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메르 팔레트'에 '최초의 파라오'에 대한 힌트가 있다

  • 기자명 곽민수
  • 기사승인 2019.08.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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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파라오는 누구인가> 시리즈

지난 회에서 최초의 파라오 후보 가운데 한명인 나르메르와 그의 이름이 붙어서 ‘나르메르 팔레트’라고 불리는 유물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초창기 이집트 문명이 겪었던 정황에 대해서 넌지시 들려주는 이 유물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1. 나르메르 팔레트. 좌측을 앞면, 우측을 후면이라 부르겠습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팔레트의 앞면

앞면-뒷면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편의상 상이집트 파라오가 묘사되어 있는 앞면이라 부르겠습니다. 이 앞면의 주제는 ‘적을 퇴치하는 상이집트의 파라오’입니다. 팔레트의 가장 상단에는 한 쌍의 암소 머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암소들은 고대 이집트 문명 초기에 널리 숭배되던 바트(Bat)라는 여신입니다. 뒷면에도 한쌍의 암소는 동일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데, 총 4개가 새겨진 이 암소는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후대의 모티브들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훗날 이집트 전역에서 가장 널리 신앙이 대상이 되는 하토르(Hathor) 여신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예컨대, 암소의 귀를 보시면, 2800년도 더 후에 만들어진 덴데라 신전의 하토르 기둥 머리 장식과도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바트 여신은 점차 하토르 여신에서 흡수되어, 어느 시점이 되면 두 신은 동일시 되기 시작합니다. 말이 쉬워서 2800년이지, 현재로부터 2800년 전이라고 하면 한반도는 고조선 시대였습니다. 그만큼 고대 이집트 문명은 오랜 기간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던 문명이었습니다.

사진2. 나르메르 팔레트의 앞면
사진3. 멘카우라의 심존상. 우측이 바트 여신입니다. 이 여신의 머리 장식을 보시면 나르메르 팔레트의 암소 모양과 아주 유사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삼존 상은 대략 기원전 2500년 경 만들어졌습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사진4.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3세기 - 기원전1세기 경)에 만들어진 덴데라 신전의 옥상에 만들어진 소신전. 기둥 머리가 하토르 여신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는데, 하토르 여신은 바트 여신과 역할을 공유할 뿐더러 비슷한 암소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 한 쌍의 암소 사이에는 사각형 틀 안에 메기와 끌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바로 밑에는 ‘왕궁 정면 모습’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바로 이 메기와 끌이 ‘성난 메기’라는 뜻의 나르메르 (Nar-Mer)라는 이름입니다. 이름과 왕궁 정면 모습이 함께 그려지는 이 모티브는 이 시기 직후부터 ‘세레크 (Serekh)’라고 불리는 왕명을 쓰는 형식으로 체계화됩니다.

사진5. 제 1왕조 시대 파라오 제트(Djet)의 세레크. 기원전 2980년 경. 뱀 모양의 글자가 파라오의 이름입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팔레트 앞면의 중심부에는 상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는 나르메르가 곤봉을 휘두르며 적을 제압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르메르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으며 황소 꼬리가 달린 킬트를 입고 있는데, 이것도 고대 이집트 문명기 내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파라오의 모습입니다. 나르메르의 오른쪽에는 파라오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남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르메르에게 패배한 적이나 정복당한 도시를 상징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남자의 머리 오른쪽에는 두 개의 그림 문자가 쓰여 있는데, 아직까지 합의된 해독은 없는 상태이지만, 이 남자 개인의 이름이거나 혹은 정복당한 지역의 지명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6. 나르메르 팔레트의 앞면
사진7. 람세스 3세의 메디넷 하부 신전의 좌측 탑문. 여기에서도 파라오가 적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곤봉으로 쳐내리는 모티브가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원전 1150년 경.

 

 

남자의 머리 위에는 사람의 손을 갖고 있는 매 한 마리가 사람의 머리가 달려있는 파피루스 묶음 위에 앉아서 이 사람의 코에 묶인 밧줄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매는 호루스, 즉 파라오를 나타내는 동물이고, 파피루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용되는 하이집트의 상징이니 이 장면은 파라오가 하이집트를 제압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집트 최초의 통일이 상이집트가 하이집트를 정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중앙에 새겨진 파라오의 좌측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한 인물이 파라오의 등 뒤에서 신발을 들고 서 있습니다. ‘파라오의 신발 운반자’라는 호칭이 이후 이집트 문명기 내내 파라오의 최측근에게 주어지던 칭호였음을 참작하면, 이 신발 운반자는 단순한 시종이 아니라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유력자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파라오의 발밑, 그러니깐 팔레트 앞면의 가장 아랫단에는 수염을 기른 나체의 남성 2명이 어디론가 도망을 치고 있는데, 좌측 상단에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상징하는 듯한 기호가 덧붙여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파라오에게 패배하여 쫓겨가는 이들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팔레트의 뒷면

그럼 이제 팔레트의 뒷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앞면이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뒷면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에는 하이집트의 파라오로 분한 나르메르가 앞뒤로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상이집트의 파라오와 하이집트의 파라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왕관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단에 묘사된 인물들은 모두 크기가 제각각인데, 이것은 이 인물들의 사회적 지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히 파라오는 가장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그려진 하이집트의 파라오는 팔레트 앞면의 상이집트 파라오보다는 훨씬 더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현저한 크기 차이는 어쩌면 나르메르는 상이집트 출신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의 통일은 상이집트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진8. 나르메르 팔레트의 뒷면

나르메르는 곤봉과 도리깨를 들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전통적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왕권을 상징하는 도구들입니다. 역시 나르메르의 바로 앞에는 ‘성난 메기’라는 뜻의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바로 뒤에는 팔레트 앞면에서와 같이 ‘신발 운반자’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 인물의 우측 상단에 새겨진 꽃은 아마도 이 ‘신발 운반자’의 이름일 것일텐데, 그의 머리 위에 그려진 직사각형과 그 안의 상징은 아직까지 그 의미가 명확히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나르메르의 바로 앞에는 긴 머리를 하고 있는 남성이 걸어가고 있는데, 이 사람의 우측 상단에는 ‘티티(tt)’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 남자의 이름일 수도 있지만, 학자들은 음성학적인 이유를 근거로 이 남자를 총리대신이나 나르메르의 제1왕자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 앞에는 각각 동물 가죽과, 개, 그리고 매의 상징을 달고 군기를 든 네 명의 기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정면에는 목이 잘린 열 구의 시신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들은 살해당한 파라오의 적들이 분명해 보입니다.

 

두 번째 단에는 뱀과 사자 혹은 표범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한 쌍의 괴물의 목에 묶은 끈을 두 남자가 잡아 붙들고 있습니다. 긴 목을 갖고 있는 이 한 쌍의 괴물은 서로 목이 감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움푹하게 패인 원형이 공간이 있습니다. 만약 팔레트가 실제로 안료를 가는 데 사용되었다면 이 부분에 안료를 넣고 갈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번째 단에 그려진 이 장면은 여전히 그 의미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만, 사자는 이집트 전역에서 전쟁과 관련된 여신의 상징으로 자주 여겨졌었던 만큼 아마도 이 장면은 군사 행위를 통한 상-하이집트의 통일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맨 하단부는 황소로 분한 파라오가 한 도시의 외벽을 무너뜨리고 적들을 공격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강력한 힘을 의미하는 황소는 이후로도 오래도록 파라오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후대의 파라오들이 ‘힘센 황소’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신왕국 시대 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의 호루스 이름은 ‘카나크트 카엠와세트’, 즉 ‘테베에 나타나는 힘센 황소’였습니다.

사진9. 투트모스 3세. 기원전 1450년 경. 룩소르 박물관 소장.

지금까지 최초의 파라오 후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최초의 파라오가 누구인지 하는 문제는 어쩌면 영원히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었던 상-하 이집트가 단일한 지배자에 의해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된 것이 대략 기원전 3100년경이라는 사실입니다. 후대인들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고대 이집트 문명은 바로 이 때부터 시작됩니다. 한번 시작된 이 문명은 이후로 4000년 가까이 지속되는데, 흥미롭게도 통일 이전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하 이집트를 구분하는 습관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가 분열되던 시기에는 거의 항상 상-하이집트로 분리가 되었고, 이집트가 통일되어 있던 시기에도 상-하이집트를 각각 분리해서 표현하는 모티브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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