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아베의 실패'를 왜 '아베 압승'으로 보도했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7.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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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많은 언론이 선거 예상을 보도했다. 상당수 한국 언론이 '아베 압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 근거는 NHK 선거 출구조사였다. NHK는 연립 여당과 일본유신회 등 개헌 찬성 세력을 합치면 개헌 발의선(전체 3분의 2)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많은 언론이 이를 보고 '압승'을 예상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 쓴 예측 기사이기 때문에 틀릴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아베의 승리 기준을 무엇으로 둘지, 그 기준이 합당한지에 대해 검토를 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한국 언론이 일본 국영TV의 논조를 그대로 따라갔다. NHK가 친 정부, 친 여당 성향의 보도를 지속하는 건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표결과를 보면 '압승'과는 거리가 있었다. 

심지어 헤럴드경제는 선거가 결과가 이미 나온 22일 오전 10시대에 <아베 압승…韓기업들 살얼음판>이라는 기사를 냈다. '아베가 압승'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강공으로 나오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한국 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우려는 충분히 경청할만 하지만,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결론이다. 아베가 압승을 하든 패배를 했든 한국 경제에 대한 공세는 계속될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의 승리조건을 '여당의 참의원 의석 과반 확보'로 내걸었다. 총 245석 중 124석이 이번 선거로 뽑혔다. 여당이 확보한 기존 의석이 70석이기 때문에 124석 중 53석만 확보하면 과반이 됐다. 아베의 기준대로라면 이번 선거에서 43% 의석만 차지하면 승리할 수 있는 구조였다. 모든 정당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자민당 지지율을 감안할 때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두번째로 내건 승리 조건은 이번 선거에서의 과반 확보, 즉 124석 중 63석 이상 확보였다. 이 역시 자민당 지지율을 볼 때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런 보수적인 목표 설정은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절대 공격받을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번 선거 승부처는 개헌 지지세력이 개헌 발의선을 확보하느냐 마느냐였다. 개헌선 확보를 목표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자민당과 아베는 끊임없이 개헌선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선거 전략으로 사용했다. 선거 개표가 이뤄진 21일 밤에도 아베는 "(참의원) 결과는 ‘역시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는 국민의 심판이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조금이라도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심 개헌선 확보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 지지세력의 개헌선 확보는 결국 실패했다. 참의원 3분의 2인 164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연립여당 및 일본유신당, 무소속을 모두 합쳐 160석에 그쳤다. 물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개헌에 대해 찬반이 나뉘기 때문에 정확히 몇 명이 현재 개헌에 찬성하는지 확정짓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번 선거는 아베의 승리 혹은 압승이 아니라 '아베의 (패배가 아닌)실패'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은 <아베, 이변없는 승리>였다. 22일 오전 3시에 출고된 기사였다. 역시 이변없는 조선일보 제목이었다. 

 

야후 재팬 화면 캡처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는 개헌선 확보 실패, 자민당의 부진, 그리고 젊은층의 자민당 지지 재확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9석이나 의석을 잃었다. 공명당은 3석 증가에 그쳐 집권여당 전체가 6석을 잃었다. 반면 야권은 14석 의석이 증가했다. 이번 선거에서 전체 의석수가 증가한 점을 감안할 때 자민당은 예상보다 큰 패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투표율은 일본 참의원 선거상 두번째로 낮은 48.8%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정치 무관심과 나쁜 날씨 때문이었다.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가 유리하다는 통설과 다르게 집권 여당이 부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향후 아베 체제가 순탄치만은 않으리란 걸 보여준 것이다. 

다만 자민당에 대한 젊은층 지지율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당시 20%였던 30대 이하 지지율은 현재 40% 안팎이다. 일본 젊은 세대의 보수 우경화가 고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이 젊은 세대의 실업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아베 정권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길게 보면 자민당 집권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임기내에 개헌까지 갈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아베의 자민당 총재 공식임기는 2021년 9월이다. 현재 4연임 얘기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3선이 가능하게 당규를 개정한 것이 2017년이어서 장담할 수는 없다. 아베는 임기내에 개헌 국민투표를 부치겠다는 입장인데, 평화헌법 개헌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 여론이 높다. 게다가 이번 선거 결과 참의원에서 개헌 저지선이 확보됐기 때문에 실제 개헌까지 가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개헌은 임기동안 보수 우익을 결집시키는 용도로 사용하고 '한국과 북한 때리기'로 내부 불만을 바깥으로 돌리는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중재 전까지 아베의 한국 수출 제재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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