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번식' 모두 고려한 진화가 '종 다양성'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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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번식' 모두 고려한 진화가 '종 다양성'을 만든다
  • 박재용
  • 승인 2019.10.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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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의 진화 이야기] '천적' 말벌과 애벌레의 진화경쟁

곤충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애벌레 시절은 잎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며 지내죠. 이런 애벌레를 노리는 수많은 사냥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악을 꼽으라면 기생말벌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입니다. 기생말벌은 적당한 애벌레를 고르면 쏜살같이 접근해선 침처럼 뾰족한 산란관을 꼽고 알을 애벌레 몸 안에 낳습니다.

몸 안의 알들이 며칠 내로 부화하고 말벌의 새끼들은 애벌레의 몸을 안에서부터 파먹으며 자랍니다. 말벌 새끼들이 몸을 파먹는데 애벌레는 죽지 않냐고요?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시행착오가 있었지요.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애벌레의 중요한 기관을 파먹었기도 했지요. 그런 경우 애벌레가 일찍 죽어버리니 그 속의 말벌 새끼들도 덩달아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애벌레의 중요기관은 건드리지 않고 생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부위만 먹은 말벌 새끼도 있었겠지요. 그런 새끼들은 애벌레가 오래 생존하니 덩달아 생존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 일들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자연히 말벌 새끼들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 애벌레의 목숨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어졌겠지요.

그런데 애벌레라고 다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대단히 많은 곤충들이 애벌레 시절을 보내는데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겠지요. 알에서 갓 난 말벌 새끼들이 그런 사정을 보아가며 지내진 못할 터이니 어미 말벌은 항상 같은 종류의 애벌레에게만 알을 낳습니다. 그래서 말벌의 종류는 어느 애벌레에 알을 낳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지요.

장수말벌

말벌을 피하기 위해 등에 가시가 난 애벌레

애벌레의 입장에선 말벌이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어떻게든 방어를 해야지요. 물론 애벌레가 스스로 방어전략을 세우진 않습니다. 서로 다른 약간의 돌연변이가 그렇게 만들지요. 어떤 애벌레가 변이가 생겨 등판에 아주 작은 돌기가 몇 개 생겼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등판에 돌기가 생긴 애벌레에게 말벌이 조금 덜 앉게 되면 이 녀석의 생존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번식도 조금 더 많이 하겠지요. 이 애벌레의 후손 중에 등의 돌기가 조금 더 높게 생기는 변이가 있는 녀석은 또 생존률과 번식률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등에 가시가 나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말벌이 알을 낳을 때 애벌레 등에 앉으니 이를 방해하는 전략이지요. 또 다른 애벌레는 등에 무늬를 새깁니다. 등에 변색 무늬가 두 개 생겼는데 우연히 그 돌기의 위치가 병렬이어서 마치 눈처럼 보인 것이지요. 이 또한 아주 조금 말벌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 눈 모양의 무늬는 후손에게 이어지는데 그 중 뱀 눈 비슷한 형상이 다른 동물의 눈 형상보다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았습니다. 자연히 뱀의 눈과 비슷한 모양의 무늬가 대세가 된 거지요. 

뱀을 닮은 무늬를 가진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유충.

또는 독을 품는 애벌레도 있습니다. 스스로 독을 만들진 않지만 자기가 먹는 잎에 있는 독성을 체내에 보관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부러 저장한 것은 아니고 주식이 되는 잎을 가진 나무가 애벌레 등쌀에 못 이겨 독을 품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나뭇잎을 먹어야 하는 애벌레는 그 독을 한 곳에 가둬둔 거지요. 원래는 배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현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돌연변이가 이를 배출하지 못하고 일부에 저장해둔 거지요. 그런데 이게 말벌에게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와 달리 눈에 잘 띠는 피부색을 가지게 됩니다. ‘나를 먹게 되면 독도 같이 먹는 거다’라고 알리는 거지요. 어떤 애벌레는 자기가 눈 똥을 등에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가시도 없고 독도 없고 무늬도 없으니 똥이라도 등에 얹어서 피하려는 겁니다. 더러운 게 죽는 거보단 낫다는 거지요. 이 외에도 다양한 변이들이 애벌레를 바꿉니다. 색을 바꾸기도 하고, 먹이를 먹는 시간을 바꾸기도 하고, 크기와 모양을 바꾸기도 하지요.

독을 품고 있는 진홍나방 애벌레. 색깔이 선명하다.

 

애벌레의 진화에 대응한 '말벌의 진화'

자 애벌레가 이렇게 다양하게 대응전략을 세우게 되면 말벌도 대응을 해야 합니다. 알은 낳아야하고, 애벌레는 저항하니 저마다 선택을 합니다. 어떤 말벌은 가시가 있는 녀석에게 그래도 기어이 알을 낳지요. 이런 녀석은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다리가 길어지는 변이를 보입니다. 또 다른 말벌은 독을 품은 애벌레에게 알을 낳습니다. 이 말벌의 새끼들은 기막히게 독은 피해서 애벌레의 살을 파먹습니다. 똥을 짊어진 애벌레에게 알을 낳는 말벌도 있습니다. 어떤 대책을 세우건 말벌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애벌레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말벌의 공격을 줄이고 생존율과 번식률을 높이는 것뿐이지요. 말벌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지요. 애벌레가 이왕 말벌의 공격을 막겠다고 나선다면 가시도 만들고, 등에 뱀 눈도 그리고 똥도 올려놓고 독도 풀면 더 좋지 않을까요? 말벌 입장에서도 그 모든 방어수단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면 천하무적일 거고요. 하지만 그리 되진 않습니다. 이게 무슨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 모순 관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원 분배의 문제지요. 애벌레 입장에선 없던 가시를 만드는 것도 자기가 먹은 것들을 소화하고 다시 분배하고, 이를 새로 합성해야 하는 일이지요. 뱀 눈 무늬를 만드는 것도 독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 다 힘을 쏟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 하다간 자기가 생장하고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되어 알을 낳아 번식하는 데는 정작 쓸 자원이 없어지는 것이죠. 돌연변이가 중첩되어 일어나 진짜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된 개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개체들은 생존율은 높을망정 번식률이 낮아져서 결국 멸종해버리고 말았겠지요. 말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벌레의 모든 방어 전략에 대응하는 다양한 수단을 갖추는 데는 말벌 입장에서도 많은 비용이 소비됩니다. 그 모든 걸 진행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던 말벌은 정작 그 알에 줄 영양분이 부족해서 알의 생존율이 낮아지고 멸종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데, 군사력을 키워 이 모든 세력에 대항하겠다고 핵 잠수함도 몇 척 만들고, 핵 항공모함도 몇 척 만들고, 스텔스기랑 조기경보기도 왕창 도입하다간 국방비로 나라가 거덜 나는 거랑 마찬가지지요. 2차대전 때의 독일과 일본이 그러다가 망했고요.

매우 강력한 독을 품고 있는 플란넬 나방의 애벌레

생존율과 번식율 고려한 '타협적 진화'

그래서 진화는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자원에 배분해서 생존율과 번식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방어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여하는 방향으론 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리고 그래서 다양성이 생깁니다. 모든 애벌레가 저 모든 방어 전략을 갖춘다면 모두 같아지겠지요. 하지만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누군가는 가시를 또 다른 누군가는 뱀 눈을 만드는 식으로 각개 약진을 하다 보니 애벌레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거지요. 말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방어 전략에 맞추는 방식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면 모든 말벌이 똑 같아지겠지만 각자 자신이 선택한 애벌레의 방어 전략에 맞춰 적당한 공격 방법 하나를 택해 진화하기 때문에 말벌의 종류가 다양해지지요. 실제로 곤충 중에서 그 종류가 많은 것을 꼽자면 딱정벌레, 나비, 벌 다음이 말벌이지요. 다른 셋은 꽃과의 공진화 과정에서 다양해진 것이라면 말벌은 애벌레와의 기생 관계에서 다양한 종 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이유입니다.

자기가 가진 자원의 한계 때문에 각기 다른 방어 전략과 공격 전략을 세우게 되는 것이 종 다양성을 만듭니다. 진화는 이렇게 한계 속에서 생태계에 다양함을 부여하지요.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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