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사진기록'으로 확인하다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9.10.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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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자만일 수 있다. 그것은 기록은 과학이고 그 과학은 모든 시각과 입장을 다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이 곱해지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누구든 역사 속에서 산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거나 다른 색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사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차원이 또 곱해지면 이제 역사와 기록과 기억의 삼각관계는 산술급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하급수의 문제로 바뀐다. 

한국에서 베트남전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는 학살자라는 ‘레떼루’를 달고 다니고, 그 안에서 그들은 ‘고엽제 전우’로 이미지화 되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지 아니하는 아니 더 진솔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까봐 전전긍긍 하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가 되어버렸다. 마치 일본에게 식민 지배의 부당성을 사과시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베트남전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읽힐 때까지 있다. 그 역사 안에도 사람의 목소리가 있는데, 밝게 보이는 면 그 이면에도 또 다른 이질적인 목소리가 있는데, 애써 숨죽이며 감춰진 어떤 목소리들이 있는데,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진실과 화해를 위한 여정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아닐까?

 

<사진1> 전사한 박순유 소령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뇌진탕으로 운명하셨다

 

진실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이 살아온 그 궤적이 역사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 그렇다면 그 진실이라는 것은 그 일을 대하는 사람, 보는 사람, 듣는 사람, 평하는 사람마다 다 달리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저러한 날에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났다라고 하는 사실까지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니 그것을 글이나 말로 기록하는 일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일을 했고, 그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당했는지, 그 이유와 과정에 대한 말들이 오가면 그것은 사실의 영역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사실의 영역 안에만 국한되어 있을 수는 없다. ‘왜’와 ‘어떻게’가 빠져 버린 사실 자체만 무미건조하게 드러내는 것은 역사학이 감당해야 할 과제가 아니다. 역사학이 감당해야 할 문제는 사람이 살아온 궤적의 일이니만큼 '그들은 왜 그런 일을 했는가'이고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을 했는가'이며 그래서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져다주는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베트남에 가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사실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다 밝혀졌다. 그게 사실의 문제다. 문제는 그들은 왜 베트남, 남의 나라 전쟁에 갔는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 사실을 토대로 한 해석의 일부일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 학자들의 분석이 많이 있어 왔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회운동가들이 굳이 가져야 할 중차대한 관심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이 어떻게 그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많이 알려져 있고, 그건 오롯이 전문 학자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반전운동가가 해야 할 과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억지로 그곳에 끌려가서, 남의 나라의 전쟁을 치르고 오셨는데, 그 이후로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그래서, 억지로 보낸 남편이 유골로 돌아온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을 자식 키워가면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래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당신의 삶은 어땠습니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 목소리들, 피맺힌 절규와 울부짖음을 듣고 싶었다.

 

<사진2>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정영민 해병 중위가 월남으로 파병갈 때의 모습 .

 

2004년 베트남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숙경이라는 한 딸이 베트남에를 놀러 갔다가 무엇에 이끌렸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들은 그 지역을 돌아보고 온 후, 가족들을 설득해 그곳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그와 아시아평화인권연대가 함께 시작했다. 10년이 훨씬 넘은 기간에 많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마음 속 깊이 침잠해 있는 어떤 응어리 같은 게 풀리지 않았다. 숙경씨 가족은 베트남 때문에 아버지 혹은 남편을 잃은 베트남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있지만, 베트남에 대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또한 가지고 있어 그 이질적이고 중첩된 마음이 충돌하고 흔들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마음의 소리들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이 있을 것인가? 그 목소리들을 듣지 않고 그들을 그 응어리를 가진 채 돌아가시게 해야 할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진3> 박순유 소령의 부인 김순용. 남편 전사 후 6남매를 홀로 키웠다.

 

이 전시는 그들이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시다.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고, 응어리 진 가슴을 풀어 헤치기 시작한다, 라는 말을 이 사회 구성원에게 알리는 전시다. 그것을 사진으로 하는 전시다. 그러니 이는 흔히 말하는 사진전과는 개념이 다르다. 기록사진전이 아니고 사진기록전이다. 사진을 가지고 기록을 하는 것이니 필히 기억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라는 본질적으로 ‘기억’과 ‘시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체로 그 슬픈 중첩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기억의 이질적 성격을 되짚어 보고자 하는 운동이다. 사진가 이재갑은 베트남전에 대한 두 개의 기억을 주제로 작업을 한 중견 사진가다. 그는 특히 베트남 전에 대한 기억과 시선의 문제를 날카롭게 사진으로 재현한 사진가다. 그가 작품 사진전이 아닌 사진으로 하는 기록전으로 작업을 했다. 그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작품이라는 관점보다 또 하나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기록과 기억 그리고 역사에 대한 전시로 보는 게 기본 취지에 부합한다. 사진전의 연장선에서 한 차원 다른 전시라고 보면 되겠다.

 

<사진4> 참전 군인 아버지 양승준의 전쟁 트라우마가 자식 양지민에게 그대로 이식되어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안함이 혼란스럽다.
<사진5> 참전 군인 오담환씨는 전투 수당이 미국 측으로부터 자신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증발해버린 박정희 정권에 대해 오랫동안 반환 소송을 하고 있다.

 

전시 구성은 주로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사진은 흔히 말하는 어떤 장면을 예술적 감각으로 찍어내는 그런 사진은 아니다. 전시의 주제가 이질적이고 중첩된 기억을 다루고, 그 목소리들 또한 매우 이질적이니 전시 또한 이질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전쟁터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그 사진을 다시 찍은 사진도 있으니, 재현도 있고, 재현을 다시 재현한 것도 있다. 유품으로서의 사진은 단지 하나의 재현물로서의 이미지를 넘어 어떤 본질을 가진 실존체가 되어 있다. 모든 게 뒤섞여 있는 전시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것에 뛰어든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 사람들을 향한 사회의 목소리가 모두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부산교육대학교 한새뮤지엄 3층 기획전시실에서 10월 12일부터 10월 22일까지 열린다. 오프닝은 14일 오후 4시에 열리는데, 두 개의 기조 발제가 있고, 이어 참전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지원 사업이다.

 

<사진6> 사진가 이재갑, 역사의 이질적인 목소리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

 

필자 이광수는 부산외국어대 교수(인도사 전공)다. 델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락국 허왕후 渡來 說話의 재검토-부산-경남 지역 佛敎 寺刹 說話를 중심으로- 〉 등 논문 다수와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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