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1위한 '부끄러운 서울대 동문상' 투표는 정말 조작됐나

  • 기자명 이승우 기자
  • 기사승인 2019.08.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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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온라인 투표 논란이 정치 쟁점화되는 모양새다. 서울대학교 내 최대 규모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회원들이  2019년 상반기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로 조 후보자를 선정한 것이 그 발단이다. 조 후보자는 12일 오후 기준 3788표를 얻어 8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기록 중이다.

8월 12일 현재 2019년 상반기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조국 교수가 1위를 기록중이다.

 

그런 가운데 투표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9일 KBS 보도가 온라인 커뮤니티들과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KBS는 해당 투표가 공신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게시판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서울대학교 아이디를 사거나 빌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제시한 자료화면에는 스누라이프 아이디를 2만원과 만원에 각각 구입, 대여하길 원한다는 내용의 게시물 캡쳐 사진이 담겼다. 

스누라이프 투표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 계정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 KBS.

 

한 트위터 게시물은 KBS 보도 캡쳐화면을 제시하며 아이디 매매가 이번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었음을 주장하였다. 해당 게시물은 스누라이프 투표가 특정 세력의 여론 조작에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짙게 시사한다. 사실이라면 그 정치적인 함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화제가 된 SNS 게시물 주장대로 매매-양도된 계정이 여론조작에 활용되었을까? 부끄러운 동문 투표 결과에 대한 재학생들의 의견은 어떨까? 뉴스톱에서 확인해보았다.

KBS 보도를 인용해 트위터에 올린 한 유저. 이후 스누라이프 투표 조작설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① 여론 조작 위해 계정 사고 팔았다?

→투표 시작 뒤 중고나라에 매물로 올라온 계정 2개 뿐

화제가 된 트위터 게시물은 앞서 언급된 KBS 보도를 근거로 스누라이프 계정이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거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KBS 보도에 등장한 계정 매매 글은 국내 최대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게시된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이번 투표가 시작된 8월 7일 이후 중고나라에 올라온 스누라이프 계정 매매 게시물은 2건이다. 두 게시물의 조회수 합은 177건이다. 두 글을 본 모든 사람들이 계정을 판매해 그 계정들이 여론조작에 이용되었다고 하더라도, 2400표가 넘는 1위와 2위 후보의 표차를 극복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해당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게시자 외에는 거래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실제 계정 매매 대여 사례가 없진 않겠지만 전체 여론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닌 것이다.

 

8월 7일 투표가 시작된 이후 스누라이프 계정이 중고나라에 매물로 올라온 사례는 두 건 뿐이다.

 

② 투표 결과가 전체 서울대 생각을 반영한다? 

→재학생은 투표에 관심 없고 대표성 없다 생각

<뉴스톱>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재학생들은 이번 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답하며 이번 투표 결과가 재학생들의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대부분의 재학생이 강의정보 등과 같은 정보를 얻을 때 아니면 스누라이프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한 문과대학 13학번 재학생은 "많은 학생들이 스누라이프를 이용하지만 대부분이 강의평가 찾기, 자취방 구하기 등 정보를 얻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스누라이프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용적 목적 이외의 게시물을 보는 등 스누라이프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것이다. 한 경제학부 18학번 재학생은 "스누라이프 이용자 수 자체가 졸업생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이번 투표에 몇 천 명이 참여했든 진짜 여론조사기관에서 하는 것처럼 표본을 계획적으로 뽑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운 동문 설문조사>가 서울대 학생들의 의사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 공과대학 19학번 재학생도 “(이번 투표가)모든 학생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저학번 학생들은 스누라이프를 많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스누라이프에서 글을 쓰는 학생은 거의 고학번이나 대학원생 등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누라이프는 교직원, 재학생, 졸업생이 회원으로 있다. 전체 회원은 13만명이 넘는다. 이번 투표 참여자가 4천여명임을 감안하면 전체 회원의 3% 정도만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재학생보다는 졸업생이 훨씬 많은 구조다. 하지만 언론은 서울대 재학생의 생각이 대체로 반영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2016년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를 제안한 스누라이프 익명의 유저 게시글. 이 투표는 회원이라면 누구나 제안할 수 있으며 주기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③'부끄러운 동문상 투표'는 객관적이다?

→주기적 투표 아니며 익명 회원 누구나 제안 가능

'부끄러운 동문상' 투표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제1회 부끄러운 동문상 설문조사는 2016년 12월 9일부터 다음해 1월 8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었다. <2016 최악의 동문상 설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투표에는 총 2333명이 참가하였으며, 7명의 후보 중 2233표를 득표한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1위를 차지하였다. 당시 익명의 회원 제안으로 시작된 제 1회 부끄러운 동문상 설문조사는 당시 국정농단 게이트에 서울대 동문이 많이 기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문제가 많은 동문을 선정해보자는 의미의 행사였다.

이번 투표의 방식은 지난 투표와 동일하다. 한 사람당 최대 3명 투표할 수 있으며 한 후보에게 중복투표는 불가능하다. 투표기간도 한 달로 지난번과 동일하다. 이번 투표는 지난 투표와 달리 익명의 게시자에 의해 지난 7일에 시작되었다. 12일 오후 1시 기준, 4347명이 참가한 설문조사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3788표를 득표하며 14명의 후보자 중 1위를 차지했다. 스누라이프의 투표 게시자가 밝힌 후보선정 기준은 ▶이전 부끄러운 동문상 수상자 ▶원내 정당 대표 ▶영향력 있는 정치인 ▶기타 이슈로 회자되었던 사람이다.

문제는 투표 자체가 이벤트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부끄러운 동문상은 투표 당시의 여론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서 서울대 동문 중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가장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SNS 게시물 논란과 폴리페서 논란 등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면서 지지자도 늘었지만 비판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지금 투표를 한다면 조국 전 수석이 1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투표 당시 서울대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서울대 출신의 호불호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엔 힘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6년에 처음 시행된 '가장 부끄러운 동문' 스누라이프 투표 결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위를 차지했다.

 

언론의 선정보도와 정치권의 무분별한 인용 

조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지명된 지난 2017년 5월을 기점으로 휴직에 들어갔다. 민정수석 퇴직 후 지난 8월 1일 복직원을 제출했으나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됨에 따라 9일만에 다시 휴직을 신청했다. 복직원 제출 소식과 더불어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내정설이 불거지던 와중에 이같은 투표 결과가 전해지면서 언론이 더 크게 보도를 했다.

특히 평소 조 후보자의 행보에 비판적이었던 보수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의제 선정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8일자 기사 <'서울대 최악 동문우병우 조롱했던 조국이번엔 본인이 1>에서 조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조명하며 직접적으로 비판에 나섰다. TV조선채널A 등 종편 채널도 비슷한 논조의 보도를 내보내며 ‘조국 때리기’에 가세했다.

정치권도 가만 있지 않았다. 투표 결과를 근거로 조 후보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조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며 "오죽하면 서울대 학생들이 뽑은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했겠냐”고 덧붙였다. 서울대 내부 커뮤니티 투표 결과가 조 후보자의 자질 논란에까지 불을 지핀 것이다. 

 

스누라이프란? 1999년에 개설된 서울대학교 커뮤니티 포털이다. 스누라이프는 서울대 학생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로, 학생, 교직원, 졸업생 등 인증절차를 거친 서울대학교 구성원만 가입자격을 갖는다. 2014년 4월 기준, 스누라이프 누적회원 수는 약 13 명이다. 서울대학교 한 해 신입생 수가 3100 내외인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스누라이프의 현재 누적회원 수는 14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스누라이프의 여러 게시판들을 통해 강의정보공유, 취업정보공유, 자취방·중고물품 거래, 학내 현안·정치토론 등 학교생활과 관련된 정보수집 및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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