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왜 사람들은 조국에 분노하는가?

  • 기자명 강양구 기자
  • 기사승인 2019.08.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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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는 데에는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 도움이 된다. 하이트는 도덕 기반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다. 애초 학계의 이름난 심리학자 하이트는 『바른 마음』으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지식인으로 떠올랐다.

이 책의 핵심은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을 설명한 부분이다. 하이트에 따르면, 인간이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감성적 직관’이 ‘이성적 추론’보다 우선한다. 좋다/싫다 같은 직관이 우선하고, 이성적 추론은 고작 그런 직관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 역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어렵다.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런 감성적 직관을 좌지우지하는 도덕 모듈이 있다. 이 모듈은 마치 숲길을 가다 칡덩굴을 뱀으로 오해해서 오싹해지듯이 어떤 사건에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하이트는 동료 학자와의 연구와 논쟁을 통해서 도덕 모듈을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배려/피해(동정심), 공평/기만(공정성), 자유/압제, 충성/배신, 권위/전복, 성(고귀함)/속(추함).

이 과정에서 하이트는 이 여섯 가지 도덕 모듈이 좌파와 우파에게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피해를 입은 타자를 보고서 즉각적인 동정심을 느끼는 도덕 모듈(배려/피해)은 좌파에게 영향력도 크고 그 범위도 (가족, 인종, 국민을 넘어서 인류 심지어 동물까지) 넓지만, 우파에게는 영향력도 작고 그 범위도 좁다(가족, 인종, 국민).

반면에 권위에 복종하는 모듈(권위/전복)이나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충성하는 도덕 모듈(충성/배신)은 좌파보다는 우파에게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이트는 여섯 가지 도덕 모듈에 대한 반응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됨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그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했다.

‘공정성’에 집착하는 한국인

하이트의 여섯 가지 도덕 모듈 가운데 하나가 ‘공정성’(공평/기만) 추구다. 마땅히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다른 사람이 채갔을 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타인에게 기만이나 사기를 당했을 때 분노가 솟구치는 감정. 철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다양한 실험에서도 이런 공정성의 추구가 나타난다고 하니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성’ 모듈은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서 영향을 끼친다. 하이트에 따르면, 좌파의 경우에는 ‘동정심’(배려/피해)과 ‘공정성’이 충돌할 때 ‘동정심’으로 기울지만, 우파는 ‘공정성’을 우선한다고 지적한다. 빈자를 보호하는 일에 사회 공동체가 나서는 일(복지)에 좌파는 찬성하지만(동정심), 우파는 똑같은 일을 실패자/낙오자에 대한 특혜로 바라보는(공정성) 일이 그렇다.

한국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다수의 한국 사람은 (좌파와 우파 같은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공정성’ 도덕 모듈(공평/기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듯하다. 사회 복지를 확대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안전망’을 촘촘하게 하는 것보다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하는 쪽으로 개혁의 방향이 쏠리는 것이 그 증거다.

따지고 보면, 현직 대통령 탄핵의 계기가 되었던 최초 사건도 이화여자대학교가 특정 학생(정유라)에게 특혜를 줬던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그 연쇄 효과의 결과인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공정성).

심지어 ‘공정성’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한국인조차도 비슷한 패턴대로 판단한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절 부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세력조차도 자신의 성과를 ‘노력해서 얻은 성취’로 정당화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실패자/낙오자의 부당한 반발로 간주한다. 그들 나름대로 ‘공정성’ 모듈이 작동한 결과다.

한국 사람이 도대체 왜 이토록 ‘공정성’에 민감하게 되었는지 따지는 일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작업일 테다. 여기서는 고난했던 한국 현대사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SBS 화면 캡처

왜 조국에 분노하는가?

이제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자.

조국 내정자의 말대로 지금 거론되는 여러 의혹 중에서 그가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열성 지지자가 입을 모으듯이, 법무부 장관이 되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며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때에 나온 이런 논란 자체가 보수 언론의 발목잡기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선동에 대중이 넘어갔다고 간주하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을 염두에 두면, 대중의 감성적 직관(공정성)이 이미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이야기했던 이 정부로부터 기만당하고 더 나아가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조국 내정자나 문재인 정부 또 그 열성 지지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저렇게 짜였고, 그 계급의 상층부에서 살아가던 조국 내정자와 그 가족은 같은 계급 구성원이 하던 대로 해왔을 뿐인데, 더구나 탈법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냐고. 이 지점에서 다수의 한국 시민은 이렇게 반발하지 않을까.

바로 그런 특권을 흔들어보자고 들었던 게 촛불이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게 이 정부 아니냐고.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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