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과 한국 여성의 삶 팩트체크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9.10.1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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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이 10월 23일 개봉한다. 1982년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 김지영이 평생 동안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담아낸 원작 소설은 그동안 젠더 갈등의 소재로 자주 악용되어 왔는데, 이를 영화화한 작품 역시 개봉 전부터 영화 정보 사이트에서 극단적인 ‘평점 테러’에 시달리는 등 또 한번 젠더 갈등에 소환되고 있다. 네이버 영화에서 <82년생 김지영>의 평점은 9월 말 기준으로 3.7을 기록했는데, 이는 영화에 반발하는 이용자들이 평점을 낮게 주면서 나타난 결과다. 네이버 측은 10월 초부터 국내 개봉 전에 평점 등록 및 조회를 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2019년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개봉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으로 확산된 페미니즘의 물결을 이어가는 문화적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소설 속에 나타난 주인공 김지영의 생애주기별 삶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살펴본다.

 

1. 여학생은 뒷 번호부터. 학교에서부터 차별은 시작된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 초등학생 때부터 겪은 성차별은 공기와도 같았다. 남녀 합반이지만 학급 번호 1번은 늘 남자였고, 남자 번호가 끝난 뒤부터 여자 번호가 시작됐다. 점심 급식 순서가 번호 순서대로였기에 자연스레 식사 순서도 남학생이 먼저였다. 학급의 출석번호가 행정 편의주의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장기의 학생들이 겪는 크고 작은 문화를 통해 성인지 감수성이 형성된다는 차원에서 형식의 근간에 자리한 차별성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비단 1982년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8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급의 출석번호를 남성은 1번부터 여성은 51번부터 부여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개선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린 학생들에게 남녀 간 선·후가 있다는 차별의식을 갖게 할 수 있는 성차별적 관행”이라며 “해당 학교의 남학생 앞 번호 지정은 여성인 학생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2005년에도 같은 취지로 이루어진 바 있었음에도 이후에도 학교에서 관행적으로 같은 방식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뚜렷한 개선 의지가 없다면 관행을 답습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최근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행히 보편화되는 추세로, 구체적인 변화도 일고 있다. 서울 초등학교의 출석번호 부여 방식을 살펴본 결과, 2018년에 80%인 478개교가 남녀 순으로 출석번호를 부여했지만 2019년에는 161개교로 줄었고, 거꾸로 여학생을 앞 번호로 부여하는 학교는 18개에서 82개로 늘었다. 남녀 구별 없이 이름의 가나다순이나 생년월일 순으로 번호를 매기는 학교는 101개에서 357개교로 증가했다.

 

2. 여성이 남성보다 세상이 불안전하다고 느낀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을 괴롭히는 남자 짝에 대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저 친구가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설득한다. 교사의 태도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돕는 것이 아니라, 남녀관계의 문제로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여성의 수동적 역할을 당위로 보고 사안을 무마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의 김지영이 겪은 일도 같은 선상에 있다. 다니던 학원에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았는데, 그 뒷자리에 앉던 남학생은 상냥한 김지영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다. 급기야 남학생은 “데려다줬으면 하는 것 같아서”라면서 늦은 밤 버스정거장까지 따라오고, 이를 김지영이 거절하자 “X나 흘리다가 왜 치한 취급하냐?”며 거친 말을 퍼붓는다.

얼핏 심각한 갈등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화일 수 있지만, 김지영이 겪은 일들은 피동적인 여성의 성역할뿐만 아니라 삐뚤어진 남성의 성역할이 학습됨을 말해준다. 어려서부터 남성은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애정표현’이라면 허용된다고 학습 받고, 친절한 성격을 지닌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남성에게 성적 존재로 대상화되기 쉽다는 경험을 체득한다.

이런 경험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한국 사회를 더욱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느끼게 만든다. 통계청의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8년 범죄 발생 가능성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끼는 여성의 비율은 57%로 남성(44.5%)보다 높았다. 해당 통계에서 전반적인 사회 안전과 각종 사고, 안보 문제에 대한 불안 비율은 남녀 모두 10년 전에 비해 줄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불안 비율이 늘어난 것은 여성의 범죄 발생에 대한 불안 비율로, 통계가 존재해 비교가 가능한 1997년(51.5%)에 비해 유일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의 불안 비율은 48.8%(1997년)에서 44.5%(2018년)로 감소했다.

 

여성의 범죄 발생 불안감이 커진 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발생률이 실제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한국의 사회동향’ 통계를 보면 2017년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이 1만303명으로 2016년 8367명보다 23.1%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데이트폭력 발생률은 2016년 16.2%에서 2018년 19.9%로 올랐다. 검찰, 경찰 등 공공기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건수도 최근 5년 중 2018년이 가장 많았다. 성범죄 유형별로 강간은 줄고 강제추행이나 불법촬영 범죄는 증가했다.

통계청은 사법기관의 대응이 강화되면서 데이트폭력 검거 인원이 늘어났고, ‘미투(MeToo)’ 운동의 영향으로 성희롱 피해 접수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최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늘어 신고·접수가 늘어나 통계적으로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동안 신고·접수되지 않은 채 사적으로 무마되어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범죄 행위들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3. 여학생이 대학을 더 많이 간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은 대학 진학과 관련해 꿈을 포기한다. PD가 꿈이었던 김은영은 언론 관련 학과로 진학하고자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와 고뇌 끝에 교육대학에 진학한다. 김지영은 부모의 큰 지원 없이 공부해 서울 소재 인문학부에 진학한다. 여성이라서 지방에서 서울로 진학을 못 했다거나, 향후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교육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는 한국 여성에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다.

<성별에 따른 대학진학률>

그렇다면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어떨까? 실제로 82년생인 김지영과 언니 김은영이 대학에 진학한 2001년 이전에는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의 대학진학률보다 낮았다. 2001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63.3%, 남성의 대학진학률은 66.6%로 남성이 여성을 웃돌았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의 대학진학률을 앞지른 것은 2005년의 일이다.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73.6%로 남성의 대학진학률 73.2%보다 높아진 이후 201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2005년에는 한국의 성평등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바로 남아선호 사상의 뿌리가 담긴 호주제가 전격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남아있던 호주제는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것으로, 부계 혈통을 바탕으로 가족 내 주종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를 완전히 폐지하는 데 30여 년이 걸릴 정도로 한국 사회의 부계 및 남성 중심적 문화는 뿌리 깊었다.

82년 김지영 세대의 여성들이 대학진학에서 남성에 비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2005년 이후 뒤바뀐 대학진학률의 여성과 남성 간 격차는 벌어져서 2018년에 7.9%p의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 2009년 전체 대학진학률이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하향 추세에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학졸업자의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대졸 프리미엄’이 줄어들어, 고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 졸업이 취업 및 안정적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남성의 대학진학률이 떨어지는 데 비해 여성의 대학진학률 감소 정도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육만 가지고 여성의 권익이 신장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여성의 생애주기 전반에 나타나는 차별의 정도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에게 투자되는 교육 자원이 향후 노동시장에서 취업 및 승진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20대 초반에는 남녀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유사하거나 여성이 살짝 높지만, 30대 이상으로 넘어가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후 승진, 재취업 등에서 불평등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4. 여성은 연령을 불문하고 고용에서 차별을 받는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은 서울 소재 인문학부를 졸업한 후 홍보대행사에 취업한다. 학업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면접 기회를 얻기조차 쉽지 않고, 면접장에서는 성희롱에 가까운 질문을 받는다. 한 선임 여직원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년 육아휴직을 쓰지만 복귀 후 바로 퇴사하며, 김지영 역시 출산 후 고민 끝에 퇴사를 한다.

여성이 고용 불안을 겪고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경력단절한 후의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경력단절 이전에 사회초년생으로서 고용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에도 차별을 겪는다는 사례와 통계 자료도 많다. 2014년 12월 취임한 한국가스안전공사 박기동 사장은 “여자는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단절될 수 있으니 조정해서 탈락시켜야 한다”는 지시로 합격권 여성 7명을 불합격처리했고, 2018년 11월 4일 대법원에 의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사회학회 논문집 <한국사회학> 제53집에 실린 캔사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와 오병돈 연구원의 논문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에 따르면, 370개 출신 대학, 205개 세부 전공, 학점, 국외 어학연수 여부, 출신 고등학교의 계열 등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가족배경, 학교, 학과, 학점 등이 남성과 같을 때에도 20대 여성은 대학 졸업 이후 2년 이내 남성 임금의 82.6%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순위별로는 상위권 대학 출신의 여성이 2년제나 하위권 4년제 대학 출신보다 더 큰 소득 불이익을 경험했다. 그동안 20대 여성의 낮은 소득은 소득이 높은 공대 출신에 남성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해당 연구는 전공과 무관하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남성보다 더 낮은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향후 중년여성의 고용의 질을 현저히 떨어트린다. 여성의 고용률은 30대에 경력 단절되어 감소했다가, 40대에 재취업으로 증가하는 M자형 모양을 보인다. 통계청의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통계상 경력단절여성은 꾸준히 연간 180~200만 명씩 양산되고 있다. 그 사유는 결혼(34.3%), 육아(33.5%), 임신·출산(24.1%) 순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한 한국사회의 현실상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주로 도맡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남녀가 함께 하지만 임신 과정에서 여성의 고용경쟁력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남녀 임금격차(2018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의 66.6%,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역시 30대 여성의 경력 단절 가능성을 높인다.

출처 :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160;2018년&#160;12월&#160;보고서&#160;'비정규직&#160;규모와&#160;실태'

그러나 40대 여성의 재취업 시 고용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8년 12월 보고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여성은 20대 후반(31.9%)에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낮고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는 V자형 그래프를 형성하고 있다. 2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거나 비슷하지만, 3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줄곧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남성보다 높게 나타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측은 “출산과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여성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성차별을 경험한다. ‘알파걸’의 등장과 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의 증가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통계 수치들이 한국 사회의 평범한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어려움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7년 11월 보고서 ‘82년생 여성의 노동시장 실태분석’은 82년생 김지영 세대 여성들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과 과제를 던진다. 

“82년생 여성의 미래는 무엇인가. 12년 뒤 육아로부터 벗어나 노동의 세계로 귀환하면, 82년생 여성의 미래는 2016년을 살아낸 70년생 여성처럼 매장판매직이 직업 1위가 될 것인가. 24년 뒤는 오늘 날 청소원이 직업 1위인 58년생 여성의 기시감이 들 것인가. 82년생 여성은 띠동갑인 70년생이나 58년생에 비해 4년제 대졸이상의 고학력자가 다수이나 여전히 10명 중 4명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일하는 여성도 남성보다 임금이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더 높다. 이는 12년 전 70년생 여성과 24년 전 58년생 여성의 삶과 대동소이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30대 기혼자들은 82년생들처럼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노동 또는 비정규직 노동을, 남성에게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역대 정부는 고용정책 1순위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혹시 양질의 일자리란 남성이 장시간 일하고 여성은 전업주부이거나 육아와 일 모두 해내는 수퍼맘을 전제로 하지 않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양성평등적이고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일자리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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