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두 나라 젊은이들과 함께 콘서트 현장감 전하고 싶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8.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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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녀시대 인기를 어떻게 당하겠어요. 신작이고 뭐고 그냥 날 샌 거죠.”

“...?! 와하하하!”

몇 초간 정적이 흐르다 객석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일견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무엇 하나 이례적이지 않은 게 없는 상황. 일단 얼마 전 예순 네 살 생일을 맞은 그가 난생처음 게스트 뷰(GV)를 위해 한국 관객들 앞에 섰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하필 그 자리에서 서른 번째 장편 상업영화 개봉일의 ‘실패담’을 ‘드립’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웃음의 포인트였다. 반응도 빨랐다. 하긴. 관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마니아들의 전문성이란 상영작에 대한 사전지식을 ‘제로’로 가정하고, 모든 코멘트를 가장 쉽고 간단하게 통역하려던 필자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가네코 슈스케 감독이 한국 관객에게 보인 특별한 친근함에는 ‘가족사적 배경’이 있다. 그의 부친 가네코 토쿠요시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극우파와 평생을 싸운 일본사회의 양심이었으며, 미술가인 모친 시즈에는 부친의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가네코 슈스케.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괴수영화 <가메라>(<가메라 – 대괴수 공중결전><가메라 2 – 레기온 내습><가메라 3 – 사신 아리스의 각성>)ㆍ<고질라>(<고질라ㆍ모스라ㆍ킹기도라 – 대괴수총공격>). 2016년 작 <신 고질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와 10여 년 전 한국에서도 히트했던 <데스노트>(<데스노트><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 시리즈의 감독. 언급한 작품은 2010년 12월 18일 개봉한 그의 청춘멜로영화 <바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야심차게 준비한 영화를 보러 왔을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빗나갔다. 거의 대부분이 같은 해 8월부터 현지 활동을 본격화한 소녀시대의 팬 이벤트에 온 손님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일까. 요컨대 “내 시대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실감했다”고 말하는 가네코 감독의, 자칫 서글프게 느껴질 수도 있는 술회가 오히려 너무나 유쾌했다. 개막식 날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엄정화와 함께, 흡사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아버지처럼 잔뜩 긴장한 채 레드카펫을 밟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렇듯 ‘망가지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며 ‘화자(talker)’가 아닌 ‘청자(listener)’의 위치에서 소통을 즐기던 그의 태도에 특별한 친근함이 더해진 데는 ‘가족사적 배경’이 있다. 우선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진보와 반전평화에 헌신했던 부친(가네코 토쿠요시)의 존재다. 토쿠요시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미국에 ‘아시아 반공의 교두보’ 역할만을 어필해 살아남은 극우파와 평생을 싸웠다. 또한 무엇보다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한일우호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가인 모친 시즈에는 부친의 든든한 동지였다. 가네코 감독이 그런 부모의 뜻을 이어받았음을 드러낸 것은 <가메라>ㆍ<고질라> 시리즈가 인기의 정점을 찍었을 당시. 그는 영화의 인기에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으려’던 자위대 홍보 움직임을 단호하게 잘랐다. 여기에 성립 이후 일관되게 평화헌법의 개악을 추진하며 한국과의 긴장관계를 부채질해 온 아베 정권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해진 것이다.

그렇듯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가네코 감독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다만, 그는 어떤 계몽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매일 실패를 거듭하는 가수지망생 주인공이 부모의 대학시절로 타임슬립해 두 사람을 이어주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 <빽 투 더 퓨처>의 여성버전이라 할 수 있는 <빽 투 더 아이돌> (원제는 'Linking Love')에 대해 수다를 떨며 막차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젊은이들에게 최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빽 투 더 아이돌>의 히로인, 타노 유카(가운데)는‘전형적인 느낌의 아이돌’과 차별화되는 입체적인 캐릭터. “이미 완성되어있는 사람보다 당장은 아니라도 발전 가능성을 가진 이를 발굴한다”는 가네코 감독의 지론에 따라 캐스팅되었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홍상현: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다녀가셨다. <고질라>ㆍ<가메라> 시리즈를 섭렵하신 감독을 초빙한 건 영화제로서도 영광이었겠지만, 본인의 감회도 특별하실 텐데.

가네코 슈스케:

“어휴, 무슨 말씀을! 제가 영광이었죠!”

그간 BIFAN 참가했던 동료 영화인들로부터 멋지더라는 이야기야 들었지만 막상 실제로 가보니 스케일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엄청났다. 심사위원으로서 긴장도 되고, 이전에 유럽의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을 했던 경험이 있지만 새삼 긴장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영화가 많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다른 심시위원들과 토론을 거듭하며 뛰어난 작품을 골라냈다.

 

홍상현:

잠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초등학교 시절 직접 괴수사전을 만들 정도셨다. ‘괴수 덕후’로 시작해 감독까지 된 1세대이시기도 하고. 다만, 성장기에 바라보던 괴수와 지금 바라보는 괴수의 느낌은 사뭇 다를 것 같다.

가네코 슈스케:

괴수영화를 만들어 보면 당시까지 이어지던 괴수 팬으로서의 입장이 사라진다. (웃음)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도 괴수에 대한 생각으로 늘 머리가 가득 차 있던 건 아니다. 만화ㆍ애니메이션이 발전을 거듭하고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이 이어지던 시대에 성장기를 보내면서 만났던 캐릭터 가운데 공교롭게도 괴수가 있었던 거다. 이 부분과 관련해 특기할만한‘사건’이 1966년 괴수 붐에 힘입어 TV에서도 괴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종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한 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전을 만들었다. (웃음)

 

홍상현:

초등교사ㆍ국어교사 면허를 취득한 이력도 눈에 띤다. 막연한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연출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연출하신 일도 있고.

가네코 슈스케:

사범대에 간 건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긴 했어도 워낙 쉽지 않은 일인 데다, 저 자신 아이들과 지내는 걸 워낙 좋아해서 교사가 된다는 선택지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조감독 면접날 직접 만든 8밀리 작품을 가져가 보여주었더니 덜컥 합격했다. 운이 좋았다. (웃음)

가네코 감독이 극우파와 대척점에 서있던 부모의 뜻을 이어받았음을 드러낸 것은 <가메라>ㆍ<고질라> 시리즈가 인기의 정점을 찍었을 당시. 그는 영화의 인기에 은근슬쩍‘숟가락을 얹으려’던 자위대 홍보 움직임을 단호하게 잘랐다. (사진은 <가메라 3 – 사신 아리스의 각성>의 한 장면)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홍상현:

1984년 장편영화 감독 데뷔 이후 40편 넘게 영화를 만드셨다. 다양한 필모그래피지만 ‘대중에 눈높이에 맞춘, 재미있는 장르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가네코 슈스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다. 만화를 보고, 그리며 자라 고등학교에 가니 직접 8㎜ 영화를 만들 정도가 되었고, 조감독으로 영화사에 취직해서 감독에 데뷔한 게 말씀하신 1984년이다. 관객을 위해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처음부터 전위영화가 아니라 오락영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 퇴사할 무렵이 되니 영화계 상황이 나빠지면서 ‘샐러리맨 감독’이라는 시스템이 사라지더라. 어쨌든 제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1999년의 여름방학>이라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연출했다. 그리고 다시 오락영화 연출 제안이 꼬리를 물면서 지금의 커리어가 형성된 거다.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동안 저를 이끌어주시던 프로듀서들이 돌아가시거나, 몰락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살아남았지. 고독한 현실. 여러 가지 감회가 든다.

 

홍상현:

<가메라>ㆍ<고지라> 시리즈의 감독이셨던 입장에서 헐리우드 리메이크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

가네코 슈스케:

5년 전 가렛 에드워즈가 감독한 <고질라>는 제가 처음 찍었던 <가메라>와 느낌이나 골격이 비슷한데, 이 방향성이 올바르지 않나 하는 게 제 개인적 견해다. 적어도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관객들로 하여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실재’로 느끼게 해주니까. 이 관점이 분산되면 논리적 구성 자체도 복잡해진다. 해서, <가메라>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도 고대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생체병기인 가메라와 이미 만들어져 있던 (익룡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라이벌, 가오스가 숙명의 결전을 벌인다는 간명한 스토리라인을 설정했다. 그 연후에 힘을 기울인 부분이, 영화가 최대한 리얼하게 비쳐질 수 있도록 하는 디테일이다. 다행히 많은 관객들이 재미있게 봐주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제부터 수많은 괴수가 등장하는 ‘괴수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라. 대략 20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흐름인데, 수많은 괴수가 복수로 얽혀 싸움을 벌이니 나름의 영화적 재미도 있지만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리스크(risk)가 발생한다. 제작물량, 관객 수 등과 관련된 ‘규모의 경제’ 없이는 다들 불안감을 느낄 테고.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저한테 맡겨주시기만 하면 3분의 1쯤 되는 예산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할리우드 프로듀서의 생각은 다르겠지. (웃음) 한정된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게 제가 데뷔해 지금껏 생활하고 있는 업계의 특성이나, 그게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 (웃음)

가네코 감독이 2006년 처음으로 실사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데스 노트> 시리즈는 현재까지 마니아가 존재할 만큼 한국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 <데스 노트> 한국 개봉 당시 포스터

홍상현:

한국에는 <데스 노트> 시리즈의 팬도 많다.

가네코 슈스케:

갑작스럽게 의뢰를 받아 만든 시리즈다. 제작자 쪽이 워낙 초조해 하다 보니 원작자도 제 의지대로 영화화하는데 힘을 실어주어 좋았다. (웃음) 아시다시피 만화 원작은 라이토, 즉,‘키라’와 L이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대결하게 되는 내용인지라 그대로 실사화하면 내용을 납득하기 쉽지 않다. 영화판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키라라는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도입부를 길게 잡았다. 자기반영적인 부분도 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선과 악의 논쟁과 관련한 내용에 당시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접했던 제 경험을 반영했다.

 

홍상현: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의 후카츠 에리와 오다 유지<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그리고 앞서 말한 <데스 노트> 시리즈의 후지와라 타츠야 등, 항상 젊은 배우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데 도움을 주셨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베테랑 배우들을 선호하는 기존의 거장들과 차별화되는 일면이다.

가네코 슈스케:

배우의 개성과 장점을 끌어내는데 보람을 느낀다. 그런 까닭에 이미 완성되어있는 사람보다 당장은 아니라도 발전 가능성을 가진 이를 발굴하려 애쓴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강박관념을 갖지도 않지만. 젊은 시절부터 영화 작업을 해 오다 보니 계속 기회가 주어졌다. 감사한 일이다.

<빽 투 더 아이돌>의 연출 포인트와 관련한 필자의 질문에 가네코 감독은 “그녀 자신 아이돌 활동을 하며 성장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오히려 제가 연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그는 교사면허를 가진 사범대 출신이지만, 일상에서조차 어떤 계몽적인 태도도 취하지 않는다. 현장 사진에서의 엄숙한 표정은 분명 쑥스러워서였을 것이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홍상현:

젊은 시절부터 아이돌 팬으로 유명하시다. 이번 BIFAN 특별상영작 <빽 투 더 아이돌>에서는 연출을 맡고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셨다. 본인의 희망이 반영된 건가? (웃음)

가네코 슈스케:

제가 아니라 투자사 대표가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저는 이야기의 디테일을 구성했다. (웃음) 거품경제가 붕괴할 무렵인 1991년을 기점으로 사회상황과 아이돌의 흥망성쇠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빽 투 더 아이돌>에 등장하는 제 1991년 작 <취업전선 이상 없다>는 당대의 현실에 대해 “사회의 풍요로움에 안주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당시에도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경박한 현실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세태가 문제가 되었으니까. 그로부터 다시 25~26년이 지나 경제가 정체기로 접어들고 점점 사회자체가 몰락해 가는 것에 반비례하듯 집단 아이돌(AKB48로 대표되는)이 출현, 인기의 정점으로 떠오르는 변화의 양상을 작품과 연관시켜보고 싶었다.

 

홍상현:

“사회의 풍요로움에 안주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오히려 ‘내가 어른’이라는 권위적인 태도와는 손톱만큼도 인연이 없어 보이는 분의 말씀이라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가네코 슈스케:

나이야 들었지만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오늘의 현실이라는 게 만만치 않지만 미래는 내 힘으로 만들어가는 거 아닌가. ‘노력하자’가 아니라 ‘좌절하지 말자’는 말씀이다. 제가 감히 누구를 가르칠 입장도 아니고.

 

홍상현:

‘울림’이 있는 말씀이다. 화제를 전환해 보자. 극중에서 아이돌의 계보를 구구단처럼 줄줄이 외우는 ‘덕후’ 카가 선배는 혹시 본인이 모델인가? (웃음)

가네코 슈스케:

어느 정도 자기반영적 측면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집단 아이돌이 출연하기 전까지 저 또한 극중에서 카가 선배가 말한 것처럼 아이돌은 집단화 되면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낡은 이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웃음)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제 오류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다시피.

<빽 투 더 아이돌>의 초반은 살짝‘만화적으로 구성된 아이돌 찬가’같은 느낌. 하지만 내용이 전개될수록 여성 캐릭터 사이의 우정,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정서적 유대감 등에 대한 묘사가 도드라진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홍상현:

<빽 투 더 아이돌>의 히로인, 타노 유카는 AKB48 출신이지만 이른바 ‘전형적인 느낌의 아이돌’과 차별화되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가네코 슈스케:

원래부터 노래와 춤, 퍼포먼스에 워낙 재능이 있어 연극에 캐스팅되었고,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과 비교할 때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 지난해 AKB48에서 독립한 뒤 뮤지컬에 진출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커리어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캐스팅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힘이 된 것 같지 않아 미안할 따름이다.

 

홍상현:

캐릭터 만들기를 위해 그녀에게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 알고 싶다.

가네코 슈스케:

그녀 자신 아이돌 활동을 하며 성장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오히려 제가 연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래 캐스트에게 그리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웃음)

 

홍상현:

<빽 투 더 아이돌>의 초반은 살짝 ‘만화적으로 구성된 아이돌 찬가’ 같은 느낌인데, 내용이 전개될수록 여성 캐릭터 사이의 우정,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정서적 유대감 등에 대한 묘사가 도드라진다.

가네코 슈스케: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메인 아이디어는 허술함 속에서 재미를 이끌어낸다는 거였다. 그 가운데 어머니에게 버림받는다는 비극적 지점에서 동료를 획득하고, 관계를 회복한다는 드라마적 요소를 끼워 넣었다. 서로 뻐기기 경쟁을 하던 두 동료가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화해해가는 모습도 그렇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싶었다. 뮤지컬드라마처럼 모두들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영상을 통해 에너지와 콘서트의 현장감을 관객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 실제로 BIFAN 홈페이지에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춤을 추는 관객이 있었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가네코 감독은 <빽 투 더 아이돌>에서 “뮤지컬드라마처럼 모두들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영상을 통해 에너지와 콘서트의 현장감을 관객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BIFAN 홈페이지에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춤을 추는 관객이 있었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국제적으로, 특히 오늘날 일본의 현실을 보며 깊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역사의 오점을 되풀이하려는 듯 폭주하는 이들 때문에요. 조금 더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지해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다만, 이런 걱정과 책임감은 저 같은 기성세대의 몫으로 남기고,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양국의 젊은이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공유하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습니다.”

 

필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올해 한국 관객과 만난 BIFAN 초청작 중에는 가네코 감독의 딸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도 있었다. 월드판타스틱블루 부문에서 상영된 옴니버스영화 <21세기 소녀>. 세 번째 에피소드 “projection”을 연출한 유리나 감독은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막상 딸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농구밖에 모르던 친구” 라며 쑥스러워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자식자랑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아서이리라. 다만 한국에 수입된 적도 없는 DVD를 들고 기다리던 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자체’로 사인을 해주면서, 분명 그들의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게 될 늦둥이 딸의 얼굴을 떠올렸으리라.

문득 지난 참의원 선거 당시 아베 정권의 개헌안을 비판하며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했던 가네코 감독의 트위터 계정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읽은 트윗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 BIFAN에서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는 예고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영화는 국경을 넘는다, 정부는 사이가 나빠도 영화인은 사이좋게 지내고 있잖아? 한일 우호 만세!”

굳이 한국어와 일본어 발음을 함께 표기한 “만세”라는 단의 울림.

선량한 웃음만큼이나 정의로운 심장을 가진 빨간 티셔츠의 “괴수 할배”가, 부디 오래오래 우리 곁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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