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명검들'은 운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 기자명 우보형
  • 기사승인 2019.08.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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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8일, 아시아경제는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코너에 <천하제일의 명검들, 모두 '운석'으로 만들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제목부터 조금 도발적이던 이 기사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철제 단검을 시작으로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검으로 알려진 '간장막야(干將莫耶)', 중동은 물론 인도, 유럽 등 모든 문명권에서 운철로 제작한 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손꼽혔다."는 운철검 찬양론과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강철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동양에서는 중국 진나라 시대 이후,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 이후다. 신성한 철이 보편화되면서 전 세계 전쟁터의 룰도 크게 바뀌어 소수 귀족들만의 전차, 기병전에 불과했던 전쟁은 규모가 거대해지기 시작했다."는 강철 무기 보급에 따른 전쟁 양상의 변화를 말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내용 모두가 다루는 범위가 큰 데다 심대한 오류를 안고 있다. 이번 글은 주로 운철검에 대한 것을 다루기로 한다.

 

투탕카멘 철제 단검에 대한 팩트체크

우선 첫 번째 사례로 들었던 투탕카멘 철제 단검에 대한 이야기부터 부정확하다. 아마도 아시아 경제는 아마도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하여 해당 내용을 다음처럼 언급했다.

“지난 1925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황금마스크만큼 큰 관심을 받았던 유물은 단검 2자루였다. 3000년이 지나도 조금도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은 이 검은 철제 단검이었으며, 당시에는 이집트에 아직 철제기술이 도입되기도 전이라 학계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 해당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것은 지난 2016년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과 피사 대학, 이집트박물관 연구진이 해당 단검을 X선 형광분석법 등을 이용해 구성성분을 분석한 뒤였다. 분석결과 해당 철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그중에서도 철의 함유량이 극도로 높은 '운철(meteoric iron)'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철제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철제단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이었던 셈이다.”
-<천하제일의 명검들, 모두 '운석'으로 만들었다?> 기사 중 투탕카멘 단검 서술

 

하지만 기사가 인용한 연합뉴스 기사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2016년 6월 2일자로 영국의 가디언이 게재한 “투탕카멘 무덤에서 나온 단검은 운철로 만들었다. Dagger in Tutankhamun's tomb was made with iron from a meteorite”라는 제목의 기사를 번역, 요약한 것으로 가디언 기사는 그 주에 운석 및 행성 과학Meteoritics & Planetary Science 저널에 실린,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의 다니엘라 코멜리Daniela Comelli 피사 대학의 마시모 도라치오 Massimo D’orazio, 카이로 박물관의 마흐무드 엘할와기Mahmud El-halwagy 등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와 이집트 연구진들의 투탕카멘의 철제 단검의 운철 기원The meteoritic origin of Tutankhamun’s iron dagger blade이란 제목의 논문을 소개하고 관련된 연구자들을 인터뷰한 것이다.

 

1. 아시아 경제는 “지난 1925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황금마스크만큼 큰 관심을 받았던 유물은 단검 2자루였다. 3000년이 지나도 조금도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은 이 검은 철제 단검이었으며, 당시에는 이집트에 아직 철제기술이 도입되기도 전이라 학계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고 말한다, 마치 철제 단검 2자루가 발견된 것 같다. 반면, 가디언 기사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1925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3,300년 전에 미라가 된 십대 왕과 함께 묻힌 단검 두 자루 (하나는 철제 날, 다른 하나는 금제 날을 가졌다)를 발견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폼멜과 백합으로 장식된 금제 칼집이 있는 철제 날을 가진 단검은 카터의 발견 이래 수십 년간 고대 이집트에서는 철기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던 연구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어 왔으며 단검의 날은 녹슬지 않았다.”며 발견된 단검의 모양, 쟁점이 되는 부분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림1. 화살표의 단감이 논의의 대상인 철제 날을 가진 단검이다.
그림2. 위쪽이 금으로 된 날, 아래쪽이 문제의 철제 날을 가진 단감이다.

 

2. 이어 아시아 경제 기사는 “해당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것은 지난 2016년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과 피사 대학, 이집트박물관 연구진이 해당 단검을 X선 형광분석법 등을 이용해 구성성분을 분석한 뒤였다. 분석결과 해당 철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그중에서도 철의 함유량이 극도로 높은 '운철(meteoric iron)'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철제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철제단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이었던 셈이다.”라고 이 기사의 의미를 말하지만 가디언 기사의 어조는 좀 다르다. “이탈리아와 이집트 연구자들아 금속의 화학적 조성을 정의하기 위해 X선 형광분석법을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니켈과 코발트의 함유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이것은 “해당 철광이 외계에서 온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연구자들은 이집트 홍해 주변 2,000km 이내에서 발견한 운석들과 그 성분을 대조했고, 그 중 하나의 성분이 거의 동일함을 밝혀냈다. 하르가, 또는 카르가Kharga로 명명된 이 운석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240km 떨어진 항구도시, 메르사 마트루Mersa Matruh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르사 마트루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대인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아무니아Amunia로 불렸다.”라고 재질이 운철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X선 형광분석법을 통해 성분을 확인했으며. 운석들을 대조하여 실제로 그런 운석이 있었음 – 물론 그 운석으로 만들었단 이야기는 아니다. - 을 확인해준 것이다.

 

3. 아시아경제 기사는 운철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 단검의 고고학적 의의 또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반면 가디언 기사는 “기원전 4천년 이래 사람들은 구리, 청동, 금 등을 이용해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제철 기술은 훨씬 뒤에 등장했기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드물다. 2013년, 이집트 북부의 나일 강 근처 묘지에서 발굴된 9개의 검은색 철제 구슬들도 운석의 조각에서 나온 니켈 - 철 합금 재질이었다며 고대 이집트의 철제 유물 사례는 오직 이 두 가지뿐이지만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훌륭한 장식품이나 또는 의식용 물건의 생산을 위해 운철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추측한다는 투탕카멘 단검의 연구진의 성과를 빌어 그 의의를 말한다. 또한 해당 연구진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암석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가설을 갖고 있었다며 그들은 운철로 만든 단검의 발견은 기원전 13세기경의 고대 텍스트에서 사용된 "철"이라는 용어를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온 철.”이라는 의미로 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헌상의 철은 모두 이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13년 네이처에 운석 비즈에 대한 연구 논문을 게재했던 맨체스터Manchester 대학의 이집트 학자 조이스 타이드슬레이Joyce Tyldesley의 “칼날의 높은 품질로 볼 때 청동기 시대의 마지막 단계에 살았던 투탕카멘은 물질의 상대적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철공 공인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발언을 빌어 후기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BC 14~13세기의 이집트 장인들이 최소한 운철을 가공할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어차피 운철이 대기 마찰과 그 마찰열을 통해 제련 및 정련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칼의 모양으로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 가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기술적 문제인데 아시아경제 기사는 그 부분을 지적하지 못했다.

 

춘추시대 제일의 명검 간장, 막야는 운철로 만들었을까?

기사가 운철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검의 두 번째 사례는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검이라고 알려진 '간장干將, 막야莫耶'다. 기사는 긴장, 막야에 대해 아래처럼 쓰고 있다.

투탕카멘의 단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운철로 제작된 운철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손꼽혔다.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검으로 알려진 '간장막야(干將莫耶)' 역시 전설상에서 운석을 제련해 만든 검으로 알려져 있고, 중동은 물론 인도, 유럽 등 모든 문명권에서 운철로 제작한 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손꼽혔다.
천하제일의 명검들, 모두 '운석'으로 만들었다? 기사 중 간장, 막야 서술

문제는 '간장干將, 막야莫耶'가 실물이 전해지지 않는 전설상의 검이라는 점이다, 실물이 존재한다면 직접적인 검증이 가능할 텐데 이게 불가능하다. 거기에 간장, 막야에 대해 언급한 대표적인 기록들도 검들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불분명하다. 간장, 막야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인 오월 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은 긴장이 오산의 철정鐵精,육합의 금영金英으로 검을 만들었다 하고, 순자荀子 성악편性惡篇에 주석처럼 붙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 수신기搜神記에서는 만드느라 3년의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검을 무엇으로 만들었다는 언급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오월 춘추의 월절越絶 외전外傳 기보검記寶劍 편에도 간장의 이름이 나오지만 구야자와 함께 검을 만드는 장인으로 나올 뿐, 정작 검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다. 또한 보검을 평하던 설촉薛燭이 순균純鈞 혹은 순구純鉤의 가치를 말하는, “천년 적근산의 산이 무너지며 나온 주석과 약아 강의 강물이 마르며 나온 구리로 우사가 물을 뿌려 땅을 쓸고 뇌공이 풀무질을 했으며 교룡이 용광로를 받쳐 들고 천제가 친히 숯을 재고 천신 태일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구야자가 하늘의 정기를 받들어 자기의 재주와 기교를 다해 장검 셋, 단검 둘을 만드니 이들이 담로湛盧 혹은 잠로潛盧, 순균純鈞 혹은 순구純鉤, 승야勝耶 혹은 승사勝邪, 어장魚腸, 거궐巨闕이다.” 구절이 묘사하는 제법은 철검이 아니라 청동검의 것이다. 단 후반부에 초왕이 구야자와 간장을 청해 만들게 한 검 세 자루, 용연龍淵, 태아泰阿, 공포工布는 그 제법으로 볼 때 철검으로 추정되지만 그 또한 운철로 만들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고학적으로는 그 반대의 증거가 나타난다. 아래 사진으로 보이는 월왕구천검이다.

그림3. 월왕구천검

 

1965년 12월에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 성의 초나라 고분에서 발견된 이 검은 구리와 주석으로 만든 청동검으로 길이 55.7cm, 검신에는 마름모꼴 무늬가 새겨져 있고 검신 표면에는 월왕구천자작용검(越王勾踐自作用劍)이라는 문구가 전서체의 일종인 조충전으로 새겨져 금으로 채워져 있는데, "월나라의 왕 구천이 스스로 쓰기 위해 만든 검이다."라는 의미다.

 

그림 4. 월왕구천검에 새겨진 명문. 월왕XX자작용검(越王勾踐自作用劍). 월나라왕 아무개가 스스로 쓰기 위해 만든 검이라는 의미로 월왕XX자작용검이란 것에는 쉽게 의견이 일치했지만 왕의 이름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하다가 결국 구천으로 비정되었다고 한다.

이 검은 오왕吳王 부차의 모矛와 함께 초(楚)나라의 묘에서 같이 발굴되었는데 오왕 부차의 모와 함께 월나라가 보관하다가 오와 월이 초에 멸망당한 뒤 초나라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히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만일 이 시기에 이 검을 능가하는 운철검이 존재했다면 – 심지어 운철검은 녹도 잘 슬지 않는다. - 그 편린이 남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실 간장, 막야가 운철검이었다는 이야기는 중국의 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시아경제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구절이라 대체 그 출전이 어디인가 궁금해질 때가 많았다. 만일 이 이야기의 출전이 있는 것이라면 다음 기사쯤에는 그것을 밝혀도 좋지 않을까?

 

운철로 만든 검이 전쟁에서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었을까?

기사는 “운철검은 하늘의 선택받은 지도자, 왕, 황제들의 검으로 애용됐다.”고 주장하지만 의외로 운철검은 역사적인 문헌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운철검들이 전장에서 위명을 떨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투탕카멘의 철제 단검은 전체 길이 34.2cm, 날 길이는 20cm 정도고, 금제 단검은 전체 길이 31.9cm, 날 길이 20.1cm 정도다. 인도 무굴 제국의 자한기르Jahangir의 운철 단검이나 인도네시아 크리스들 역시 전체 길이 3~40cm, 날 길이 2~30cm 정도가 고작이다. 이에 반해 월왕구천검은 전체길이 55,8cm, 날 길이 47.3cm, 날 폭 4.8 3cm, 무게 875그램 정도고 전투용 검으론 조금 짧다는 글라디우스, 그 중에서도 더 짧다는 폼페이라도 전체 길이 60~65cm, 날 길이 45-50cm. 날 폭 5cm, 중량 700g 정도다. 즉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는 자에게 전투무기로서 운철검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림5. 무굴제국 자한기르 4세의 운철단검. 표면에 운철검 특유의 무늬가 살아있다.

 

그림6. 인도네시아 발리의 크리스. 이 또한 표면에 운철검 특유의 무늬가 살아있다.

운철검으로 만든 장검이 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운철검들 가운데 장검이 드문 이유는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왔기 때문인데 운석이 지표에 떨어지면 그만한 반작용을 일으킨다. 대기와의 마찰로 부서지는 경우도 많고 폭발을 일으키는 일도 흔하다. 장검을 만들 만한 정도의 크기를 가진 운철이 남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혹시나 장검을 만들 만한 정도의 크기를 가진 운석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만큼 반작용 – 폭발이 커진다는 이야기이기에 당대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그건 하늘의 선물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도 있다,

 

다음으로 이 운철검들이 만들어진 것이 의외로 늦다는 점이다. 물론 투탕카멘의 단검은 BC 14~13세기 정도로 매우 오래된 물건이긴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실제로 운철로 검을 만든 사례는 철기가 막 보급된 시기가 아니라 15세기 이후부터 그 이후의 근현대에 걸친 일이라는 것이다. 무굴제국 자한기르 4세의 운철 단검은 1621년 4월에 떨어진 운석으로 만든 것이고, 인도네시아 크리스도 문헌상으론 대략 9세기 중반을 기원으로 한다지만 현존하는 것들은 대부분 15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만일 운철검이 그냥 철검이라면 부식되어 사라졌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운철검들은 니켈의 함량이 높은 철로 만들어진 만큼 부식에 강하므로, 운철검들이 과거에도 그만큼 만들어졌다면 그 발자취가 남아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딱히 과거의 사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결국 기사에 서술된 하늘의 선택받은 지도자, 왕, 황제들의 검으로 애용됐다는 로망 가득한 이야기는 어떤 오래된 전설이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근현대에 신화나 판타지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속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신성한 철이 보편화되면서 전 세계 전쟁터의 룰도 크게 바뀌어 소수 귀족들만의 전차, 기병전에 불과했던 전쟁은 규모가 거대해지기 시작했다.”라는 서술도 다뤄야겠으나 이 글에 뭉뚱그려 담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광범위해서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글에서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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