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파업' 법으로 제한하니 '오너 갑질'만 늘었다

  • 기자명 이승우 기자
  • 기사승인 2019.07.31 13: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항공사들이 내홍에 휩싸여 있다. 대한항공은 고 조양호 회장 부인 및 자녀의 갑질 문제로 그룹 전체가 흔들렸고,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회장 일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룹이 해체되고 회사가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게 됐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걸까.

항공사 노조에서는 사측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2018년, '물컵갑질 사건'을 계기로 쌓여있던 불만들이 터져 나오면서, 대한항공 직원들은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왔다. '물컵갑질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직원들은 축적되어왔던 불만과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회견, 집회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문제는 '필수공익사업'과 '필수유지업무' 문제. 도대체 이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항공사 직원들의 주장이 타당한 지 살펴봤다. 

지난 5월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화관 계단에서 개최된 대한항공 직원연대 1주년 촛불집회 현장모습. 촬영: 이승우

필수공익사업이란?

필수공익사업과 필수유지업무의 정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1조(공익사업의 범위 등)에 따르면, 공익사업은 공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이고, 필수공익사업은 공익사업 중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어려운 사업이다. 항공운수업은 철도, 수도, 전기사업 등과 함께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어있다. 

필수유지업무는 필수공익사업의 업무 중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ㆍ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이다. 다음 표와 같이 비행기 운항에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들은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한다.

대한항공 등 항공운수업이 처음부터 필수공익사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항공운수업은 2006년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혈액공급사업과 함께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되었다. 노조법 개정 전, 필수공익사업장에서는 노사 조정이 결렬되면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에 부칠 수 있는 직권중재 제도가 적용되었다. 이 제도에 의해 중재에 회부된 사업장의 노조는 15일 동안 파업을 할 수 없었다. 중재안을 거부하고 파업을 하면 불법파업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사전에 파업을 봉쇄하는 직권중재 폐지를 추진했다. 2006년 9월11일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한국노총·경총·대한상의·노동부)는 직권중재를 없애는 대신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넓히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도입하며, 필수공익사업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노사정 대타협’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2006년 12월 노조법을 개정하면서 항공운수업이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되었다. 

이후 정부는 2007년 11월 30일 노조법 시행령을 신설해 각 필수공익사업별 필수유지업무를 발표했다. 항공운수업 사업장에서는 앞서 언급된 표에 포함된 직종들이 포함되었다.

 

파업권 제한하는 필수공익사업장지정과 필수유지업무제도

대한항공 직원연대를 비롯한 항공노동자 노동조합들은 몇 가지 주장을 통해 항공운수사업의 필수공익사업지정과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축소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필수공익사업장 지정과 필수유지업무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법은 파업기간에도 필수유지업무를 어느 정도 유지, 운영 하도록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비행기 운항에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들은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항공노동자들은 파업기간 중에도 일정비율의 운항률을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파업의 목적은 사용자(기업)에게 업무중단으로 인한 부담을 줌으로써 그들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항공노동자들이 파업기간에도 유지해야 해는 운항률은 내륙노선 50% ,제주노선 70%, 국제선 80% 정도로 그 비율이 높아 노조가 파업을 해도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위 수치는 대한항공의 경우이며 다른 항공운수사업장에서도 이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작년 9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개최된 필수유지업무 전면 개정 촉구를 위한 항공·공항노동자 결의대회 현장모습. 촬영: 이승우

실제로 필수공익사업장 법 개정 이후 2016년 대한항공조종사노조에서 합법파업을 실시했을 때 회사의 수익성은 오히려 개선되었다. 관련 연구(이기일·강을영,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위헌성에 관한 연구: 항공운수사업을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제17권 제2호』, 한국노동연구원, 2017.05)에 의하면 대한항공의 수송/공급 데이터를 파업 전후 및 전년도 데이터와 분석한 결과 파업기간 중 국내선의 경우 1~1.5%, 국제선의 경우 3.8~4.1%정도 수익성이 증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과 달리 필수공익사업의 사용자는 노조법에 따라 사업장 파업참가자의 100분의 5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체인력을 채용하거나 도급 또는 하도급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파업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항공운수사업의 필수공익사업지정과 필수유지업무제도가 항공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파업권을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공익이 아닌 이익창출에 활용되는 필수유지업무제도

둘째,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공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창출에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 적용 이후 대한항공조종사노조는 2016년 12월에 7일 간 파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파업에는 국제선을 담당하는 대형기국제선기장조합원들이 참가하였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비수익노선인 국내선항공편을 의도적으로 결항시킴으로써 경영효율화를 꾀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수송/공급 데이터 분석결과 파업기간 중 수익성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이기일·강을영,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위헌성에 관한 연구: 항공운수사업을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제17권 제2호』, 한국노동연구원, 2017.05) 즉, 공익을 위한 필수유지업무의 쟁의기간 중 업무 유지율이 회사의 수익창출에 활용된 것이다.

 

항공사 파업하더라도 업무 대체 가능해

셋째, 항공운수사업은 필수공익사업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필수공익사업은 공익사업 중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어려운 사업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공항에 노선을 운항하는 외국항공사가 80개가 넘는다. 국내선의 경우 2015년 기준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저비용항공사가 54.6%를 담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속철도, 고속버스, 자가용 등의 대체이동 수단으로도 대체 가능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인천공항 발 일부 직항 노선이 막히더라도 1~2시간 거리에 위치한 나리타, 베이징, 상하이 공항을 통한 물류 및 여객 이동이 가능하다. 결국, 한 항공사가 파업하더라도 그 업무의 대체가 가능하다.

 

항공운수사업이 필수공익사업인 국가는 한국뿐?

넷째, 항공운수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한 국가는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9월 공공운수노조 항공·공항사업장 대표자협의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필수유지업무 관련 법안 전면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항공사업 전반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항공운수사업장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의 불필요한 개입을 거두고 과도한 기본권 제한을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 9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개최된 필수유지업무 전면 개정 촉구를 위한 항공·공항노동자 결의대회 현장모습. 촬영: 이승우

국제노동기구인 ILO도 2009년과 2013년, 한국의 필수공익사업 제도와 관련해 “최소 서비스는 공중 전체 또는 일부의 생명이나 정상적인 생활조건에 대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업무로만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재차 권고한 바 있다.

주요 국가들에서 항공사의 파업이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은 해외 항공사들의 상황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6월 대만 2위 항공사인 에바항공이 파업했고, 지난 4월 덴마크ㆍ노르웨이ㆍ스웨덴 3국 합작 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항공(SAS)도 파업을 실시하는 등 올해에도 여러 국가의 항공사들이 파업을 진행했다.

 

*참고문헌

-이기일·강을영,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위헌성에 관한 연구: 항공운수사업을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제17권 제2호』, 한국노동연구원, 2017.05)

-신수정,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쟁점에 대한 제언」, 『노동법포럼 제23호』, 2018.02

-강병원,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장기파업 조장하는 필수유지업무제도 이대로 좋은가」, 필수유지업무제도 10년 평가와 대안 토론회, 2017.03

-공공운수노동조합 항공연대협의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별표1에 관한 입법의견, 2018.07

-공공운수노동조합, ILO 권고에 따른 필수유지업무제도 전면개정 촉구 기자회견서, 2019.06

-전혜원, 대한항공 갑질경영을 견제하려면, 시사인, 2018.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