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재원 추경'과 '적자국채 발행 추경'은 같다

  • 기자명 이상민
  • 기사승인 2019.08.0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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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방송화면 갈무리

드디어 국회에서 추경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논의 시간은 부족하지만 밀도 있는 추경안 심의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늦었고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도 졸속으로 심의해서는 안 된다. 불요불급한 사업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삭감할 필요가 있으면 삭감을 해야한다. 내수를 위해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자는 정부와 여당의 말도 맞지만, 비효율적인 재정사업은 감액해야 한다는 야당 말도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추경은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야당이나 일부 언론의 주장은 잘못된 논리다. 얼핏 생각해보면 작년에 남은 돈으로 추경을 하면, 재원 조달 면에서는 별문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까지 추경을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적자국채 발행 추경이나 여유 재원으로 하는 추경이나 조삼모사일 뿐 사실상 같은 행위다. 왜 여유재원 추경이나 적자국채 발행 추경이 경제적으로는 같은 것일까?

 

2018년 초과 세수 25조원 어디로 갔을까?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 이종배 의원과 바른미래당 간사 지상욱 의원은 이번 추경 심의 의지를 밝히면서 적자국채 발행 추경은 반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매년 추경을 했다. 그러나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 추경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이나 재작년 추경할 때는 전년도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이나 기금 여유자금이 추경재원이었다. 당시 정부도 적자국채 발행 없이 작년에 쓰고 남은 돈으로 하는 추경이니 재원 조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추경예산안 6.7조원에는 적자국채 발행분이 절반 이상(3.6조원) 차지한다.

그런데 2018년 작년 초과세수 규모는 무려 25조원였다. 2017년 재작년 초과세수가 23조원일 때는 돈이 남아서 적자국채 발행 없이 2018년 추경을 했다. 그런데 2018년도에는 초과세수가 더 늘었는데 왜 남은 돈이 없어서 2019년도 추경에는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까? 도대체 초과세수 25조원은 다 어디 갔을까?

작년에 발생한 초과세수가 현금으로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작년에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국채를 조기 상환하는데 4조를 쓰고, 연초의 국채발행 계획보다 9조원을 덜 발행 했기 때문이다.

*18년 결산상 잉여금 16.5조원은 조기 국채상환분 4조원이 차감된 숫자임 (자료 출처 : 기획재정부)

즉, 작년에 초과세수를 통해 국채 4조원을 조기상환하지 않았으면 그만큼 결산상잉여금이 늘어나게 된다. 4조원을 조기상환한 것 외에도 9조원을 계획보다 덜 발행한 부분도 있다. 18년 국고채 총발행 실적은 지난 2014년 이래로 최저수준이다. 국고채 발행계획보다 9조원이나 덜 발행한 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18년 당초 계획만큼 국채를 발행했다면, 결산상잉여금이 추가로 늘고 그 남는 돈은 이번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었다. 다시말해 이번 추경 때,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된 이유는 작년에 국채를 조기상환하고, 계획보다 국채를 덜 발행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국채를 계획대로 발행했으면, 올해 추경 때 국채를 발행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올해 추경은 작년에 쓰고 남은 잉여금으로 하는 것이니 추경 재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추경 재원으로 잉여금 혹은 적자국채 의미 없어

그러나 사실 국채는 매년 발행하고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그래서 이번 추경 재원이 적자국채인지 작년에 쓰고 남은 돈인지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유하자면 작년에 10억원 대출을 받고 남은 돈으로 올해 10억원 짜리 집을 사면서 “나는 올해 집 살 때, 대출을 받지 않고 전액 현금으로 구입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거나 똑같다.

물론 올해는 대출받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에 대출받고 남은 돈으로 올해 집을 구입하면서 현금으로 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집은 올해 대출을 받아서 산 집이기 때문에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도 맞는 말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대출을 작년에 받나 올해 받나 마찬가지다. 단지 차이가 있으면 불필요한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을지의 차이만 존재한다.

올해 집을 산다면, 작년에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이자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수입이 예상보다 많으면, 그것을 현금으로 보관하다가 올해 대출없이 집을 살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는 빚을 작년에 갚고 이자 비용을 아끼다가 올해 새롭게 대출을 받고 집을 사는 것이 더 좋다. 그런의미에서 작년의 초과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남겨서 올해 적자국채 없는 추경을 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작년에 국채를 조기상환하거나 덜 발행해서 이자비용을 아끼는 것이 좋은 판단일 수 있다.

 

재원조달 방식은 추경 평가에 큰 의미 없어

여기서 신재민 논쟁이 떠오를 수 있다. 신재민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작년에 초과세수를 통해 적자국채를 덜 발행하거나 갚아야 한다는 논리와 반대 논리가 대립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적자국채를 덜 발행하고 갚았기 때문에 이자 비용을 아끼게 되었다. 그 대신 올해 추경 때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경에 적자국채를 발행한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차라리 이자 비용을 아낀 것에 대해 칭찬을 해주는 것이 맞다.

오히려 반대인 부분도 있다. 이번 6.7조원 추경안 중 3.6조원은 적자국채지만 기금 여유 재원을 활용한 부분도 2.7조원이나 된다고 자랑하는 부분이 있다. 야당과 언론도 기금 여유 재원 사용 부분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금 여유 재원이라는 것에는 기금채를 발행하는 것도 포함되어있다. 물론 통계적으로야 기금채는 국가채무(D1)에는 속하지 않으니, 국채발행이 아니라 기금여유재원을 활용한다는 말은 형식적으로는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기금채는 공공부문부채(D3)는 물론이고 일반정부부채(D2)에도 속하는 어엿한(?) 국가부채의 일원이다. 기금채를 0.5조원 이상 발행하면서 그만큼 국채를 덜 발행하고 기금여유재원을 활용했다고 발표하는 정부도 이상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야당도 기묘하다.

그렇지만 사실 0.5조원 기금채 발행을 하면서 기금여유재원을 활용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우습긴 해도 기금채 발행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이번 기금채는 ‘중소벤처기업창업 및 진흥기금’에서 발행하는 채권이다. 일반 중소기업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중소벤처기업공단에서 장기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자금을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기금 존재자체가 기금채를 발행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금채를 발행하면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기묘한 일이지만 기금채 발행 자체는 별 문제는 아니다. 재원조달 방식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추경을 평가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 필요

반전은 또 있다. 국채도 아니고 기금채도 아닌 말 그대로 기금여유재원을 활용했다고 자랑과 칭찬이 난무하는 부분은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추경에 존재하는 기금여유재원은 고용보험기금 여유재원 1.3조원이다. 그러나 고용보험기금 같은 금융적 성격이 있는 기금은 장래 기금사업(실업급여)등으로 지출해야할 돈을 적립하는 것이 목적인 기금이다. 사업성 기금에서 사업에 지출한 돈보다 더 많이 돈이 들어와서 생긴 여유재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에 고용보험기금 1.3조원의 여유재원을 활용한다는 의미는 앞으로의 고용보험기금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여유재원 추경은 좋은것이고, 적자국채 추경은 나쁜것이라는 이런 이분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경제적 실질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 정치적 논쟁이 되는 부분은 무척 안타깝다. 추경을 통한 재정확대를 찬성할 수도 있고, 일부 문제가 있는 추경사업에 삭감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논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 2019. 8. 1 11:22 오타수정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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