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노동운동이 뭐하러 '서초동 협곡'으로 들어가나

[김수민의 오피니언] <왜 노동계는 '조국수호'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가>에 대한 반론

  • 기사입력 2019.10.14 08:35
  • 최종수정 2019.10.14 16:37
  • 기자명 김수민

"민주노총 같은 단체의 깃발이 보이지 않아 상쾌했다."

지난 9월 28일 서초동에서 대규모 '조국수호' 시위가 벌어진 직후 참석자들이 SNS에 남기고 공유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서초동 집회 편에 선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왜 노동계는 '조국수호'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가>라고 노동운동쪽에게 따지며 재촉했다. 누구는 상쾌할 수 있도록 오지 말라더니, 진짜로 안 가니까 이번엔 안 온다고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양동 작전을 벌이기 전에 당신들끼리 논쟁하실 일이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 정책의 친자본화를 저지하는 일과 톨게이트 노동자의 도로공사 농성 등으로 바쁘다. 피차 안 보면 좋은 일인데 눈치없이 만나라고 성화를 부린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이광수는 그 글에서 "정치 민주화와 노동자 투쟁의 상관관계"를 다룬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민주화에 적극 동참하면서 비로소 전진했다는 요지다. 허무하게도 여기서 이미 답은 나왔다. 조국수호 집회는 노동운동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므로, 노동운동은 거기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이광수는 "정치 운동이 거세지면서 탄압하는 권력의 힘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어야 노동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정권 때도 철도사유화저지 투쟁과 민중총궐기 집회를 이끈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권에서도 "탄압하는 권력의 힘이 약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정치 운동"의 정처와 정체를 살핀다면 함께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보인다.  

담대하고 근본적인 검찰개혁은 두 갈래이다. 첫 번째,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다. 굳이 수사를 다 경찰이나 공수처에 넘겨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은 수사검찰과 기소검찰을 분리하자고 주장했다. 그때는 '공수처' 정도에 매몰되어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이들이 지금 서초동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두 번째, 검찰의 기소권도 개혁대상이다. 검찰이 혼자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는, 법정 요건을 충족하면 반드시 기소하는 기소법정주의나 시민 배심원들이 기소 결정에 참여하는 기소배심주의를 통해 비로소 깨질 수 있다. 이런 이치를 다 넘겨버리고 '검찰 특수수사 축소'와 '공수처'나 부르짖는 이들에게 노동운동이 배울 개혁방안은 없다. 삶의 태도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정경심 힘내세요"를 외치는 조국수호 집회는 정치민주화운동이 아니다. 이 집회가 벌어진 이후의 일들을 보자. 지난 3년동안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불출석한 피의자는 모두 구속되었다(5년간 불구속은 단 한명 뿐이다). 이를 깬 사람은 공교롭게도 조국 장관의 동생이다. 사학 채용비리 연루자 치고는 너무 관대한 처분이다. 조국 장관 부부의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압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계좌를 추적하는 일마저 법원이 제동을 걸고 있다. 계좌는 휴대전화보다 사생활 침해의 여지가 훨씬 작은데도 그렇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에게 특별히 더 평등한 양상이다. 이것은 앞으로 두고 보면 확실해질 것이고, 조국수호집회는 분명히 수사방해효과는 만들어냈다. 그리고 시위대의 규탄을 받은 것은 검찰인데,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건 법원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굳이 좋게 봐주자면 조국수호 집회는 사법(!)개혁운동이다. 

조국수호운동이 말하는 '검찰개혁'은 우선 검찰의 특수수사 축소 및 폐지를 당면 과제로 두고 있다. 적폐를 청산한다며 검찰 특수부에 빵빵한 힘을 불어넣어준 것이 문재인 정부다. 2018년 1월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혁안을 직접 발표하며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설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같은 사건을 특수수사 축소로 무마시킬 목적에서 이렇게 입장을 뒤집은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면 그렇게 부침개를 뒤집은 계기는 조국 장관 수사밖에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보통 "남이 당할 땐 몰랐는데 내가 당하니까..."라며 입장을 바꿀 때는 당했다는 낭패감보다 과거에 대한 민망함이 더 크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조국수호 집회 참가자들은 반성을 남에게만 요구한다. 노동운동이 이런 이들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머슴으로 보이는가. 

사실 권력층이나 엘리트에 속하지 않는 절대 다수 시민은 왜 검찰개혁이 가장 우선인지 납득하지 못한다. 권력기관개혁으로 범주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서민에게는 검찰보다 경찰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지난 시기 경찰조직도 꽤 진일보했지만,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면서 버닝썬 게이트 하나 해결하지 못했고, 엉뚱한 사람에게 살인범 누명을 씌웠다는 의혹으로 과거사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어떤가. 얼마 전 민간인 사찰에 프락치를 동원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만만치 않다. 사건을 무마하거나 개혁을 훼방했다는 혐의는 둘째치더라도, 민정수석실은 언제나 그런 부조리를 가능케 하는 성격과 구조를 띠고 있다. 조국수호자들은 검찰의 권력을 넘겨받아야 할 경찰, 자신들이 이미 개혁했다고 믿는 국정원,  개혁의 선봉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민정수석실은 검찰보다 나은 조직이라 착각한다.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의 한장면. 촬영: 이승우

검찰이 지금껏 잘못 수사한 여러 사건들을 끌어모으고 피해자의 연대를 통해 집회를 연다면 그것은 검찰개혁운동이다. 서초동에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이 나왔다. 그러나 집회의 위상은 조국수호에 막혔다. 조국 수사를 멈추라는 그들은 결코 "조국을 수사하듯 다른 사안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외칠 수 없다. 조국 수사를 멈추면 다른 사건에 대해 엄정 수사를 요구할까. 승리에 도취되어 집에 갈 것이라는 데 건다. 서초동은 심지어 "조국 수호" 구호만이라도 내려준다면 참석하겠다는 시민들이 있는데도 절대 그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런 몰대중적인 집회에 노동운동이 참가하는 건 연환계에 묶이는 것과 같다. 

서초동 집회는 극우선동대와 현정부에 불만이 있는 단순가담자가 섞인 광화문 집회보다 인원이 더 적었다. 적대자를 되살리는 작업에는 역시나 탁월하다. 집회 인원에서 승복이 안 된다면 걷어치우고 대중 여론을 보라. 광화문 집회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조국 장관에게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조국 임명을 부정 평가하는 여론이 긍정 여론을 이겼고, 대통령 지지율까지 끌려 내려가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10월 14일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조국 장관 퇴진이 55.9%로 장관직 유지(40.5%)보다 높았으며,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긍정은 41.4%로 리얼미터 기준 역대 최저다. 정당지지도는 민주당 35.3%, 자유한국당 34.4%로 0.9%포인트차로 박빙이 되었다. 리얼미터와는 달리 한국당 지지도가 정체되어 있는 여론조사들의 경우에도, 민주당과 정의당의 하락과 함께 무당파의 증가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특히 20대는 광화문과 서초동 양쪽을 거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각각 '문재인 퇴진'과 '조국 수호'라는 답정너 구호를 내건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노동운동이 뭐하러 '서초동 협곡'에 갇혀 시다바리 노릇을 하겠는가. 서초동 안 가면 광화문이고,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의 2중대라는 공세에도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 그런 따위의 말을 뱉는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노동운동을 얼마나 혐오해왔는지를 실토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시국에 특수수사 없애라는 이들이야말로 삼성 등 재벌의 홍위병이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할 수 있게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대통령의 업적도 부정하는 망덕자들이다. 여러 해명이 허위로 드러나거나 재해명을 하지 않고 주변인들이 차례로 부조리에 연루되어도 조 장관은 사퇴하지  않는다. 그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윤리적 기준을 후퇴시키며 남 탓이나 하고 있다. 이런 말기적 현상에 노동운동이 끌려들어가면 안 된다. 막차는 대선 직후 민주당에게 저주를 퍼붓더니 별안간 '열광적 문재인 지지자'로 변신한 이광수 씨 같은 분이나 탈 일이다. 

조국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칭했다. 노동운동으로서는 오히려 모멸감을 가질 일이다. 조국 장관이 가입한 것과 같은 사모펀드에 든 공직자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파면 팔수록 여러 이상한 행위와 수상한 업체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형국은 한국 자본시장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혹시 이렇게 현실을 폭로하고 있으니 사회주의자란 말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자이기에 5촌조카의 인도 하에 이런 펀드에 뛰어들고도 쑥스러움이 없는가. 또 한편 조 장관 자녀들은 각종 활동을 허위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딸의 반박을 받아들이더라도 2주간 공부하고 학회에 참석하는 '자유로운 인턴 활동'을 접할 수 있는 건 극소수다. 뿐더러 그 일가가 관여한 웅동학원 소송에서도 그들은 참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이런 이들에게 감정을 몰입하는 무리와 이런 인물을 과연 '수호'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대중 가운데 노동운동이 가까이 하고 사귈 쪽이 어딘지는 자명하다.

이광수의 칼럼에서 가장 깊이 다가온 것은 이 대목이다. "노동 운동은 권력과 부르주아 시민 모두에게 일차적으로 두려움의 대상." 실제로 그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노동운동을 혐오하는 서초동 집회 참가자들에게서 거꾸로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광수가 말한 '권력'과 '부르조아 시민'이 바로 조국수호집회이다. 노동운동은 이들이 건너뛰거나 밟고 지나간 사람들을 안고 일으키는 일부터 시작하라.

 

김수민은 정치평론가다. 2010~2014년 구미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정당에서 지역 실무, 선거본부 대변인, 홍보 책임자를 경험했다. 현재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을 진행하며 KBS 1라디오, SBS CNBC, K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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