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언론·음반·제약까지...'100년 역사' 담긴 종로 평화당인쇄 건물

  • 기자명 석지훈
  • 기사승인 2019.09.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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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타워를 지나 조계사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다보면, 전면부를 멋없는 콘크리트 슬랩으로 처리한 자그마한 건물 하나(사진 1, 구글 스트리트뷰 캡쳐)가 여러 빌딩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건물을 그냥 지나쳐버리지만, 조금이라도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특이한 점을 금세 발견하게 된다. 콘크리트 슬랩에 맞추어 덕지덕지 시멘트가 발라진 벽을 살펴보면 한눈에도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창문과 문짝이 붙어있고, 그 구조를 좀더 들여다보면 사실 이 건물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금세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1> 견지동 60번지 (주) 평화당인쇄 사옥. 2019년 현재의 모습. 구글 스트리트뷰 캡쳐.

 

현재 (주)평화당인쇄의 사옥으로 쓰이고 있는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60번지의 건물은 1923년(혹은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지어진지 거의 100년을 눈앞에 둔 역사적인 건물(사진 2, 2004년경 사진)이다. 건물의 건축연대가 알려진 것으로는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사진 > 2006년 "리모델링"으로 원형이 파괴되기 전까지 남아있던 견지동 60번지 (주)평화당인쇄 사옥의 본래 모습. 1923년 혹은 그 이전에 처음 건축되었다. 사진 출처: 블로그

 

이 건물의 모습이 사진으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923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전면광고(사진 3)에서이다. 당시 이 건물은 조선도서주식회사(1920년 6월 창립)의 사옥으로 쓰이고 있었다. 조선도서주식회사는 1922년 연말까지 주소지가 경성부 관훈동 30번지(민영휘 소유 건물)로 되어있었는데, 아마도 1923년 새해 초에 새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의 광고에는 옮겨간 건물이 새로 지은 건물이라는 언급이 없어서, 실제로는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이 1923년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1920년대까지도 한겨울에 건물을 준공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므로 더더욱 그렇다. 당시 광고의 사진을 보면 2층 구조에 벽돌로 뾰족한 박공을 내어 건물 양 옆에 배치하고 현관 위 2층에는 발코니를 둔 모습이다. 믿을수 없게도, 이 건물의 이같은 입면 형태는 매우 근년, 즉 2006년에 현 소유주에 의한 "리모델링"이 벌어지기 전까지 거의 90년 남짓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사진3 > 동아일보 1923년 1월 21일자 전면광고에 실린 견지동 60번지 양옥의 모습. 당시에는 조선도서주식회사 사옥이었다.

 

조선도서주식회사는 이 건물에서 1930년까지 운영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경영난으로 1931년을 전후한 무렵 박문서관에 흡수, 합병되고 말았다. 그 이후 이 건물에는 곧바로 <중외일보>가 들어와 이를 인수해 사옥으로 사용하였다. <중외일보>는 이 무렵 정간과 경영진의 교체 등을 겪고 있었는데, 그리하여 1931년 11월 27일부터 <중앙일보>로 제호를 교체하고 발행하게 되면서 자연히 이 건물도 <중앙일보>의 사옥이 되었다 (사진 4). 그러던 중 1933년 2월에 여운형이 <중앙일보>를 매수해 그 제호를 다시 <조선중앙일보>로 바꾸며 쇄신을 꾀하는 과정 속에, 이 신문사는 1933년 6월 18일 같은 견지동의 구 조선일보 사옥 (견지동 111, 현 농협중앙회 견지동지점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사진 4> <중앙일보> 1932년 12월 11일자에 등장하는 중앙일보사옥 전경. <중외일보>-<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로 제호와 경영권이 바뀌던 와중에 계속해서 이 신문사들의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견지동 60번지의 이 건물에는 크고 작은 회사들이 계속 입주했다 나가기를 반복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순수 조선인 경영의 음반사"로 자부했으나 2년여 만에 문을 닫고 단명한 코리아 레코드사였다. <조선일보> 1935년 8월 17일자에 나온 코리아레코드 광고(사진 5)를 통해 이 건물이 당시 코리아레코드 사옥이자, 코리아레코드가 야심차게 설립한 이른바 "코리아 음악연구소" 역시 입주해 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 역시 단명해서, 1936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사진 5> <조선일보> 1935년 8월 17일자 "코리아 레코드" 광고에 등장하는 견지동 60번지 양옥. (빨간 네모 안) 당시 코리아레코드의 사옥이자 "코리아 음악연구소"가 입주해 있었다.

 

한편 이 건물의 후면에 붙어있던 기존의 공장시설에는 1934년 말부터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지물상 이근택이 1920년에 설립한 평화당주식회사가 입주해있었는데, 이 회사는 대서용지와 각종 문서 서식 등의 인쇄 이외에도, 당시 꽤 인기를 끌던 "백보환" 등의 각종 강장제를 제조하는 제약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6년 코리아레코드가 폐업하던 무렵 평화당이 이 건물 전체를 사들여 사무실과 공장을 모두 이곳에 두고 영업하게 되었다. (사진 6) 평화당은 이후 1954년에 제약업을 접은 뒤 (주)평화당인쇄로 사명을 바꾸고 인쇄사업만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후 2019년 현재까지 이 견지동 60번지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 건물에 본사를 두고 영업하고 있다. 이런 덕택으로 그 이후 이 주변 일대에 불어닥친 대대적인 재개발과 도심 개발의 풍파 속에서도 그 건물이 최근까지 그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했던 것이다.

 

<사진 6> <동아일보> 1936년 4월 5일자 백보환 전면광고에 등장하는 견지동 60번지 평화당주식회사 사옥의 스케치.

 

그러나 그렇게 잘 버티던 (주)평화당인쇄 사옥은 지난 2006년 창업주 이근택의 손자 이 모씨로 이어지는 경영권의 승계 과정 와중에, 거의 83년 동안 유지되었던 원래의 전면부를 "리모델링"의 미명 하에 완전히 파괴당해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의 공사 광경을 내 스스로가 직접 목격했는데, 그 건물의 상징과도 같았던 건물의 전면부를 아예 뜯어내 철거하고 이를 현재의 형편없는 콘크리트 슬랩으로 바꿔버렸다. 또 그 지붕도 완전히 갈아내고 내부의 평면도 상당 부분 개조해버려, 오늘날에는 측면과 후면의 벽체, 그리고 내부 공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래 건물의 모습을 상고하는 것이 여간 어려워졌다.

<사진 7> 2006년 5월 6일 전면이 완전히 철거된 직후의 (주)평화당인쇄 사옥의 모습. 필자 촬영.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건물의 벽 중 3면과 내부 일부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뜻있는 사람의 의지만 있다면 이 건물의 원형을 복구하고 등록문화재 등록 추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출판사-신문사-음반사-제약회사-인쇄사 등 정말로 다양한 업종의 근대 회사들이 거쳐간 공간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건물의 역사적 가치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옛 건물들이 단순한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오늘날 이 시점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안타깝게도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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