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안철수를 '조국'이 불러내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10.0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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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의원, 전 국민의당 대표가 독일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 법대에서 ‘법,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연구를 이어나간다고 본인의 트위터에 어제 밝혔습니다. 안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자서전 출간 소식을 트위터로 알리며 1년2개월만에 SNS활동을 재개한 바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안 전 의원의 국내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을 했는데, 안 전 의원이 이를 직접 부인한 겁니다. <미국에서 공부 더 한다는 안철수>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1. 조국이 불러냈다

요 며칠 안철수라는 이름이 언론에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안철수 전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이어 7% 득표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무당층에서는 이낙연·황교안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안 전 의원은 거의 주목을 못 받고 있었습니다.

안철수 주목 현상은 현 정국, 소위 '조국 사태'와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조국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두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친조국과 반조국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 결집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 염증에 기반한 무당파 중도층의 확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지지층이 결집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권력을 평가할 때 반드시 민주당일 필요는 없다는 흐름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그 틈을 비집고 안 전 의원이 부각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최근 바른미래당 내분으로 인한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계의 구애, 자서전 출간 컨벤션 효과 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안철수 비토세력은 강력한지만 중도층에서는 그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희석됐음을 알 수 있고 향후 정치를 재개한다면 이게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2. 간보기냐 명분쌓기냐

안철수 의원은 독일에 있었지만 측근들로부터 주기적으로 한국 정치상황 대한 브리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철수 전 의원은 여전히 현실정치에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특유의 '간보기 정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2012년 대선 출마 결심, 단일화 과정, 이후 정치재개 및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인한 통합신당 출범, 이후 분당 등의 과정에서 상당히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해 답답하다는 평가를 들은 바 있습니다. 물론 대선 이후에는 독해졌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이미 인기가 상당히 하락한 후였죠. 현재 정계복귀를 안하는 이유도 간을 보며 유리한 상황을 찾는 과정이란 평가가 있습니다.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명분을 쌓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의원 15명이 만든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은 현재 안 전 의원의 합류를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유승민 의원은 “안 전 의원도 같이 뜻을 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며 직접 메신저로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는 안 전 의원이 복귀를 해봤자 잘해야 15명 의원 소수파의 수장이고 유승민 의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인내를 보이는 것은 중도파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즉 본인의 몸값이 상한가를 쳐 추대를 받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의도로 해석이 됩니다. 지금 미국유학은 제3지대의 간판이 되기 위해 명분을 쌓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3. DJ의 길과 철수의 방식

선거 패배 뒤 해외유학, 자서전 출간, 그리고 정계복귀. 안철수 전 의원의 행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DJ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둘의 행보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안 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DJ는 9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93년 1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영국으로 출국했습니다. 93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낸 책 중 거의 유일하게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 DJ 책 중 가장 많이 팔렸습니다. 이후 북한이 핵을 만들며 미국과 갈등을 일으키자, 대화론자였던 김대중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클린턴 미 행정부는 북핵시설 폭격을 거론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습니다. 이후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뒤 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합니다.

안철수는 대선이 아니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나긴 했지만 독일에 유학을 했고, 비정치적 내용의 자서전을 내며 현실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안철수는 정치에 거리를 둘 때 가장 인기가 있는 정치인입니다. DJ가 정권교체와 지역감정 타파의 상징성이 있다면, 안철수는 비정치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기존 정치권과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데 강점이 있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이 독일에서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미국에서 법 제도와 과학기술을 공부하겠다는 것도 이런 탈정치 행보, 민생행보와 맞닿아 있습니다. 2022년 대선때 시대정신이 검찰개혁을 포함한 적폐청산이 될 지, 아니면 안 후보가 지속적으로 걷고 있는 경제활성화와 미래전략이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안철수는 DJ의 길을 모방하되, 자신의 방식으로 새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은 독일에 있든 미국에 있든 이미 한국 정치판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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