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6.25 참전 결정 2번째? 영국이 두번째다

  • 기자명 임영대
  • 기사승인 2019.08.29 09: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년 8월,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정보교환협정(일명 지소미아GSOMIA)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한편으로 아세안 국가와의 안보협력 강화를 위해 태국과 새로운 지소미아를 체결하겠다고 나섰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8월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발표를 하고 있다. 출처: 청와대

태국과의 지소미아 체결이 정확히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가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정치적인 사안이므로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가볍게 예측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에 대한 평가는 유보함이 옳겠다.

다만 정부가 낸 이번 발표문에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태국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지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다음달 1~3일 문재인 대통령의 태국 방문을 계기로 한-태 지소미아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태국은 미국 다음으로 6·25 전쟁 참전을 결정한 나라로 지소미아 체결 의미가 크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정부태국과 지소미아 체결 추진..군사협력 강화(종합)(뉴시스, 입력 2019.08.27. 14:24)

 

그런데 태국은 6.25 참전 결정을 내린 2번째 국가가 아니다. 심지어 실제로 병력을 2번째로 파견한 나라도 아니다. 6.25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을 날짜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참전 결정일 및 한국 도착일 (자료: 국방부)

참전국

참전 결정일

한국 도착일

비고

미국

1950년 6월 27일

1950년 6월 25일

지상군 파병은 6월 27일 결정, 7월 1일 한국 도착

영국

1950년 6월 28일

1950년 6월 29일

지상군 파병은 7월 26일 결정, 11월 3일 한국 도착

오스트레일리아

1950년 6월 29일

1950년 6월 30일

일본 주둔 전투비행대대 임무전환 7월 1일, 8월 8일부터 지상군 모병, 도착은 9월 27일

뉴질랜드

1950년 6월 29일

1950년 7월 30일

지상군 파병은 7월 26일 결정, 12월 31일 한국 도착

캐나다

1950년 6월 30일

1950년 7월 30일

지상군 파병은 8월 7일 결정, 12월 18일 한국 도착

네덜란드

1950년 7월 3일

1950년 7월 19일

지상군 파병은 8월 11일 결정, 11월 23일 한국 도착

터키

1950년 7월 18일

1950년 10월 17일

 

그리스

1950년 7월 20일

1950년 12월 1일

지상군 파병은 9월 1일 결정, 12월 9일 한국 도착

프랑스

1950년 7월 22일

1950년 7월 29일

지상군 파병은 8월 25일 결정, 11월 29일 한국 도착

벨기에

1950년 7월 22일

1951년 1월 30일

 

룩셈부르크

1950년 7월 22일

1951년 1월 30일

 

태국

1950년 7월 22일

1950년 11월 7일

공군은 51년 6월 18일에 파견

남아프리카공화국

1950년 8월 4일

1950년 11월 16일

일본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인수한 일시는 11월 5일

에티오피아

1950년 8월 10일

1951년 5월 6일

 

필리핀

1950년 9월 7일

1950년 9월 19일

 

콜럼비아

1950년 9월 18일

1951년 5월 14일

지상군 파병은 11월 14일 결정, 51년 6월 15일 한국 도착

*미국 해군과 공군은 25일부터 한국에 출동했으나 이 군사행동은 주한 미국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엄호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을 지원하는 정식 참전이 아니었음.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콜럼비아는 해군부터 파견.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공군부터 파견. 

****태국은 프리깃함 2척, 수송선 1척, 육군 1개 대대와 의무대를 동시에 파견.

 

태국은 외교부가 주장한 것처럼 참전을 결정한 2번째 국가가 아니다. 참전을 선언한 2번째 국가는 영국으로, 홍콩에 주둔하고 있던 동양함대 소속 순양함과 구축함을 파견해 미 해군과 공동으로 작전하게 함으로써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한 나라이자 실제로 참전한 2번째 나라가 되었다.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태국은 유엔군을 파병한 전체 16개국 중에 9번째(같은 날짜에 참전을 선언한 나라는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참전 결정을 내렸다. 실제로 한국에 병력이 도착한 날짜를 기준으로 해도 터키에 이어 10번째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만 따져 본다면 필리핀보다 먼저 참전 선언을 했지만, 실제 병력 파견은 또 필리핀보다 늦었다. 그런데 외교부는 왜 태국을 “미국 다음으로 참전을 결정한 나라”라고 발표했을까? 이렇게 순서가 뒤에 있는데?

그 이유는 지상군 파병 선언에만 주목한 탓으로 보인다. 해군과 공군을 제외하고 지상군을 파병하겠다고 선언한 순서만 따져 보면 태국은 미국에 이은 2번째가 맞다. 위에 작성한 표를 보면 터키가 7월 18일로 2번째고 태국은 3번째지만, 사실 이날은 터키가 내부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날이고, 한국에 파병하겠다고 유엔에 공식적으로 회답한 날짜는 그보다 뒤인 7월 25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지상군의 역할이 결정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해군과 공군이 수행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며, 육군만 가지고는 현대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20세기에 벌어진 어느 전쟁도 제해권과 제공권 없이 승리하지는 못했다.

외교부가 태국을 “2번째 참전국”이라고 띄워준 이유가 정말 지상군 파병을 선언한 순서에만 주목해서였다면, ‘지상군 파병’이라고 명시했어야 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언급 없이 단순히 태국이 2번째 참전국이라고만 적는다면, 이는 태국보다 먼저 참전을 선언하고 한국을 위해서 전투에 참여한 다른 연합국들이 수행한 역할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언사라고 볼 수 있게 되어버린다. 외교부가 조금만 더 세심한 표현을 해주길 요망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