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국 게임 속 여성 캐릭터는 왜 천편일률인가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10.1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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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의 두 여성은 넥슨이 공개하고 얼마 안가 서비스를 접은 <서든어택2>의 캐릭터들이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의 이름은 ‘마야'인데 이 캐릭터의 별명은 무려 ‘전장의 아이돌’이다. 대체 전장에 왜 아이돌이 필요한지는 굳이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한국 웹툰 중에는 무려 <뷰티풀 군바리>도 있으니까. 마야는 <서든어택2>의 공식 트레일러에서 처음 얼굴을 선보였는데 이 트레일러 하나만으로 한국 게임의 위기를 엿볼 수도 있다. 대단히 여성혐오적이고, 대단히 전형적이고, 매력적인 오리지날리티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 게임들은 일치단결하기 때문이다.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

 

트레일러에서 마야는 거대한 가슴을 노출하고 배꼽티와 '빤스', 아니 짧은 바지를 입은 채 모델 워킹으로 강남역 11번 출구에 들어간다. 그 와중에 마야 옆으로는 “성형외과" 간판들이 지나간다. 왜 굳이 성형외과 간판이 노출되고, 왜 굳이 강남역 11번 출구로 향하는 걸까?

서든어택2 공식 시네마틱 트레일러 중.

트레일러가 공개되기 얼마 전, 강남에서 여성을 대상으로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강남역에는 여성들의 한 맺힌 포스트잇들이 한동안 자리잡았다(기사). 포스트잇 뿐이랴, 많은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본인들이 당한 차별에 대해 토로했고, 이는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기도 했다. 강남역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서든어택2> 트레일러 속 강남역 연출은 강남역의 여성들에 대한 조롱 혹은 도전으로 여겨졌다(기사). 

여성혐오 문제를 떠나도 이 트레일러에는 문제가 많았다.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마야를 생포 혹은 암살하기 위해 특수부대원들이 투입되는데,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강남역에서 마야를 기다린다. 시민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역이나 지하철을 통제한 것도 아니다. 영상에서 지하철이 멀쩡히 운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영상에는 시민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아서 강남역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현실성도 없다. 이럴 거면 왜 굳이 강남역을 선택했는지도 알 수 없다. 역시 강남역의 여성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인가? 대체 유동인구가 이리도 많은 강남역에서 작전을 벌이는 멍청한 작전은 누가 승인한 건가?

또, 강남역은 출구만 12개라서 타겟인 마야가 도망치기에 너무 좋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어떤 양반이 이런 허접한 작전을 승인해준 건가? “니들이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라고 페이스북에 쓴 그 분이 승인하셨나? 작전을 승인한 자만 멍청한 것도 아니다. 특수부대원들은 총을 들었음에도 굳이 마야에게 돌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총만 가져오고 총알은 챙겨오지 않은건가? 이 영상에는 이외에도 납득하기 힘든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마야라는 애는 자기를 죽이려는 총을 든 자들이 넘치는데 귀에 꽂은 음악의 볼륨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서든어택2>에서는 사운드 플레이가 필요 없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가? 아니면, 마야라는 Pay to Win 캐릭터를 구매하면 사운드 플레이가 필요 없을 거라는 걸 보여준건가?

로스트아크의 여성 캐릭터.

<서든어택2>은 여러 논란을 겪다가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서든어택2>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많은 한국 게임들이 공유한다. 특히 여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렇다. 한국의 거의 대부분 게임들에는 금발의 백인 글래머 여성이 등장한다. 엔씨의 <리니지> 시리즈에서는 엘프라는 종족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스마일게이트의 신작 <로스트아크>에서도 금발 여성(위 사진)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이런 미녀 캐릭터들은 게임을 홍보하는데 자주 쓰인다. <서든어택2>가 헐벗은 마야라는 캐릭터를 공개하고, 대대적으로 푸시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녀 캐릭터를 만들면 게이머들이 몰릴 거라는 생각으로 흔히들 여성 캐릭터를 기획할 때 가슴을 거대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노출시킨다. 그래서 한국 게임들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가슴이 거대하고, 옷을 벗고 있다. <서든어택>같은  FPS 게임이건, <리니지>, <검은사막>, <로스트아크>같은 판타지 기반 게임이건 그다지 차이는 없다. 명목적으로는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남성 게이머를 유혹하기 위해 이런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거지만, 개발자들이 본인들의 욕망-이상형을 캐릭터에 투영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한국 게임에 유독 남성들의 이상형에 가까운, 헐벗은 여성들이 많이 등장할까? 원인은 여럿이다. 일단, 게임사의 결정권자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 게임들이 개발될 때 여성 개발자의 목소리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는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여성들은 그저 기획에 따라-갑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릴 뿐이다. 또 한국 게임사의 남성들은 여성을 게임을 하는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이라 생각하기에 이들은 노골적으로 남성들을 유혹할만한 캐릭터를 만든다. 그래서 모든 여성들은 모두 가슴이 크고, 벗고 있다. 소아성애자들을 노리는 '로리' 캐릭터들도 흔하다. 

웃긴 건 대부분 남성 캐릭터들은 물 한 방울 안 들어갈 것 같은 IP68등급의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다는 거다. 대부분 한국 게임 캐릭터들이 이렇다. 여성들은 어떻게든 가슴이랑 허벅지가 노출되게하는 어떤 면에서는 창의적이기까지한 옷을 입고 있는데, 남성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갑옷을 입고 있다. 아래 사진은 넥슨의 신작 <V4>의 남녀 캐릭터다(더 많은 캐릭터 사진).

넥슨의 신작 V4의 남녀 캐릭터. 남성은 육중한 철갑을 두르고 있는 반면, 여성은 팔다리가 노출되어 있다.

 

여성이 성적대상화되는 건 게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게임이 대단히 전형적으로 만들어진다. 게임 속 캐릭터들만 해도 남성들은 모두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어서 게임마다 그다지 차이가 없고, 여성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외모와 패션을 하고 있어서 역시나 개성이 없다. 캐릭터가 개성이 없으니 ‘우리 게임의 스토리는 좀 달라!’라고 노래를 불러봐야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인물들에게 매력이 없는데 스토리에 무슨 매력이 생기겠으며 캐릭터가 전형적인데 스토리가 어떻게 참신해지겠나. <리니지>, <로스트아크>, <테라>, <검은사막> 등의 한국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스토리를 물으면 답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을텐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또, 여성 게이머들이 배제된다. 애초에 여성 게이머를 고려하며 캐릭터를 디자인하지 않고, 이를 여성들도 모르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해당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매체에 글을 쓰기 위해 대형 게임 개발사에서 일하는 여성 둘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굳이 해외 게임을 한다고도 했다. 한국 게임들은 대부분 남성향이라 여성들이 할만한 게임이 없어서다. 미국에서 개발된  <오버워치>에 여성 게이머들이 몰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버워치>에서도 여성들이 성적 대상화되기는 하고 하나같이 이상적인 외모를 하고 있지만('똥배' 나온 남성 캐릭터는 있어도 똥배 나온 여성 캐릭터는 없다), 한국 게임만큼 노골적으로 가슴골을 노출하고 그것을 셀링포인트로 삼지는 않는다.

레인보우식스에 등장한 여성캐릭터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의 전략-여성혐오가 돈이 된다-이 딱히 유효하다고 보기 힘들다. <서든어택2>는 가슴으로 남성들을 유혹했음에도 얼마 안 가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같은 장르(?)의 게임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왕가슴'으로 무장한 여성 캐릭터 하나 없이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게임이 출시한 15년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리비도가 아닌 게임성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엔씨가 <리니지> 시리즈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곧 내놓을 <리니지2M>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엔씨의 게임은 작품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딱히 없다. 반면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대단히 방대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고, 이번에 서비스를 시작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은 다소 뒤떨어진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이 1~3시간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어마무시하다. 무엇보다 <리니지>의 게이머들은 본인이 하고 있는 게임의 스토리에 관심도 없고 그것을 중요하다 생각하지도 않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유저들은 <워크래프트> 세계관에 빠삭하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으면 블리자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리니지>를 비롯한 한국 게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게임 개발 환경은 리스크를 피하려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한국 게임사들이 '복돌' 위험이 있는 패키지 게임 대신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장사를 하는 건 후자가 리스크를 관리하기에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게임사들이 여성혐오로 점철된 게임을 만드는 이유도 같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여성들을 성적으로 그려내면 장사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들 장사에 해가 될 거라는 근거 없는-오래된-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인다. 한국 밖에서 개발되는 많은 게임들이 여성의 가슴골 없이도 승승장구해도 한국 남성 개발자들의 근거 없는 믿음은 사라질 줄을 모른다. 이 강박 혹은 공포는 공포를 집어삼킨 많은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게임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박스를 깨고 나가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쪽에서 신박한 게임들이 여럿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Bright Memory><Boundry>). 한국 개발자들보다 중국 인민들에게 보다 많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주어져서인가?

필자 박현우는 '일간 박현우'를 연재하며 유료 구독자들에게 글을 연재하는 일이 주업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헬조선 늬우스' 관리자이며 영화, 미드, 게임, 애니, 페미니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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