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축산·도살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침해한다"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9.09.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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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은 인공지능, 기후변화, 뇌과학, 자율주행 자동차 등 다양한 미래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을 연재한다. 각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들과 김준일·강양구 뉴스톱 팩트체커의 대담으로 구성된 <미담>은 지식콘텐츠 팟캐스트다. 대담의 풀 버전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청취할 수 있다.

 

‘동물권’. 사람의 인권조차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는 세계에서 동물의 권리라니, 생소하고 마뜩찮게 여기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윤리가 작동하는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모순일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더욱 인간 사회에서의 윤리만큼이나 동물 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톱>의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 9회 ‘소중한 생명, 귀한 인연, 동물윤리’ 편에서 최훈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함께 동물권의 개념과 논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라면 피부색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고 여기게 된 게 100여년이 안 되죠. 인간의 권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동물의 권리까지 확장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찾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배움이나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까지 존재합니다. 이런 모든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해요. 인간의 본능이나 본성 차원에서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미천한 동물이라도 살려고 하는 욕구,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 죽고 싶지 않은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동물권이란 동물의 그런 본능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훈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왼쪽)와 김준일 팩트체커.

최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동물을 위한 윤리학>에서 동물권이라는 표현 대신 ‘도덕적 지위(moral statu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양 윤리에서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접근 방법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가 공리주의적 접근이고 둘째는 권리론적 접근이다. 공리주의적 접근이 이득이 클 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라면, 권리론적 접근은 권리를 결코 버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 생각한다. 인간의 권리는 이견 없이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론적 가치를 지니지만,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는 공리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있으므로 동물에게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최 교수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가 있으므로 함부로 대하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거꾸로 우리는 동물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고 말했다.

동물 윤리에 대한 이슈는 다양하다. 예컨대 동물 실험을 살펴보자. ‘동물해방론’을 주장한 철학자 피터 싱어와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에게 이득을 준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라는 단서 아래, 동물 실험에 찬성한다. 그러나 철학자 톰 리건과 같은 권리론자들은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보아서 동물 실험에 반대한다.

동물 윤리의 차원에서 더 큰 쟁점이 되는 문제는 ‘육식’이다. 인간이 육즙이 담긴 고기를 먹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의 정도를 비교한다면, 인간이 얻는 이득이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다. 만약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기르고 죽일 수 있다면 육식 역시 윤리 문제 없이 허용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지만, 문제는 그런 가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대 사회의 공장식 축산과 도살이다. 이는 동물 윤리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와 자원 배분 문제의 차원에서도 인류에 여러 문제와 비용을 양산한다. 최 교수는 “육식을 통해 얻게 되는 막대한 피해에 비해 인간이 얻는 이익은 육즙을 삼킬 때의 기쁨 정도”라며 공리주의적으로 모순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동물 윤리 차원에서 육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공 고기 배양’이라는 방식도 논의된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장기 유사체를 생성하는 오가노이드(organoid) 방식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고기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오가노이드는 동물 실험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기술이 시장에 적용되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최 교수는 “좀 비싼 걸 먹더라도 누구에게 주는 고통과 저울질했을 때 (비용을 내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윤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물 윤리의 필연적인 결론은 ‘채식’일까? 최 교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영양학자들의 대체적인 합의에 따르면, 적어도 성인의 경우 건강 문제의 차원에서 육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영양학적으로 육식을 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는 과학적 입증이 이루어진다면,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 윤리의 과제는 향후 더욱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 교수는 “인간 규범이나 관습의 변화가 법을 바꾸기도 하지만, 법이 바뀌어서 규범과 관습이 바뀌기도 한다”면서 “EU 국가에서는 동물 복지를 강조하면서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데, 글로벌 경제 시대에 수출입을 위해 동물 윤리가 자연스럽게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한국 사회에서 동물 이슈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기견 문제다. 최 교수는 “어린 아이를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유기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 차원에서 심각한 비난을 받을 만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간을 유기했을 때는 시설에서 돌보는 시스템이 있거나 성인이 됐을 때 자립할 수 있지만, 동물은 평생 인간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애당초 애완동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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