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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홈리스보다 '돌덩이'가 좋았다[황장석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돌덩이 전쟁'으로 본 노숙자와 주민간 갈등

지난 9월 27일 금요일 낮 12시 20분 샌프란시스코의 한 주택가. 시청에서 1.5킬로미터 정도,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동네. 클린턴 파크(Clinton Park)라는 명칭의 1차로 일방통행 도로 양 옆으로 보행자 통행로 한쪽에 생뚱맞은 물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져 있었다. 언뜻 봐서 무게가 40, 50킬로그램은 족히 돼 보이는 돌덩어리들이었다. 대략 50미터 길이 보행로의 가로수 사이사이 놓여져 있는 것들을 세어보니 모두 24개. 대체 누가, 왜, 언제 가져다 놓았을까.

9월초 샌프란시스코 주택가 보행로에 등장한 24개의 돌덩어리들. 홈리스 텐트촌을 없애기 위해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돌덩어리들은 거의 한달 만에 치워졌다. 2019. 9. 27. 황장석

돌덩어리들이 주택가 골목에 놓여진 시점은 9월 초로 추정된다. 이 사안을 최초 보도한 온라인매체 후드라인의 9월 20일 기사를 보면, 2주쯤 전부터 놓여져 있었다는 제보자 얘기가 나온다. 초기 보도에서 숫자는 25개였다. 이후 대부분의 매체가 24개로 보도하는데, 하나가 없어졌거나 처음에 세면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돌덩어리들을 가져다 놓은 주체는 주민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보도를 보면, 동네 주민들이 돈을 모아 ‘은밀한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밤이 되면 ‘홈리스 텐트촌’이 세워지고, 밤새 비명과 고함이 끊이지 않고, 마약거래가 이뤄지며, 대소변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 골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자력구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고펀드미(GoFundMe) 캠페인을 통해 돌덩어리를 구해서 옮기는데 필요한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해당 캠페인은 현재 삭제돼 이전에 캡처된 화면만 남아있다(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현황에 대해선 필자의 앞선 글 샌프란시스코에 ‘홈리스 법인세’가 생긴 이유 참조).

돌덩이가 놓이기 전 해당 골목의 상황을 촬영한 사진. 보행로엔 홈피스 텐트가 세워져 있고 경찰이 출동해 누군가를 체포하고 있다.

주민 불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후드라인이 전한 현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샌프란시스코 민원전화 ‘311’에 들어온 클린턴 파크 관련 민원전화는 9월 20일 현재 300건 가량이었다. 이 뿐 아니라 더럽고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으니 도로와 보행로를 청소해달라는 요청 건수도 200건 정도였다. 청소 요청을 제외하고도 하루 1건 이상 집 앞 홈리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 등의 민원 전화가 접수됐다는 뜻이다. 1년, 2년 전보다 민원 숫자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처음에 돌덩어리들은 보행로 한 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홈리스 텐트를 세울 수 없도록 놓아둔 것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통행에 방해가 되는 돌덩어리들을 가로수 옆으로 밀었다. 또 주민들의 행위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돌덩어리 몇 개를 도로로 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도로에 떨어진 돌덩어리들을 시청 담당 부서 직원들이 다시 보행로에 올려놓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동네 주민들과 미리 얘기가 돼 있었던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시청 측은 돌덩어리들을 수거해 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논란은 거세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찬반 논란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건(돌덩어리들을 갖다 놓는 건) 누군가에겐 (홈리스 문제로 고통 받는) 절박한 주민들이 내놓은 창의적인 전술이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겐 그건 홈리스 주민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자 땜질 처방이었다.”

9월초 샌프란시스코 주택가 보행로에 등장한 24개의 돌덩어리들. 홈리스 텐트촌을 없애기 위해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돌덩어리들은 거의 한달 만에 치워졌다. 2019. 9. 27. 황장석

논란은 지난 9월 30일 시청 직원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마침내 돌덩어리들을 수거해 가면서 일단락됐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돌덩어리들을 가져다 놓은 주민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됐고, 치워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청이 수거에 나섰다고 한다. 시청 측은 주민들과 함께 향후 이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담당부서 책임자가 “문제는 돌들이 충분히 크지 않았다는 것이며 영구적인 해결책으로는 더욱 큰 돌덩어리를 가져다 놓거나 조경계획을 세우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돌덩어리들을 치우도록 요구해온 인권단체인 홈리스연대(Coalition on Homelessness)는 충분한 주거공간과 의료 지원을 하지 않는 시 정책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홈리스연대는 “언론은 세계 부자도시들 중 하나이자 수조원 대 거부들이 많은 이 도시에서 최장 90일 묵을 수 있는 임시숙소 침대 대기자가 1061명이라는 사실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주택가에서 일어난 돌덩어리 사건은 정부에서 해결해 주지 않는 홈리스 민원을 주민들이 사적으로 해결하려 한 시도였다. 공권력이 해결해 주지 않으니 자력구제에 나선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시 정부가 모르는 척 눈을 감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일부에선 주민들의 고통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 공감하기도 했고, 다른 쪽에선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던 씁쓸한 사건이었다.

황장석    surono@naver.com  최근글보기
2002년부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퇴사 이후 실리콘밸리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황장석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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