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알츠하이머병 연구자'도 피해가지 못한 가짜 학회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8.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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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암, 그리고 눈먼 시계공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라 불리는 질병은, 뇌의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뉴런들이 나이가 들면서 사멸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을 통칭한다. 흔히 퇴행성 뇌질환으로 불리는 질병들로는 알츠하이머 외에도 파킨슨씨 병, 루게릭 병 등이 포함되며, 신경과학자들과 의생명과학자들의 상당수는 바로 이 질병들의 치료를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치매는 흔히 선진국형 질병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치매에 걸리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암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증가한 선진국형 국가에서 암과 치매 환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건 필연이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조상은 지금처럼 70세가 넘을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고, 따라서 자연선택은 변화된 현대문명에 대해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자연선택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그저 그 때 그때의 환경에 맞춰 인간의 몸을 수선해 나갈 뿐이다. 도킨스는 그런 의미에서 자연선택을 눈먼 시계공이라 불렀다. 진화의학은 암과 알츠하이머가 현대를 사는 인류에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치료하지는 못한다. 일찍 죽으라는 조언이 질병의 치료법이 될 수는 없으니까. 

 

진화의학에 따르면 암이나 치매 등의 질병은 인류가 오래 살기 시작하면서 갖게 된 부산물이다.

 

알츠하이머 진단과 치료, 험난한 길

현대 의생명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화적 기원 따위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대 의학의 목표는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것이지, 기원을 이해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생물학의 축이 넘어가면서 형성된 의생명과학 패러다임은, 생물학의 연구주제를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인간 질병에 대한 의생명과학적 치료로 전환시켰고, 분자생물학의 시대에 미국립보건성 NIH는 세계 의생명과학연구의 표준으로 거듭났다. 그 전략은 소아마비 백신 개발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결과를 냈지만, 암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미국립보건성은 여전히 암과 전쟁중이며, 모두가 알고 있듯 여전히 암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병으로 남았다.

알츠하이머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미국 의생명과학계가 지난 수십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치료제를 찾으려 노력했던 대표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하기 위한 생쥐가 수도 없이 개발되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신약들이 임상에서 시험되었다. 현재 치매의 발병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 가설을 아밀로이드가설이라 부르며, 변형된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면서 알츠하이머병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얼마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임상실패를 알리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2019년 제약사 바이오젠과 에자이사가 공동개발했던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aducanumab)은 임상실패를 선언했다. 아두카누맙은 항아밀로이드 약물로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에 달라붙어 이를 제거하도록 설계된 특별한 항체다. 아밀로이드가설에 기반해 개발된 항아밀로이드 약물의 임상실패는 한두번이 아니다. 2016년에는 30년간 3조원이 투자된 일라이릴리(Eli Lilly)사의 항아밀로이드용 항체인 솔라네주맙이 임상실패를 선언했고, 일라이릴리사의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밀로이드 플라크는 분명히 감소했지만, 치매증상이 호전되지 않은 환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아밀로이드 가설에 도박을 걸었던 제약회사와 의생명과학자들은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지만,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은 난항 중이다.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한다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아주 이른 시기에 진단할 수 있다면, 치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알츠하이머병처럼 치료제가 거의 없는 질병의 경우에 그런 진단법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의생명과학계에서 치료제 외에 큰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장은 바로 진단키트 시장이다. 인하대학교 최성혜 교수가 쓴 논문 '치매의 임상적 진단'에 따르면, 치매 진단은 1) 인지기능평가 2) 일상생활능력 평가 3) 이상행동에 대한 평가 4) 치매의 중등도 평가, 그리고 5) 치매의 원인 질환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다. 최성혜 교수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알츠하이머병의 생물표지자에 대한 연구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고 따라서 PIB-PET, 타우 단백질, MRI 검사, FDG-PET 등을 종합하면 빠른 시간에 치매로 진행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알츠하이머병 관련 세계 최대 학회인 AAIC(Alzheimer Association International Conference)에서 발표한 한국인 의학자의 연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헬스조선은 "알츠하이머 치매 미리 찾는 검사법 국내 연구진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이 기사를 송고하고, "이 학회의 최대 화제는 알츠하이머병을 혈액검사로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에 대한 한국 의학자의 발표였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의 김태열 기자는 [김태열 기자의 생생건강]이라는 코너를 통해 "국내연구진이 개발한 '치매 조기발견 검사법' 세계최대 치매학회서 비상한 관심"이라는 제목으로 이 뉴스를 전했다.

 

현대의학이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은 이미 상당히 치밀하게 발전해 있다.

 

기사의 주인공은 분당서울대학교 병원 신경과의 김상윤 교수로,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진단을 연구해온 학자다. 헬스조선에 따르면, 아시아 국적 의학자로는 최초로 이 학회의 기조발표에 나선 김상윤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병리 기전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중에서 독성이 있는 올리고머 형태만 선별적으로 검출해 진단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병을 증상 전에 발견하여 조절함으로서 인지기능 장애 등의 증상 발현을 예방하여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발병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보도자료를 인용한 듯, 헬스조선과 헤럴드경제의 기사의 문장은 비슷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보도자료에 있었던 내용에서 발췌한 김상윤 교수의 코멘트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아주 담담한 해석이며 그는 “아무 증상이 없는 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해 기억장애나 인지장애가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적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를 설명한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패러다임이 일시적 증상 호전에서 근본적인 증상 발현의 억제 중심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들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조기진단과 질병초기에 질환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김상윤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려는 시도는 의생명과학계에서는 오래된 주제다. 구글학술검색에서 이 분야에 대해 검색해보면 이미 10년이 넘게 연구되어온 주제인 걸 쉽게 알 수 있다. 구글에서 한글로 "알츠하이머 혈액"이라고만  검색해도 수 많은 기사들이 뜨는데, 올해초 2월엔 서울대 묵인희, 이동영 연구팀이 혈액 한 방울로 최행성 뇌 질환 알츠하이머를 검사한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브레인에 발표했다(과기부 보도자료). 이 뿐만이 아니다. 2017년엔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 예측한다>는 제목으로 묵인희, 이동영 연구팀이 학술지 <Alzheimer's Research and Therapy>에 실린 논문이 신문에 보도됐다. 2015년에는 국립보건연구원 고영호 박사 팀이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혈액 속 SUMO 단백질을 통해 진단을 예측한 논문발표가 기사로 다루어졌다. <Alzheimer's Research and Therapy>의 학술영향력지수 IF는 2017년을 기준으로 5.015이고,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는 3.920이다. 의학저널 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IF는 54.42, <Lancet>은 39.21, 그리고 <JAMA>는 30.39다. 물론 학술영향력지수 IF는 해당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이런 연구결과들과 이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는 독자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굉장한 연구들이 발표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할 지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의생명과학의 치료제 개발이 천문학적인 투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면서도, 성공을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별로 다양한 증세를 나타내는 질병에 대한 완벽한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알츠하이머병처럼 선진국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얻은 질병조차, 여전히 완벽한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는 사실은, 독자들이 이런 뉴스를 읽을 때 얼마나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방증한다. 선정적인 질병치료제나 진단 보도는, 일단 의심하고 읽는 습관을 들이는게 좋다. 만약 언론기사만 묶어 질병치료에 대한 책을 쓴다면, 인류는 이미 질병에서 해방되었어야 하니까.

 

혈액으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연구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아직 임상에 적용되지 않는다.

 

가짜학술지의 위협은 심각하다

과학자가 자신의 업적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홍보하는 일은 이상한게 아니다. 특히 연구비 수주가 어려운 현실에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는 연구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세계최대의 알츠하이머병 학회에서 기조발표를 하는 영광은 과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아마도 문제는, 보도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하는 언론의 무지일 것이다. 

서울의대 김상윤 교수의 프로필 사이트에는,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들의 목록이 적혀 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혹은 단백질을 찾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연구자다. 2013년 그가 <Alzheimer's & Dementia>에 제1저자로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해서, 2019년 <Alzheimer's research & therapy>에 교신저자로 발표한 논문까지, 그는 아밀로이드가설을 바탕으로 혈액속 단백질을 추적해 왔다. 아마 그런 연구가 알츠하이머병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정되어, 학회 기조발표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뉴스타파가 보도한 가짜학회 와셋/오믹스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2016년 6월 7일, 오믹스 인터네셔널이 발행하는 학술지인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 & Parkinsonism>에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연구자가 세계최대 알츠하이머병 학회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건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학자일 수록, 가짜학술지와 가짜학회에 대해 연구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만, 이런 연구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가짜학회와 가짜학술지에 논문을 낸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서울대 소속이었고, 주로 의학과 기초과학 분야의 학자 및 의사들이 오믹스 학술지를 이용했다.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후보로 나섰던 조동호 교수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번에 큰 업적으로 화제가 된 김상윤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김상윤 교수가 가짜학회 오믹스에 발표한 논문 화면 캡처.

뉴스타파의 보도를 계기로, 한국의 의생명과학 연구계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연구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한국 연구자의 연구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그가 가짜학회에 참석했는지, 가짜학술지에 논문을 냈는지 검수하는 것만큼, 처참한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특히 서울대 교수들의 철저한 반성과 대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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