명시하였습니다. 그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한국경제의 일부 기자칼럼은 단순히 일본 측 주장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신문사 스스로 일본 측의 억지주장을 받아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7월 8일부터 청구권 협정에 대한 입장을 언급한 대표적인 의견기사들과 주요 내용입니다.

 

조선일보는 사건 초기부터 기사 곳곳에서 청구권 협정에 대해 일본 총리실 관보를 방불케 하는 주장을 계속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기사 중 단연 특기할 만한 기사는 중앙일보의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전영기 논설위원이 쓴 <시시각각/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7/15, 전영기 논설위원)이었습니다.

 

나가도 너무 나간 중앙일보 논설위원 칼럼

칼럼의 내용은 ‘총체적 난국’입니다. 전영기 논설위원은 우선 “요즘 상황은 한국의 대법관들이 첫 단추를 이상하게 끼우는 바람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 발생 원인의 상당 부분을 한국 측이 제공했다는 인식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며 출처가 의심스러운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2012년 대법원 판결문(200968620)을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 일제 한반도 지배는 합법이라는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의 칼럼(7/15)

 

2012년 5월 24일 당시 김능환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대법원 소부의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파기 환송 판결문과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세계 일반의 상식과 법의식에 부합하는 논리의 자연스러운 전개는 찾기 어렵다. (중략) 예를 들어 2012년 판결문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며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헌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우리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선포”한 사실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법에서 국가의 법적 효력은 운동이나 선포로 확립되지 않는다. 영토·국민·주권의 3대 요소가 실체적으로 존재해 이를 국제사회가 승인함으로써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권은 헌법과 입법·사법·행정 3부가 실제로 작동하고 독립적인 군사력과 외교력을 갖춘 권력이다.

이에 따라 2012년 판결문의 취지 “1919년 한국이 건립되었으니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는 국제법적으로는 전제 불성립의 오류로서 국제사회에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중략)

민족적 감성을 앞세운 주관주의적인 오류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은 1965년 발효된 한일 청구권 협정 중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2조에 대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해 거기에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시켰다. 신규 범주는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따른 법적 배상 청구권’을 당연히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설정됐다.

그런데 국제법적 진실은 패전국한테 ‘법적 배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승전국’밖에 없다. 한국은 국제법상 일본에 승전국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배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관계였다. (중략) 사정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2018년의 대법관들은 법적인 배상 청구권을 기어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논리적 귀결은 ‘일본과 전쟁해서 승전국이 되어라’하는 얘기다.

 

말은 복잡하지만, 쉽게 말해 한국은 국제법상 1948년 건국되었고 그 전엔 없는 나라였으니 식민 지배는 ‘국제법 상’ 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1910년 쯤 아무것도 없던 한반도에 진출해 1945년까지 그냥 눌러 살았다는 것이 ‘국제법적인 판단’인지 의문이고, 한국 대법원이 한국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민사사건 판단을 하는데 한국 헌법을 따르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법을 근거로 판결을 하라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위 주장을 전제로 하여 나온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법적 배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전영기 논설위원이 대법원 판결을 읽은 것은 맞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 논설위원은 대법원이 한일청구권 협정 2조를 피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했다고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문은 조약해석의 원칙에 입각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된’ 것에 강제동원이라는 불법행위에 기한 위자료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을 뿐입니다.

또한, 전 논설위원은 법적인 배상금은 승전국밖에 행사할 수 없으니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전쟁배상금’이 아니라 ‘강제동원과 착취에 대한 위자료’라는 점을 못박았습니다.

 

“이래서 토왜, 토왜 하는구나”라는 말 밖에는…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칼럼 <기자의 눈/이래서 토왜토왜 하는구나>(7/15) 역시 이 칼럼을 비판했습니다.

박세열 기자는 “강제 징용 문제의 핵심은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불법 행위를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쟁 범죄 등에서 파생된 무수한 반인도적 범죄(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등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훼손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일본이든, 한국이든)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천인공노할 범죄까지도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국가간 협약의 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한국의 대법원이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70년 대법원의 권한을 일개 칼럼니스트가 꾸짖고 나무란다. 이런 칼럼이 소위 '보수 언론'에 실린다는 게 부끄럽다. 언론에 의해 '토왜'라는 말이 100년도 더 전에 사용된 이래로, 아직까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며 비판했습니다.

‘토왜’라는 표현은 일본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각이 들어간 단어로써 지양해야 할 표현이지만, ‘식민지배가 합법이고 일본과 전쟁해서 못 이겼으니 그 과정에서 고통받은 한 개인도 입을 닫는 것이 명백’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읽고 있으면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토왜’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징용공 표현 유감

일부 언론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일본 내에서 쓰는 표현인 ‘징용공’이라고 호칭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징용공이라는 표현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며, 따라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전쟁물자 생산에 강제로 동원한 근거인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동원 과정에서 불법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제징용’이 아니라 ‘징집된 직공’이 되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이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단체조차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일 정도입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가리는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강제성마저 희석시키기 위해 ‘징용’이라는 말도 빼고 ‘한반도출신 노동자’를 정부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징용’이 한국 대법원 판결문에 명시된 공식 용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징용공’이라는 표현은 지양하고 ‘강제징용/강제동원 피해자’로 바꿔 호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이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언론이 청구권 문제의 책임소재를 어느 나라에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은 ‘징용공’을 쓴 일본 측 인사들의 말을 인용할 때도 괄호 안에 ‘강제징용’이라는 말을 병기하는 모습을 보여 돋보였습니다. 다른 언론들은 기사에 따라 ‘강제징용’을 병기하기도 하고 ‘징용공’을 그냥 쓰는 경우도 보여 용어가 통일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는 신문사 스스로의 주장을 보여주는 기자칼럼과 사설에서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써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7월 1일~2019년 7월 1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별지섹션은 제외)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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