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은 '쌈싸먹는' 그리스-터키 갈등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08.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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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은 우리의 영토다,  너희들의 것이라 주장하지 말아라”

“이 음식의 원조는 우리 민족이다”

“어린 우리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해 갔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반성해라”

“우리 민족을 부르는 이름은 저들이 우리를 오랑캐라 비하하는 단어에서 비롯 되었다, 쓰지 말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죠?  마치 한국과 일본을 연상시키지만 실상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전입니다. 이처럼 그리스와 터키 한일간의 갈등 정도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정도로 이웃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어느 정도로 두 나라가 기싸움을 하냐 하면, 공식적으로는 그리스 영토인 아가토니시 섬으로 가던 그리스 총리가 탄 헬기를 터키 전투기가 근접해 위협하기도 하고 (2019년 3월 26일),  심지어는 그리스와 터키 공군이 공중요격 훈련을 하며 기싸움을 하다가 양국의 F16 전투기가 충돌하며 그리스 공군 조종사 1명이 숨지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2016년 5월 23일).

그리스와 터키가 서로를 이렇게 미워하는 이유는 한국과 일본처럼 이 두 나라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오리엔트를 정복하면서 터키 지역도 그 영내에 속하게 되고 그 뒤를 이은 로마제국에 이어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1000년이 넘게 지속하면서 터키지역은 그리스-로마 세력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나타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그리스 지역을 비롯한 발칸반도 전역이 오스만제국에게 무려 400여년에 걸쳐 지배를 받았으니 유럽문화의 뿌리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리스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불과 36년의 식민지 지배 시절만 가지고도 우린 이렇게 치를 떠는데, 400년이라니, 그리스인에게는 최악의 '흑역사'인 셈이죠.

한편 오스만 제국에는 ‘데브시르메’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잘생긴 십대초반의 소년들을 강제로 데려와서 교육을 시킨 뒤 관료나 군 지휘관 또는 예니체리라는 술탄 친위부대 등으로 양성하는 데브시르메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 덕분에 새로운 인재를 끊임없이 수혈 받은 오스만제국은 오랜 기간 번영했지만 자식을 공납해야만 했던 부모들의 기억은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는 1821년부터 1829년까지 독립운동을 벌여 1830년 독립을 쟁취합니다. 간혹 이 독립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라는 이름의 국가를 "되찾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그리스라는 국가는 1830년 최초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알랙산더 이후로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이죠.

오랜 세월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의 신민으로 지내 온 탓인지 이때만 해도 그리스인들의 정체성은 고대 아테네/스파르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비잔틴제국에서 찾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비잔틴제국은 로마의 형식과 문화를 계승하기도 했지만, 종교상으로는 그리스 정교를, 공용어로는 그리스어를, 사회 주류 계층은 그리스 출신들이었기 때문이죠. 일찌기 사라진 서로마가 프랑크 족속등의 유럽 오랑캐에게 멸망했다고 보는 그리스는 로마의 적통을 이은 것은 천년왕국 비잔틴 제국이고 자신들이 비잔틴의 장자라는 의식이 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립한 그리스 왕국은 Megali Idea(Great Idea) 라는 '국뽕'에 취하게 됩니다. 비잔틴의 장자인 그리스가 비잔틴의 고토를 회복해야한다는 '국뽕' 말이죠. 한민족으로 치면 예전 고조선의 영토를 회복하자!! 는 주장 쯤 되겠습니다. 그리스는 러시아와 오스만이 대립할 때 마다,  그 사이 작은 규모의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해났는데, 마침내 1896년 크레타 전쟁으로 정면 충돌하게 되고 크레타에는 그리스 괴뢰국이 들어섰다가 1911년 그리스에 합병됩니다. 1911년 제1차 발칸전쟁으로 오스만에 승리한 그리스는 이스탄불 지역을 제외한 마케도니아 남부지역과 연안의 에게 해 제도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때 현재의 국경지역을 대부분 확정하게 됩니다. 

이처럼 영토를 확장하던 그리스는 1차대전으로 패전국이 된 오스만 제국이 열강들에게 영토를 뺏기는 혼란을 틈타 터키지역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터키지역으로 과감하게 진군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탄불 (비잔틴의 수도 옛 콘스탄티노플)을 넘어서 터키 본토인 아노톨리아 일부를 점령하면서 터키 지역을 초토화 시키죠. 터키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그리스군은 옛 지배자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듯 야만적인 학살이 자행됩니다. 이때 많은 마을이 불태워 졌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되었으며 아녀자들에 대한 폭행도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야금야금 영토를 확장하던 그리스인들을 미워하던 터키인들이 그리스인을 증오하게 된 직접적인 사건이 된 것이죠. 

이때는 오스만제국의 술탄의 힘은 유명무실한 상태로, 오스만제국은 해체되고 전지역은 그리스와 유럽 열강의 손에 떨어질 듯 보일 때입니다. 이때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는 반정부 세력을 터키 독립군으로 규합한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이 나타납니다. 그는 그리스군을 대파하면서 그리스를 터키지역에서 몰아내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있던 터키군들이 이 지역에 있던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인종학살을 자행한 것이죠. 그리스와 터키 양국에서 190만 명이 학살당해 “소아시아의 비극; The Aisa Minor Catastrophe” 라고 불리던 이 전쟁이 1919년부터 1922년 있었던 그리스-터키 전쟁입니다 (The Asia Minor Catastrophe and the Ottoman Greek Genocide, by Taner Akcam et al 2012)

그리스를 몰아내면서 승기를 잡은 듯 했던 터키는 영국의 압력에 당면하게 됩니다. 영국은 무스타파 케말에게 이스탄불지역과 에게해 지역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을 했는데 터키는 결국 이스탄불 지역을 선택함으로써 에게해의 전지역이 그리스의 관할에 들어가는 협정을 맺게 됩니다. 터키 본토 해안선의 약 10킬로미터 이상의 지역이 그리스 관할이 되게 했던 이 협정은 터키 해안에 도데카네스 제도에 딸린 150여개의 섬이 어느 국가에 귀속되는가를 정확히 규정하지 않아 후에 두고두고 영토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터키인의 입장에서 보면 해안에서 배로 십여분 거리에 있는 섬이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 하니 분통이 터질만 합니다.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악화되었던 감정은 2차대전을 거치고 발칸반도에 공산주의 국가가 들어서자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공산국가는 양국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두 국가는 1952년 나토에 가입하기도 하고 1953년에는 유고슬라비아까지 포함하는 삼국동맹까지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사이가 다시 틀어져 현대까지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키프로스는 오스만제국의 통치하에 있다가 1차대전후 로잔조약으로 영국령으로 편입되어 식민지가 됩니다. 그리스계가 대다수였던 키프로스는 1950년 그리스에 합병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물론 터키계는 결사 반대합니다. 1973년 일어난 쿠데타를 계기로 그리스가 개입하자 터키도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입합니다. 그 결과 키프로스 북부지역은 터키계가 장악하여 정전상태가 되고 1983년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합니다. 물론 이 나라는 터키를 제외한 어느 국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2017년 2월 11일자 국민일보 기사 ‘에게해의 독도’ 놓고 그리스·터키 또 ‘으르렁’.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인 관계가 양쪽 민족 사이의 잠재의식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근대에서는 그리스-터키 전쟁, 그리고 비교적 현대에 이르러서는 키프로스 사태가 양쪽 국가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리스 음식으로 알고 있는 Gyros의 원조가 터키라는 주장입니다. (불고기의 어원과 유래에 대한 논란이 떠오릅니다) 터키를 가보신 분들은 많이 보셨겠지만 터키의Döner kebab은 그리스의 Gyros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Kebab이 가로로 눕혀서 로스팅하는 반면에 Gyros는 세로로 세워서 로스팅하는 차이점과 소스의 차이점은 있지만요. 그래서 Gyros라는 이름은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오스만 지배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자 했던 민족주의적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터키어의 Doner가 빙글빙글 돌리다라는 뜻이므로 그리스어로 그에 해당하는 Gyro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설이죠. 역사가 오래된 이 음식은 물론 비잔틴,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같은 지역에 살아온 그리스인과 터키인이 공유했던 음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같은 시대를 거쳐왔던 중동의 레바논에도 비슷한 형태의 Shawarma가 꽤 알려져 있거든요.

Gyro roasting. 출처: recipes.fandom.com

 

Doner Kebab roasting. 출처: dreamstime. com

 

Shawarma. 출처: 핀터레스트

 

그리스와 터키는 또 서로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있었던 인종학살에 대해 양쪽은 상대방이 저질렀던 만행만 강조할 뿐 자신들의 인종학살에 대해서는 소상히 가르치지 않는다며 서로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씩 보이는 일이기도 한데, 어떤 악습은 일제시대의 잔재라며 일본을 비난하는 일이 왕왕있습니다만 그리스도 그런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공무원들 일처리가 느리면 종종 “기름칠”을 한다고 하죠, 급행료를 쥐어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악습은 오스만 제국 시절 가문과 인맥 학연 등이 큰 역할을 했던 오스만 제국 시절의 관행을 배운 탓이라는 얘기인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인을 뜻하는 Greek이라는 단어가 옛적 투르크인들이 야만인/오랑캐/노예라는 뜻으로 쓰였다면서 Greece 라는 국명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Greek이라는 단어가 고대 로마인들이 그리스지방의 한 부족을 부르는데서 유래한 것이라 추측합니다. 아마도 그리스인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독립후에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터키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기 위해서 생긴 ‘도시 전설’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 그리스인들은 자기 민족을 Hellene,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Hella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민족의 시조를 탄생시킨 그리스 신화의 Hellen을 따르는 이름인 것이죠. 국가의 공식이름도 Greece 가 아니라, "ΕΛΛΗΝΙΚΗ ΔΗΜΟΚΡΑΤΙΑ" 이며 영어로 번역하면 "Hellenic Republic"이 됩니다. 혹시라도 그리스 사람을 만나면 Hellenes 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아는 척 하면 무척 좋아합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냐고 하면서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니 한번 써 먹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 여권 표지
그리스 여권 속지

 

이처럼 그리스와 터키의 갈등은 계속 진행중입니다. 특히 양쪽 국가의 정치 리더들이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조그마한 갈등을 분쟁으로 증폭시키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리스인과 터키인들이 상대방 국가의 개개인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의 민족주의자 극우세력들 뿐이죠. 아래의 링크는 터키 유투버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터키 젊은이들에게 그리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동영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기 좋은 곳이라든지, 섬이 생각난다는 대답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자신들의 음식과 문화를 훔쳐갔다면서 웃으면서 답하는 장면도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정치와 외교는 국가간의 문제로, 상대방 나라의 개개인에 대한 미움을 표출하는 장면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편집을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요. 한국과 일본은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보다는 훨씬 순한 맛이라 생각합니다. 국가적 갈등은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또 자신의 정부에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상대방 나라의 개개인을 미워하고 겁박하는 일은 없으면 합니다.

 

필자 제이슨 예(Jason Ye)는  Polictical Communication을 전공했으며 미국에서 공부한 뒤 현지에서 물류사업을 하고 있다. 국제정치, 문화, 세계 역사 등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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