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강력한 '코끼리 크기 사자'는 왜 등장하지 않나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9.08.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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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라는 개념이 사회로 들어오면서 붙은 연관어 중에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테니슨은 자신의 시에서 ‘피에 물든 이빨과 발톱red in tooth and claw’라고 진화와 자연을 표현했지요. 다들 진화는 강한 자가 이기고 약한 자가 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는 진화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약육강식’은 단언컨대 진화와도 상관없지만 생태계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약해서 먹히고 강해서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먹이가 다를 뿐입니다. 식물을 먹는 동물이 있고 동물을 먹는 동물이 있을 뿐이지요.

 

사자와 코끼리 중 누가 강할까요? 다 자란 사자 한 마리와 다 자란 코끼리 한 마리가 붙으면 코끼리가 이깁니다. 다 자란 사자와 기린이 붙어도 기린이 이기지요. 코뿔소도 하마도 사자보다 강합니다. 사자의 무리는 a proud of lion이지만 코뿔소 무리는 a crush of rhino죠. 사자 무리 따위야 코뿔소 무리 앞에선 그야말로 crush될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자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자가 자기들을 먹으려 들 때 방어할 뿐이죠. 먹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아프리카 빅 파이브(The Big Five)로 불리는 코뿔소, 버팔로, 사자, 코끼리, 표범(왼쪽부터)

초식동물들이 육식동물에 비해 덩치가 크고 강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초식동물들이 먹는 풀과 나뭇잎은 소화가 잘 되질 않습니다. 거기다 단위 질량당 에너지 함유량이 고기에 비해 작습니다. 따라서 많이 먹어야 하고, 뱃속에 오래 두어야 합니다. 또 언제 사냥꾼들이 닥칠지 모르니 한 번에 많이 먹어야 합니다. 소가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는 이유지요. 따라서 소화기관이 아주 깁니다. 거기다 그런 소화기관을 가지고 사자 같은 사냥꾼이 다가오면 잽싸게 도망도 쳐야지요. 그러니 다리에도 튼튼한 근육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걸 갖추려면 최소한 사슴 정도의 덩치는 가져야 합니다. 거기다 초원지역은 사방이 탁 트인 곳이라 숨을 곳도 없습니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사자들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려면 가운데 어린 새끼들을 두고 주변을 덩치 큰 녀석들이 엄호하며 도망쳐야죠. 거기다 호시탐탐 노리는 사자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몸 박치기도 사양치 않아야 합니다. 이런 전차로 초원의 초식동물들 특히 수컷들은 덩치가 큰 쪽이 번식과 양육에 유리합니다. 점점 덩치가 커진 것이지요. 물론 초식동물도 덩치가 무한정 커지진 않습니다. 딱 사자 같은 녀석들과 붙어볼 만한 정도까지 커지는 거지요.

 

사자가 사냥하는 먹이는 기력이 쇠한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늙은 초식동물이나 아직 어린 새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강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것만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의문이 생깁니다. 왜 더 강력한 사자가 등장하지 않은 걸까요? 더 강하면 그만큼 더 사냥이 쉬울 것이고, 그렇다면 더 유리할 터인데 말이지요. 사자가 더 강해지지 않는 것에는 당연히 진화론적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더 강하다는 건 뭘까요? 지금의 사자보다 더 빠르고, 무는 힘이 더 강하고, 덩치가 더 큰 것이 강하다는 것의 주요 조건일 것입니다. 튼튼하고 건강한 사냥감을 쫓으려면 더 빨라야 하고, 큰 덩치의 녀석을 물어 경동맥을 차단해 죽이려면 무는 힘이 더 강해야 하고, 코끼리나 기린 등에 부딪치거나 밟히지 않으려면 덩치도 더 커야겠지요. 그렇다면 체중도 더 나가야 하고, 두개골과 아래턱에 붙은 근육이 더 강력해야 하고, 네 다리의 근육도 더 단단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가 되려면 먼저 자라는데 드는 시간이 좀 더 길겠지요. 포유류를 보면 동일한 조건에서 성체의 크기가 클수록 양육기간이 더 길지요. 따라서 양육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시지요. 지금의 사자 정도로도 힘없는 늙은 코끼리나 어린 영양 정도는 하루나 이틀이면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요. 남는 시간에 놀다 짝짓기를 하고 애를 키우는데도 하등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덩치를 키우고 더 강력해진다면 일단 양육에 더 오랜 기간이 걸리니 첫 새끼의 출산에서 그 다음 새끼의 출산까지 주기가 더 길어집니다. 다른 것은 제외하더라도 이 자체만 가지고도 불리한 조건이 됩니다. 만약 기존의 암사자가 3년마다 한 번 새끼를 낳아 기른다고 가정을 하고, 더 강한 사자는 4년마다 한 번 새끼를 낳아 기른다고 칩니다. 포유류는 덩치가 클수록 평균 수명이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사자 한 마리의 평균 수명은 12살이라고 치고 강한 사자는 15살이라고 하겠습니다. 암사자는 3살이 되면 짝짓기가 가능하고 강한 암사자는 4살이 되면 짝짓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24년 뒤 어떻게 될까요? 단순 계산으로 그냥 사자는 1마리에서 194마리 정도로 늘어나고 강한 사자는 50마리 정도로 늡니다. 그냥 사자가 거의 4배 더 많아지지요. 100년이 지나면 그냥 사자 무리가 강한 사자 무리보다 250배 정도 더 많아집니다. 강한 사자 무리가 100마리 정도 있다면 그냥 사자 무리는 2만 5천 마리 정도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실제 생태계에선 그렇지 않겠지만 일단 더 덩치를 키워서 양육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가지는 약점은 분명해보입니다.

 

실제로 사자들에게서도 여러 돌연변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덩치가 커지고 근육이 발달한 사자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더 덩치가 크고 강한 사자들은 번식률이 떨어지면서 최소한의 사냥에 필요한 정도를 많이 오버하는 경우 그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에 나타났다가도 그냥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동물원의 수사자 ‘나약’(왼쪽)과 암사자 ‘주리’. 2018년 10월 암사자 주리는 수사자 나약의 목을 물어 죽였다.

 

암사자가 수사자보다 덩치가 작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암사자는 사냥을 하기에 알맞은 정도의 덩치만 가지고 있는데 반해 수사자들은 자기들 수컷끼리 암컷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하니 지들끼리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덩치가 커진 것이지요. 인간의 수컷도 비슷한 경우죠. 그런 수컷도 덩치가 아주 커지지 못한 것은 바로 양육 기간의 문제가 끼여 있는 것이지요. 너무 오랜 양육기간은 수컷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이죠.

 

또 덩치는 사냥감이 적은 상황에서 불리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뭄이 들거나 돌림병이 유행하여 먹이가 적어질 때, 사냥을 좀 덜하더라도 버티기에는 덩치가 작은 쪽이 유리하지요. 덩치가 크면 사냥에 유리하니 좋을 것 같지만, 더 자주 사냥을 해야 하는데 먹잇감이 부족한 실정에선 더 많은 거리를 움직여야 하니 그 또한 불리한 조건이 됩니다. 덩치가 크다는 건 그리고 근육이 더 발달했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냥을 잘 하기 위해선 먹잇감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그런 사항을 고려하기 위해 뇌가 발달해야 합니다. 발달한 뇌는 에너지를 잡아먹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흔히 우리가 다이어트 때 고려하는 기초 대사량 자체가 많아지니 사냥의 횟수도 늘어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는 우연히 일어나긴 하지만 한 백 년 정도의 기간 동안 보면 항상 일정한 비율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즉 한 세대나 두 세대에 한 번씩은 겪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엄혹한 환경을 만나면 불리한 조건을 가진 쪽의 개체수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확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앞서의 양육조건과 더불어 더 강하고 덩치 큰 사자들이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요.

‘약육강식’은 인간 세상에나 통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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