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와 '오랜 시간'이 진화를 이끈다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9.09.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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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유채꽃 동산에 사는 나비들이 있었다. 유채꽃의 꿀을 빨아먹으며 사는 녀석이다. 어느 날 나비가 낳은 알 중 하나에 아주 작은 돌연변이가 생겼다. 별 것 아니었다. 그냥 구기(口器)의 길이가 1㎜ 정도 길어지는 사소한 돌연변이였다. 다행히 사마귀나 다른 육식곤충에게 먹히지 않고 애벌레 시절을 보낸 이 돌연변이는 이제 성충이 되었다. 조금 길어진 그 구기로 씩씩하게 꿀을 빨아먹으며 살았다. 다만 다른 나비와 아주 약간 다른 점은 유채꽃 말고도 다른 꽃의 꿀도 먹었다는 점이다. 유채꽃보다 덜 번성하기는 했지만 유채꽃 사이사이 작은 꽃이 피었는데 꿀이 있는 꽃의 중심까지가 조금 더 길었고 다른 나비는 구기가 채 닿지 않아 그 꿀을 먹지 못했다. 이 녀석은 간발의 차이로 그 꿀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꿀의 맛도 유채보다 좋지 못하고 그 양도 적어서 이 녀석도 웬만하면 유채꽃의 꿀을 즐겨 먹었다. 유채꽃이 흔할 때야 이 녀석이나 다른 나비나 별 차이가 없었다. 이 녀석의 돌연변이는 크게 해가 되지도 이익이 되지도 않는 돌연변이였다.

그래서 이 녀석의 후손도 다른 녀석들과 비슷하게 번식하고 비슷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해 유채꽃이 피던 곳에 멧돼지 녀석이 나타났다. 이 놈의 먹이가 되는 뿌리식물들이 몇 해 전부터 유채꽃 동산 너머에 번성하기 시작했고, 이 돼지들의 보금자리는 유채꽃 동산 반대쪽이었다. 돼지들이 뿌리식물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매일 유채꽃 동산을 가로질러 먹이를 먹으러 가는 것이다. 하루 두 차례 돼지들의 발굽에 유채꽃들이 짓밟히기 시작했다. 난감해진 건 유채꽃 꿀을 먹으며 사는 나비들이었다. 유채꽃들이 죄다 짓밟혀 제대로 꿀이 맺히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유채꽃들에 달려들어 꿀을 먹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꿀을 먹으려는 나비들의 개체수가 유채꽃이 가진 꿀보다 많았다. 돌연변이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였다. 힘겨운 경쟁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들 후손에게는 아주 약간의 혜택이 있었으니 바로 유채꽃 사이 드문드문 피어있는 작은 꽃이었다. 이들도 대부분 돼지 발굽에 밟히긴 마찬가지여서 살아남은 꽃이 드물었다. 하지만 다른 나비는 먹을 수 없는 아주 약간의 꿀은 이 돌연변이의 후손에겐 그나마 조금 더 버틸 여력을 주었다.

그런 시절이 몇 년이 지나자 돌연변이의 후손들이 다른 나비의 후손들보다 좀 더 많이 퍼져나갔다. 이들은 유채꽃 뿐 아니라 다른 꿀이 있는 곳까지의 깊이가 깊은 꽃들까지 열심히 빨며 다닌다. 이들의 후손끼리 짝짓기를 해서 태어난 나비는 다른 나비들보다 생존률과 번식률이 높았다. 이들은 폐허가 된 유채꽃 동산이 아닌 다른 곳의 다른 꽃들을 주로 찾아다녔다. 섭식의 범위가 달라지니 자연히 이들끼리 짝을 짓는 경우가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서식하는 곳과 원래의 나비들이 서식하는 곳이 서로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이 둘은 갈라지게 되었다.

돌연변이는 항상 나타난다. 유전자 차원의 돌연변이는 그러나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유전형질은 바뀌었지만 표현형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일부 겉으로 드러나는 돌연변이도 대부분 개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무용하다. 당연하다. 진화는 현재의 환경에 최적인 놈이 살아남게 한다. 이미 최적화된 상태에서 새로 생겨나는 돌연변이가 이익이 되긴 힘들다. 개체에게 불리한 돌연변이는 당대 혹은 몇 대를 지나면서 사라진다. 생존에 불리하니 잘 살아남기 힘들 것이고 자손을 남기는 비율도 적다. 몇 대를 그리 가면 자연스레 소멸하는 것이다. 그나마 무용하지만 큰 해도 끼치지 않는 돌연변이는 그래도 후손에게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무용한 돌연변이가 환경이 변하면 개체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도 그 이익이라고 해봤자 아주 큰 무엇은 아니다. 개체에게 아주 큰 변화는 유전자 한둘이 아니라 꽤 많은 여러 유전자가 모두 변해야 이루어진다. 하나의 돌연변이도 쉽지 않은데 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돌연변이가 이루어져 큰 변화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희박한 확률이다. 따라서 한두 유전자의 돌연변이 정도가 대부분인데, 이런 돌연변이로는 커다란 변화를 이끌기 힘들다. 그래서 사소한 변화 정도가 적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하나의 개체가 생겨날 땐 여러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은 표현되지 않고, 표현되는 아주 작은 일부도 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해가 되지 않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아주 작다.

그런 무용한 돌연변이가 대를 이어 전달되다 어떤 특정한 환경 변화에 의해 개체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 또한 그리 확률적으로 많은 변화는 아니다.

만약 무해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확률을 0.01% 정도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다시 그 돌연변이의 후손들이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다가 돌연변이가 이익이 되는 환경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를 다시 0.01%라고 생각해보다. 만 분의 일의 다시 만 분의 일이니 1억분의 1 정도의 확률이다. 이처럼 작은 확률이 과연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다. 만약 앞서 예를 든 나비들이 10000마리 정도의 개체수를 유지하는 집단이라고 해보자. (곤충들로서는 별로 많은 개체수가 아니다. ) 100억분의 1 확률이 1만분의 1 확률로 줄었다. 이 나비들은 1년에 한 번씩 짝을 짓는다. 즉 이 나비들의 한 세대는 1년인 것이다. 그렇다면 1만 년이면 이런 일이 한 번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돌연변이 설명. 출처: ZUM 학습백과

진화는 이렇게 일어난다. 어떤 변이가 도움이 될지, 어떤 개체가 돌연변이를 할지는 알 수가 없다. 모두 우연이다. 그러나 집단에서는 우연은 확률적 필연이 된다. 이 확률적 필연이 진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돌연변이가 개체에게 이익이 되면서 다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 생각해보자. 만약 돌연변이들이 그냥 나비들보다 생존율이 1%가 더 높아서 1% 더 많이 짝짓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백년이 지나면 일반 나비에 비해 2.7배 정도 더 많은 개체가 만들어진다. 3백년이 지나면 약 20배가 늘어난다. 600년이 지나면 400배가 된다. 아주 작은 생존율 아주 작은 번식률의 차이가 시간에 의해 증폭되면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진화는 이렇게 오랜 시간, 수많은 개체에서 진행되는 확률에 의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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