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축' 여자 배구, 김연경 은퇴 후 위험하다

  • 기자명 김지석
  • 기사승인 2019.08.1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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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대륙간 예선 러시아와의 최종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세트스코어 2:0의 리드 상황에서 3세트 22:18로 앞서며 다잡은 경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내리 7실점하며 3세트를 내주었다. 기세가 꺾인 대표팀은 경기 역시 최종 세트스코어 2:3으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내년 1월 아시아 예선에서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비록, 세계랭킹 5위의 러시아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2명의 세터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모두 교체되는 어려움 속에도 러시아를 거의 잡을 뻔하며 시종 대등한 경기를 펼친 우리 여자 배구 대표팀의 전반적인 경기력은 칭찬할 만했다. 내년 초 아시아 예선에서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다면, 올림픽 본선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보여주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에서 여자 배구는 최근 남자 배구와 남녀 농구의 인기를 능가하는 최고의 실내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인기에는 여자 프로배구의 팬 친화적인 마케팅이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인기에는 남녀 배구 선수를 통틀어 전세계 배구 선수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김연경의 존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국가대표팀의 국제 대회 호성적(現세계랭킹 9위, 2012 올림픽 4위, 2014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 아시안게임 동메달 등)이 절대적인 몫을 담당해 왔다.

2016년 리우올림픽 경기에서 환호하는 김연경 선수. YTN 화면 캡처.

김연경은 무엇이 다른가 

 피지컬과 공격력

대한민국 대표팀의 레프트 공격수 김연경은 신장 192cm, 서전트 점프 약 60cm의 신체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의 공격 상황 시 타점(신장 + 공격상황 시 머리 위 팔 수직 길이 + 러닝 점프 시 도약 높이)은 평균 약 300~310cm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배구의 네트 높이가 224cm인 것을 감안하면 네트 위 약 80cm 이상의 타점에서 지속적으로 공격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여자 프로배구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약 178cm대인 점을 감안할 경우, 러닝 점프가 아닌 서전트 점프에 가까운 형태로 도약하여 블로킹을 해야 하는 상대 블로커의 높이는 (개인별 편차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260~280cm에 해당된다. 김연경이 국내 선수들을 상대로 공격을 할 경우, 상대 블로커의 손 끝 약 30cm 위에서 공격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상대 블로킹 위에서 공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의 평균신장은 약 180cm이고, 김연경은 현재 대표팀의 최장신 선수이다. 일반적으로 팀 내 신장이 가장 큰 선수들이 센터 포지션(Middle blocker)을 담당하게 되는데, 김연경은 우리 대표팀의 양효진(190cm), 김수지(186cm) 등 주전 센터들에 비해서도 높은 신장과 타점을 가진다.

(*참고. 센터 즉, 미들 블로커는 상대의 중앙공격과 양 측면 공격에 대한 블로킹을 모두 마킹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므로, 블로킹을 위해 점프해야 하는 높이, 즉 도약시간이 커서는 신속한 이동에 제한이 발생한다. 따라서 신장이 커서 얕은 도약으로도 충분한 높이의 발생이 가능한 선수라야 상대의 중앙 속공과 측면 공격을 모두 민첩하게 따라갈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여자배구 現세계랭킹 1위 세르비아의 평균신장은 약 189cm, 2위 중국 189cm, 3위 미국 186cm, 4위 브라질 184cm, 지난 대륙간 예선 상대였던 세계랭킹 5위 러시아의 평균신장은 188cm 등 세계 최정상급 팀들의 평균신장은 모두 180cm 중∙후반대에 이른다. 팀 별 최장신 선수들의 경우 신장이 약 195~200cm 초반에 달하는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상대 블로커의 높이는 최대 280~295cm대로 산술된다. 즉, 김연경의 피지컬과 타점은 세계무대 어떠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 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리시브에 의해 최대의 타점을 살릴 수 있는 완벽한 토스가 이루어진 상황임을 전제로 한다.)

 

 기본기와 수비력

세계 무대에 완전한 볼세팅 상태에서 김연경만큼 공격할 수 있는 공격수는 있어도, 김연경처럼 리시브하며 공격할 수 있는 공격수는 없다고들 한다. 김연경을 전세계 가장 높은 연봉의 배구선수가 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다. 김연경의 포지션인 레프트 공격수는 상대 서브의 주요 타깃이 되는데(* 신장이 커 무게중심이 높고 상대적으로 느려 수비력에 약점을 보이는 센터 포지션의 선수들은 후위로 로테이션 될 경우 일반적으로 수비 전문 포지션인 리베로와 교체된다), 이는 본인이 리시브한 이후 본인이 공격까지 이어가는 것은 기술적∙체력적으로 높은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서버들은 상대 주 공격수를 묶기 위해 공격 포지션인 레프트에게 목적 서브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서브 리시브와 수비에 가담하는 경우가 적고 공격에 치중하는 포지션인 라이트(opposite hitter)와 달리, 레프트 포지션은 리베로와 함께 후위에서 수비를 전담하게 되는데, 좋은 공격은 좋은 토스에 의존하게 되고 좋은 토스는 양질의 리시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레프트의 수비력이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6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8강 네덜란드전에서 서브 리시브와 수비 불안으로 상대의 끊임없는 목적타에 흔들리며 결정적 패인이 되었던 박정아의 경우가 레프트 포지션의 수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압도적 피지컬과 공격력 뿐 아니라, 팀 내 최장신임에도 가장 안정적인 서브 리시브와 수비력을 구사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점이 김연경을 흔한 공격수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두는 소위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선수’로 언급되게 하는 것이다.

 

 리더십
대표팀의 주장인 김연경은 수년전부터 이미 대한민국 대표팀의 후배들과 심지어 선배들에게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명 ‘식빵(!?)’으로 대표되는 그의 거침없는 입담과 승부근성, 경기 중 보여주는 높은 집중력과 매서운 눈빛의 카리스마, 팀 분위기를 이끄는 파이팅과 퍼포먼스로 대표되는 그의 리더십은 이미 대표팀에 있어서는 없어서 안 될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일부 팬들은 경기 중 나타나는 김연경의 물리적 득점 포인트와 공격/수비에서 나타나는 지수들은 여타 선수들의 것과 절대적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숫자로 표현 불가한 요소들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김연경의 존재로 인해 나타나는 상대팀들의 전술적 고민과 수비/블라커의 위치 변화, 그로 인해 파생되는 우리 공격 루트의 다변화. 고비마다 해결해주는 그의 결정력과 이로 인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 똑같은 1점이라 해도 잘라야 하는 순간에 반드시 잘라낼 줄 아는 힘, 치고 나가야 하는 순간에 확실히 한 점 더 달아나주는 힘, 박빙의 순간마다 승부의 축을 기울여내는 묵직한 힘이 보여주는 그의 해결 능력은 포인트의 질에서 그 무게감이 확실히 다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볼이 그에게 가는 이유인 것이다.

중국 상하이팀에 소속된 김연경 선수. 김연경 인스타그램

 

문제는 '포스트 김연경' 시대

1988년생인 김연경은 한국나이로 현재 32세(만 31세)다. 그의 포지션이 활동량과 수비부담이 높은 레프트 공격수임을 감안한다면, 내년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2010년대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상승세에는 김연경의 존재와 더불어, 꾸준히 대표팀을 지켜준 김수지(만 32세), 양효진(만 29세), 이효희(만 39세), 김해란(만 35세), 정대영(만 38세) 등의 역할 또한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연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연경 뿐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주전 선수 대부분의 연령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이들에게 있어서도 2020 도쿄 올림픽은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것이다. 이후 국제 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은 전혀 새로운 선수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팀이 꾸려지게 될 터인데, 국제 경쟁력에 있어 그 준비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느냐는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재영, 김희진, 표승주, 박정아, 이소영, 강소휘, 이주아, 박은진, 하혜진 등 포스트 김연경의 역할을 기대하게 하는 선수들은 모두 국내 무대에서는 최고의 활약과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국제 무대에서는 높이와 피지컬, 수비력과 올라운드 플레이 능력, 멘탈에서 (아직까지는) 모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아니 가까운 미래에 기대되는 그들의 종합적인 경기력과 무게감이 김연경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금번 대륙간 예선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의 여자배구 상승세와 랭킹, 인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가 되는 이유이다.

김연경과 같은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선수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나지 않을 현실 앞에 우리는 확실한 기본기(리시브 능력)를 바탕으로 한 다변화된 공격력과 공격 전개의 스피드(공격 스피드 역시 결국은 ‘안정된 리시브’에서 비롯된다)를 갖춘 팀으로 변모해 나가야 한다. 일본, 태국 대표팀이 보여주는 기본기와 스피드가 바로 우리 대표팀이 포스트 김연경 시대에 지향해야 할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장신 선수들의 기본기 체득을 통한 대표팀의 장신화와 높이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강하고 다양한 서브 구사능력의 획득, 현재 각 프로팀마다 용병들에게 전담하다시피 되어 있는 라이트 포지션의 국내선수 양성(*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전성기였던 신진식(L)-김세진(R) 시대를 기억해보라. 아포짓 포지션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등은 우리 대표팀이 필수적으로 극복하고 지녀야 할 과제이자 무기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 여자배구 대표팀의 올림픽 진출과 계속된 상승세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또한 김연경의 건승과 포스트 김연경의 출연을 간절히 기대하고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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