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우파정당이 총선에서 3번 패배한 게 분열 때문?

  • 기자명 박강수 기자
  • 기사승인 2019.08.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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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통합의 불을 지피고 나섰다. 황 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살리자 대한민국! 文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자유 우파의 통합을 위해서 저를 내려놓겠다”고 외쳤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여태까지 총선이 20번 있었는데 자유우파정당이 이긴 것이 15번”이라며 “O번은 분열 때문에 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진 횟수에서 언론사별 보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현장을 최초 보도한 파이낸셜뉴스는 “우리가 20번 총선 중 3번 졌는데 왜 졌나. 분열 때문에 졌다”라고 옮긴 반면 연합뉴스는 “(패배한 5번은) 나뉘었기 때문에 졌다”라고 전했다. 이를 받아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패배한 5번은) 나뉘었기 때문에 졌다”라고 보도했고 “3번 졌다”라고 보도한 매체로는 뉴시스와 뉴스원이 있었다. 황 대표의 발언 영상을 확인한 결과 해당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았다.

 

(7분 50초부터) “지난번 총선 몇 대 총선이었습니까? 20대 총선이었죠. 그니까 총선 선거가 몇 번 있었다는 소립니까? 20번 있었죠. 거기서 우리 자유우파정당이 그 20번 중에 몇 번 이겼습니까? 모르시죠? 15번 이겼어요. 몇 번 이겼다고요? (15번) 20번 중에 몇 번 이겼다고요? (15번) 우리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겨본 정당입니다. 이길 수 있잖습니까? 20번 중에 15번 왜 못하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3번 졌습니다. 이 앞에 선거에서도 졌습니다. 왜 졌냐. 왜 졌을까요? 분열입니다. 분열 때문에 졌습니다. 나눴기 때문에 졌고 우리가 뭉칠 때는 다 이겼어요. 그렇죠 여러분? 이제 어떡해야 됩니까? 뭉쳐야 됩니다.” 

 

황 대표는 “3번 졌다”고 말했다. “(패배한 5번은)”이라고 보도한 기사들은 정확한 인용문을 확인하지 않고 총 선거 횟수에서 승리한 숫자를 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주장은 간명하다. 자유우파정당은 20번의 총선에서 15번 이겼고 3번을 졌는데 분열 때문에 졌다. 사실일까. 뉴스톱에서 팩트체크해 보았다.

 

1. 자유우파정당은 20번 총선에서 15번 이겼다?

사실이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선거를 실시한 이래 대한민국에는 총 20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이버선거역사관 기록과 경향신문의 대한민국 정당사 인터랙티브 뉴스를종합해 정리한 역대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원내 1당을 차지한 경우를 기준으로 살펴 보면 자유당(2회), 민주공화당(5회), 민주정의당(3회), 한나라당(2회),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 새누리당이 각각 1회로 도합 15번이다. 보수우파 계열 정당이 15번 승리했다는 황 대표의 발언은 사실인 셈이다.

1948년 이후 20번의 총선 결과. 붉은 색은 보수계열 제1정당, 파란 색은 진보계열 제 1정당.

초대와 2대 총선의 승패 여부는 불분명하다. 1948년 초대 제헌국회에서 제 1세력을 점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이승만이 중심에 있었으나 신탁통치 반대를 위해 김구, 김규식 등과 세력을 규합한 연립 운동 단체로 하나의 정당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어느 한 세력의 승리라 규정하기에 적절치 않다. 1950년 2대 총선의 경우에도 야당 성향이 명확해진 민주국민당과 이승만의 대한국민당이 같은 의석 수를 기록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대한국민당, 대한청년당이 모여 자유당의 모태가 되긴 하지만 선거 이후의 일이다. 한 쪽의 승리 또는 패배라기에 무리가 있다.

보수우파정당의 15번 총선 승리가 모두 자랑할만한 사례는 아니다. 5.16 쿠데타 이후 치러진 1963년 6대 총선, 유신 쿠데타 이후 치러진 1973년 9대 총선, 12. 12 사태 이후 치러진 1981년 11대 총선의 경우 국민들의 참정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다. 각 선거는 쿠데타 이후 들어선 군부 정권의 정치활동 금지, 정당 해산 조치를 바탕으로 치러졌다. 유신 체제 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전체 국회의원의 1/3을 추천, 임명했으며 전두환 신군부는 야당 역할을 할 위성정당을 창당해 정당 간 경쟁 체제를 허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선거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가운데 따낸 승리들이다. 이 찜찜한 승리조차도 황 대표에게는 빛나는 훈장인 것일까.

 

2. 자유우파정당이 기록한 3번의 패배는 분열 탓이다?

3번 패배는 사실이지만 원인이 분열 때문만은 아니다. 황 대표가 특정하진 않았으나 앞서 설명한대로 초대와 2대 총선의 승패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자유우파정당이 기록한 3번의 패배는 4.19 혁명 이후 치러진 1960년 5대 총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하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 그리고 가장 최근 치러진 2016년 20대 총선을 가리킨다. 이 세 번의 총선에서 성패를 가른 것은 보수 정당의 분열이었을까?

1960년 제5대 총선은 3.15 부정선거와 그에 따른 4.19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몰락하고 3차 개헌과 함께 내각제를 도입하면서 실시된 선거다. 선거 결과 민주당이 민의원 233석 중 175석, 참의원 58석 중 31석을 차지하면서 압승했고 자유당은 각각 2석, 4석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 외 의석을 배출한 정당으로는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이 있다. 자유당 참패의 원인은 분열보다는 혁명(4.19)을 불러낸 부패(3.15)에 있어 보인다. 보수의 분열은 없었고, 독재로 인한 4.19혁명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2004년 제17대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지배한 선거였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주도하에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뒤 전국적인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일었고 이는 4월 15일 선거결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었고 한나라당은 121석, 새천년민주당은 9석을 얻었다. 역시 보수 정당의 분열은 없었다. 무리한 탄핵추진으로 인해 국민 여론이 돌아선 것이 원인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은 오히려 민주당계열이 분열된 사례다. 먼저 갈라선 쪽은 야권,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새누리당에서는 공천을 둘러쌓고 친박, 비박 세력 간 갈등이 심각했다. 당이 쪼개지진 않았으나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1당, 국민의당이 38석으로 3당을 차지해 12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을 누르고 16년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다. 외견상으로는 보수정당은 공천 갈등은 있었지만 당이 쪼개진 것은 아니고, 진보정당은 아예 당이 갈라져 두개가 나왔음에도 보수정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는 데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 실정에 대한 국민 염증이 쌓이던 시기였다.

오히려 분열을 겪었던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다. 1995년 3월 김영삼 세력과 갈등 끝에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김종필은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한다. 같은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에서 당명을 바꾼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제1당에 오른다. 2008년에는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 갈등이 공천 심사를 전후해 극으로 치달았다. 당을 장악한 친이계 주도 공천에서 탈락한 홍사덕, 김무성, 서청원 등이 한나라당을 나가 친박연대를 결성해 총선에 출마했고 14석을 얻는다. 당시 한나라당은 152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대한애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통합하는 보수 빅텐트론을 주장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가 보수 정당 패배 원인을 분열에서 찾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 탓에 선거에서 3번이나 졌다는 황 대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되레 보수정당은 분열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선거를 제패하곤 했다. 그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언제나 부패와 독선, 퇴행적 정치 행보였다. 분열은 그 징후이거나 결과였을 뿐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을 절반쯤은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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