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왜(倭)엔 '난쟁이'라는 뜻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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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왜(倭)엔 '난쟁이'라는 뜻 없다
  • 김현경
  • 승인 2019.10.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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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일관계가 많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본을 왜(倭),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멸시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상대로 멸시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 그와 같은 표현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쉽게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2일자에 실린 CW생, <부인문제에 대하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나(支那)나 우리가 왜국(倭國)이니 왜(倭)놈이니 하야 멸시(蔑視)하든 일본(日本)이나 일인(日人)도 유(有)하지 안는가

 

이렇듯 일제강점기에도 사람들은 왜국이나 왜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히려 식민지 지배하에 있으면서 억압받고 차별받은 감정을 그러한 표현으로 분출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서의 ‘왜’, ‘왜놈’은 여전히 유효한 말이었다. 1967년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도 눈에 띈다.

 

지난 26일밤 명동 거리에서 ‘조센징’ ‘조센징’ 하면서 한국 청년을 두들겨패던 일본인 한 사람이 경찰에 잡혀 즉심에 넘어갔다고 한다. (중략) ‘조센징’이란 일본인이 우리를 멸시하거나 모욕할 때에 쓰는 그들 독특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그런 식으로 용어를 쓴다면 우리는 여기서 부득이 ‘왜놈’이란 말을 잠시 쓸 수밖에 없다. 일본인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용어가 바로 ‘왜놈’이기 때문이다. (후략)
경향신문 1967년 10월 28일자 <여적>

 

이러한 ‘왜’에 대하여 일본 측에서도 달갑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우리만 해도 ‘조센징’이라는 말에 분노하고 ‘조선’이라는 호칭에도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주한일본대사관에서는 ‘왜’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한 적도 있었다.

 

◇…주한일본대사관에서는 최근 한국인 직원 67명에 대해 일본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왜(倭)’자에 대한 의미를 설문조사.

◇…이설문지는 ‘일본인이 한국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朝鮮人(조센징)”이라는 낱말이 멸시적 의미로 쓰이고 있어 한국인이 이를 싫어하듯이 일본인도 자신을 지칭하는데 “왜”자를 싫어한다’며 ‘이같은 양국간의 부정적 호칭은 문화교류 등 한・일간의 협력관계에 악영향만 미친다’고 지적하고 이번 설문결과를 양국간의 친선도모를 위한 기초자료로 삼겠다고 설문배경을 설명.

◇…설문 내용은 ‘“왜”자가 일본 국가 모독이나 일본인 멸시의 의미로 쓰이는가, 아니면 단순히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물었으며 이에 대해 한국인들의 응답은 대부분 국가 모독보다는 멸시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대답.

◇…이에 따라 일본대사관 측은 이같은 기초 조사가 끝난 뒤 한국 정부와 조만간 양국간의 용어 사용 개선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전하기도.

 

‘왜’란 무슨 뜻일까?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사이에 ‘일본’이라는 국호가 정착되었는데, 중국의 역사서 등에는 그 이전에 열도 상에 존재한 나라의 이름을 ‘왜’라고 부르고 있었다. 즉, ‘왜’란 일본의 옛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왜(倭)’라는 한자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에 대하여 한국 사람들은 왜(倭)가 키 작을 왜(矮) 자와 같은 말이며, 왜소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온 듯하다.

 

일본(日本) 사람을 왜(倭)놈이라 하는데 그 어원(語源)은 그들이 본래(本來) 왜소(矮小)한 탓이다.
경향신문 1961년 2월 26일자 <여적>

 

“그들 왜놈은 원래 난장이같이 키가 작다고 하여서 왜(倭)라고 불리는 무리들이요. (후략)”
박용구, <계룡산> 47회 (<경향신문> 1964년 1월 11일자)

 

이웃나라 일본(日本)을 가리켜 우리는 예부터 ‘왜(倭)’라 불러 왔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체구가 작은 때문이었는데 몇천년을 두고 그렇게 왜소(矮小)함을 면치 못했던 그 사람들이었건만 (후략)
<경향신문> 1970년 5월 25일 <사설> 식생활의 개선

 

본래 일본인의 키나 골격이 한인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었다는 것은 역사적 실증이다. 일본의 옛 호칭인 ‘왜(倭)’라는 말의 어원부터가 ‘왜소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연유되었다고도 전한다.
경향신문 1978년 6월 23일자 <여적>

 

물론 왜(倭)라는 말의 어원이 왜소하다라는 이야기에 분명한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아일보 1976년 7월 31일자 기사 <부모보다 큰 ‘왜인탈피’ 급속도로 향상된 일본인의 체위>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일본의 옛날 호칭이었던 ‘왜’(倭)라는 말은 그 출전은 어떻든 한국 사람들에겐 ‘왜소(矮小)’란 뜻으로 통했었다.

이로 볼때 그 출전이야 어쨌든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식으로 통했다고 적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다음과 같은 해프닝도 있었다. 1996년 1월 28일 <동아일보>의 기사 <일본인 더 이상 ‘倭人’ 아니다>에 ‘키 작다고 일본인을 왜인(倭人)이라 불렀다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는 문장이 기재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용균 씨는 다음과 같은 독자 의견을 기고하였다.

1996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일본인 더 이상 ‘倭人’ 아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키가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비교해 작지 않다는 연구논문 내용이 지난달 28일자 21면에 소개됐다.

그런데 기사 첫부분에서 ‘키가 작다고 일본인을 왜인(倭人)이라 불렀다’고 설명하고 제목도 ‘일본인 더 이상 倭人 아니다’고 붙여 놓았는데 전달하려는 내용으로 보아 한자표기를 ‘왜인(矮人)’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倭’는 ‘일본 나라이름’을 뜻하며 일본이라는 정식 국호가 사용되기 이전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본을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倭’라는 말은 옛문헌인 <한서지리지>와 <위지왜인전>에 나오는데 이는 과거 중국인들이 일본을 얕잡아 보고 멸시하는 뜻으로 사용했던 말이다.

<동아일보> 1996년 2월 3일자 <모니터 광장> 김용균(고교 교사) <키작은 사람 뜻하는 한자는 ‘왜인(矮人)’>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왜(倭)’라는 한자에는 ‘왜소하다’라는 의미가 없다. 현재 전해지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한자사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왜(倭)는 순모(順皃), 즉 순종하는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청나라의 언어학자인 단옥재는 이 글자에 대하여 ‘왜(倭)는 위(委)와 뜻이 대략 같다. 위(委)는 수(隨)이며, 수는 따른다[從]는 말이다’는 주석을 달았다. 즉, 동쪽의 이민족 집단에게 붙여진 ‘왜(倭)’라는 이름은 순종적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倭라는 글자에는 다른 의미도 들어 있는데 이때 발음은 ‘위’라고도 한다. <시경> 소아편의 사모(四牡)에는 ‘네 마리 숫말이 쉬지 않고 달려도, 주나라 가는 큰 길은 굽이굽이 멀구나[四牡騑騑, 周道倭遲]’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의 ‘倭遲’란 멀리 돌아간다는 의미를 가지며 ‘倭’는 구불구불 갈 위(逶)와 통하는 말이라고 한다. 청나라 때 편찬된 한자사전인 <강희자전>의 ‘倭’ 항목에는 ‘순종하는 모습’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 그리고 사람 이름과 지역 이름으로서의 의미만 제시되어 있으며, ‘키가 작다’, ‘난쟁이’와 같은 뜻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청나라 때 주준성이 지은 <설문통훈정성>에 따르면 倭는 추할 비(仳)와 같은 뜻이라고 적혀 있다. 한나라 때 사람인 왕포가 지은 <사자강덕론>에 모모(嫫姆)와 위괴(倭傀)라는 두 명의 추녀가 등장하는데, 같은 한나라 때의 저작인 <회남자>에 모모와 비휴(仳倠)라는 추녀의 이름이 보이는 데서 위괴와 비휴를 같은 인물로 보고 위(倭)=비(仳)라고 간주한 것이다. 다만, 왕포의 <사자강덕론>이 수록된 <문선>의 주석에서는 위괴에 대해서는 추녀라고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왜(倭)라는 말이 ‘추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므로, 그것이 일본의 이전 명칭인 ‘왜’와 연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의 일부 언론 기사 등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는 ‘문화적으로 미개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멸시하여 부른 이름이지. 역사 시간에 배운 왜구, 임진왜란 등에서의 ‘왜’가 바로 그런 의미야. 한자 왜(倭)에는‘추하다, 보기 흉하다’라는 뜻이 있거든. 반드시 외모만을 평가하는 말은 아니고, 문화적으로 발전이 안 되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어. 그런 면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왜’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할 거야.

 

하지만 그것은 ‘위(倭)’와 ‘괴(傀)’라는 두 글자가 합쳐져서 한 단어를 이루는 고유명사로부터 추출된 뜻으로, 당시부터 글자 자체에 ‘추하다’라는 뜻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의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이름을 좋지 않게 여겨서 ‘일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그것은 ‘왜’라는 말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중국 측에서 멋대로 붙여준 유순한 이민족의 이미지가 반영된 이름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정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키가 작다는 의미의 왜(矮)라는 글자가 마침 왜(倭)와 생김새도 비슷하고, 일본인들의 키가 작다고 하는 인식이 여기에 작용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왜(倭)라는 글자 자체에 키가 작다는 개념이 들어있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된 듯하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질수록 그러한 착각을 바로잡기보다는 그대로 용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밉고 싫어도, 일본 사람들이 아무리 평균적인 키가 작다고 해도(이제는 그런 것도 옛날 이야기라고 하지만), 애꿎은 글자를 오해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마치 한국(韓國) 사람들에게 한(恨)의 정서가 있어서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사실 한(韓)은 한(恨)을 의미한다는 식의 이야기와도 비슷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왜(倭)라는 말도, 조선인(朝鮮人) 또는 조센진이라는 말도 그 말 자체의 의미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말의 지칭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관점과 인식이 말에 담겨서 부정적인 것으로 변질되고, 그로 인해 그 말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또한 왜(倭)도 일본 이전의 국호로서 사용되었고, 조선(朝鮮)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 이전에 존재한 왕조의 국호이자 식민지 시기의 지역 명칭이기도 하다. ‘미개한’ 과거와 부정적인 유산을 역사 속 국가나 집단의 이름과 동일시하는 관점이 우리로 하여금 일본을 ‘왜’로 부르게 하고, 나아가 그 말뜻을 ‘난쟁이’라고 오해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諸橋轍次, 『大漢和辭典』

冨谷至, 『漢倭奴國王から日本國天皇へ』, 臨川書店,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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