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후쿠시마에선 방호복 입고 '방사능 벼'를 추수한다?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8.2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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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우 겸 가수인 토머스 맥도넬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양이 예쁜 외국어 트윗을 복사-붙여넣기해서 트윗하는 습관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작년 3월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한국어로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트윗을 대거 업로드하며 ‘한국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토머스 맥도넬의 트위터를 리트윗한 한 유저.

이런 맥도넬이 지난달 후쿠시마산 쌀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한국어 트윗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추수된 농산물을 먹게 된다는 내용이다. 맥도넬은 그러면서 “후쿠시마 방사능 벼 추수 현장”이 담긴 사진을 언급하고 있다. 후속 트윗에서 ‘추수할 때도 저렇게 하는데 하물며 그걸 먹는 사람은 어떻겠느냐’며 이모티콘을 곁들여 재차 경고했다.

해당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 인근 통제 구역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트위터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사진이 후쿠시마, 더 나아가 일본 전체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쌀’이 재배 및 유통되고 있는 증거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외에도 비슷한 사진들이 ‘후쿠시마 쌀농사 모습’ 등의 제목으로 함께 공유되며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 모두 논밭을 배경으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 1> 토머스 맥도넬이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후쿠시마 방사능 벼 추수 현장” 사진. 출처: 아사히 신문.
<사진 2> 앞의 사진과 더불어 ‘후쿠시마 쌀농사 모습’이라며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출처: 교도통신.

 

문제는 사진의 원 출처 및 진위 여부가 네티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확인 결과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과 달리 ‘쌀농사 사진’이 아니었다. 사진이 촬영된 지역에서는 농산물이 출하가 아직 이루어지지조차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맥도넬이 트윗에서 언급한 ‘벼 추수 현장’ <사진 1>의 출처를 추적했다.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2012년 10월 11일자 아사히신문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기사에 따르면 2012년 10월 10일 후쿠시마 현 오쿠마 정 (大熊町) 사무소 소속 직원들이 지역의 한 논밭에서 방사능 측정에 사용할 벼를 추수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논에서 자란 농작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검출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역 차원에서 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오쿠마 정은 폭발이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이 위치한 지역이다. 올해 4월에 들어서야 대피령이 일부 해제됐을 정도로 방사능 오염 정도가 심각했다. 사고 발생이 일년 반정도 지난 가운데 방호복을 입고 통제 구역에서 직접 시료 채취에 나선 직원들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판매가 아닌 실험 목적으로 추수한 것이므로 해당 사진 속의 ‘방사능 쌀’이 시중에 유통됐을 가능성은 없다. 사진 속 인물들이 방호복을 착용한 것도 방사능 오염이 지금보다 월등히 심했던 2012년에 촬영된 사진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배경인 오쿠마 정에서의 농작물 재배는 대피령이 해제된 올해에 들어서야 소규모로 재개된 것으로 확인된다. 최근 몇 년간 일본 정부의 세슘 안전기준치 (1kg당 100베크렐 미만)를 충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기준치 이내라고 해서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모 트윗의 주장처럼 먹으면 ‘기형아를 낳고 암에 걸리는’ 극단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사진의 맥락이 완전히 잘못 알려진 채로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가 ‘괴담’에 불을 지핀 것이다.

농민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방호복 차림으로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2>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2년 6월 15일 교도통신 기사 (재팬타임즈에서 인용 보도)에 첨부된 사진으로, <사진 1>과 마찬가지로 사고 이듬해 오쿠마 정 공무원들이 실험 목적으로 농작물을 심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쿠시마 현의 현재 상황 및 농산물 유통 실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심지어 해당 사진은 지난 2013년 일본과 한국 SNS를 중심으로 이미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에도 방호복을 입어야 할 정도의 위험 지역에서 농산물 생산을 승인한 일본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자 10월 24일 머니투데이에서 “해당 벼는 판매 목적이 아니라 방사성 물질이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시험 목적으로 재배됐던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6년 전에 팩트체크된 사진을 두고 많은 네티즌들이 소위 ‘뒷북’을 치고 있는 셈이다.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유언비어는 정당한 문제제기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두려울 때일수록 잘못된 정보를 가려내는 이성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괴담이 아닌 팩트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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