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팩트체크]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개인 청구권 소멸?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8.1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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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 “식민지배 덕분에 한글이 보급됐다”, “1951년부터 독도를 자기네 것으로 해버렸다”, 최근 일본에서 나오는 주장들입니다. 한주 동안 언론에 보도된 팩트체킹 관련 주요 뉴스를 소개해 드립니다.

 

1.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개인 청구권 소멸?

일본 언론이 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해 미국 정부도 자신들을 지지한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들과 패전국인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때 한국 피해자들의 청구권도 모두 소멸됐다는 주장입니다. KBS에서 팩트체킹했습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이 주장의 근거가 되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판결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제임스킹이라는 미군 병사가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전범 기업에 강제동원됐는데, 여기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기각됐습니다. 미국 법원이 자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각이 된 이 판결을 두고 한 현직 판사는 “우리 대법원 판결이 실수했다”고 주장을 했고, 조선일보는 “한일 관계에 잘 맞는 명구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미국 행정부가 우려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법원 판결의 배경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있습니다. 조약 14조를 보면 ‘승전국인 연합국과 그 국민들은 일본에 대한 모든 배 보상청구를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이 조약 때문에 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전쟁 직후 한국의 지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고, 저 조약 당사자인 승전국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신 한국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가 적용됩니다. 식민지국들의 재산 권리문제는 “해당국과 일본이 특별 약정으로 처리한다”, 즉 양국이 알아서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저 조항을 근거로 맺은 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고, 이후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연합국의 권리와 식민지의 권리를 따로 떼서 봐야 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본 셈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있습니다. 한일청구권 협상을 진행하면서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한 해석을 의뢰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대일 청구권은 한일 양국이 협의해 결정할 일이다”고 밝혔습니다.

 

2. 후쿠시마 사고로 동해 세슘 2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동해에서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2배로 치솟았다는 주장에 대해 SBS에서 팩트체킹했습니다.

SBS 방송화면 갈무리

“동해 세슘이 2배가 됐다”는 근거는 일본 연구진이 쓴 논문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전에는 바닷물 1세제곱미터당 세슘이 1.5베크렐이었는데 2015과 2016년에는 3.4로 뛰었다는 것입니다.

논문에서 조사한 곳을 확인한 결과, 8곳이 일본 바로 앞바다이고, 2곳이 한국의 동해였습니다. ‘일본 앞바다가 오염됐다, 일본 수산물이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앞바다 데이터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해양수산부 두 기관을 합쳐서 총 54개 지점 데이터가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 대부분 1에서 2베크렐대로 나왔습니다. 일본처럼 3베크럴이 넘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후쿠시마 사고 이전보다 세슘 농도가 약간 높아진 것은 맞지만 식품의 세슘 기준치랑 비교하면 아주 극히 적은 양입니다.

국산 수산물의 경우, 기준치 100베크렐인데 최근 5년간 청어 한 마리에서 지난해 1베크렐 딱 한 번 나왔고 나머지는 모두 불검출입니다.

 

3. "식민지배 덕분에 한글 보급"? DHC방송 '역사왜곡' 발언 보니

일본 화장품회사 DHC의 방송에서 혐한을 넘어 역사왜곡 발언도 많습니다. JTBC에서 확인했습니다.

JTBC 방송화면 갈무리

먼저 한글과 관련해 “조선인들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해서,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서 지금의 한글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예전부터 일본 우익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입니다. 일본에서 우익사관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니시오 간지 교수가 1999년 쓴 책에 “일본 총독부 시대에 비로소 한글을 보급하고 소학교 교육에 도입됐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1910년 한·일 강제 합병 이후에 조선총독부가 보통학교 언문철자법, 즉 맞춤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근거로 한국에서 쓰이는 한글을 일본이 만들어줬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앞뒤 맥락을 자른 궤변으로, 한문보다 한글을 우선시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전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고종은 모든 법률 칙령은 모두 국문, 즉 한글을 기본으로 하라 명했고, 1907년에는 대한제국이 나라 차원에서 국문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이때 주시경 선생이 연구소에서 맞춤법 초안을 닦다가 강제 병합을 맞은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일본어뿐만 아니라 한글 교육도 조선총독부 주도로 이루어진 측면은 있는 것이 맞지만 민간 차원의 노력이 컸습니다.

1927년 당시 신문을 보면 교과서가 아닌 주시경이 저술한 책에 의지하여 문법을 가르친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그 이후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도 조선어학회가 연구해 온 결과물입니다.

일제강점기 전에는 대한제국이 그리고 강점기 때는 우리 민간 차원에서 한글 연구와 교육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1951년부터 한국이 멋대로 독도를 자기네 것으로 해버리고… 일본이 되찾기 위해 싸움을 건 적이 없고 말로만 했던 거죠”라는 주장입니다.

1951년이 언급된 이유는 당시 패전국 일본이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맺을 무렵,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미국에 있던 한국대사관에 “독도가 조선 영토였던 적이 없다”는 서한을 보냅니다. 일본이 지금까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서한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시된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의 역사적 사실을 미국이 전혀 모른 채 썼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리고 효력도 없습니다. 미국이 이런 일방적인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 영국이 반대표명을 했고 결국 최종 조약에는 독도에 대한 분명한 언급 자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 이전 최신 자료에 적힌 게 기준입니다.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에 보면 일본 영토를 구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독도는 일본 영토에서 분명하게 제외됐습니다. 방송에 나온 발언은 국제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4. 유네스코·아태방송개발기구, 가짜뉴스 퇴치 로드맵

유네스코(UNESCO)와 아태방송개발기구(AIDB)가 가짜뉴스 퇴치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연합뉴스 등에서 보도했습니다.

유네스코와 아태방송개발기구는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아태방송개발기구는 UN산하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소속 국가들에 방송미디어·전기통신 개발분야 지원 등을 위한 정부 간 조직으로 48개국 112개 회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 국제기구는 로드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참여를 유도해 가짜뉴스 대응을 국제사회 규범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우선 아태방송개발기구 주도로 가짜뉴스 대응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대학에 의뢰해 가짜뉴스가 아태지역 국가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할 계획이며, 결과물은 1년 후 나올 예정입니다.

또 이들 국제기구는 아태지역·국가·지역별로 워크숍·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말 사모아에서 아태지역 관계장관 특별회의를 열어 회원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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