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디디에 클로는 어떻게 ‘쿠엘로’로 알려지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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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 디디에 클로는 어떻게 ‘쿠엘로’로 알려지게 되었나
  • 박종성 팩트체커
  • 승인 2019.10.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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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Didier Queloz 표기 결정 과정 추적

매년 10월 전세계 언론의 시선은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집중된다. 각 분야의 수상자가 발표되자 마자 경쟁적으로 속보를 내보내기 위해서이다. 국내 언론도 마찬가지인데 수상자가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닐 경우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부문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대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수상자명의 표준 한글 표기를 정하여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 속한 각 언론 대표에게 배포하고 국립국어원 누리집에도 게재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처럼 1997년 이후 매년 노벨상 수상자명의 한글 표기를 배포하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 발표 직후 국내 언론이 전하는 속보에서는 수상자명 표기가 중구난방이다가도 후속 보도에서는 점차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표기에 맞추어 통일되기 마련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캐나다·미국의 제임스 피블스(James Peebles, 84)와 스위스의 미셸 마요르(Michel Mayor, 77), 디디에 클로(Didier Queloz, 53) 

10월 8일 스웨덴 왕립학술원에서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캐나다·미국의 제임스 피블스(James Peebles, 84)와 스위스의 미셸 마요르(Michel Mayor, 77), 디디에 클로(Didier Queloz, 53) 세 명이 공동 수상했다. 영어 이름인 James Peebles는 ‘제임스 피블스’, 프랑스어 이름인 Michel Mayor는 ‘미셸 마요르’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 이름인 Didier Queloz의 표기가 문제이다. Didier는 ‘디디에’로 표기하는 흔한 이름이지만 Queloz는 철자만으로는 프랑스어 발음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는 철자가 아니라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하므로 Queloz의 원어 발음을 확인해야 정확한 한글 표기를 알 수 있다.

인명의 정확한 발음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영상이나 음성 파일을 통해 본인 발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Didier Queloz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다음 인터뷰 동영상을 찾아냈다.

 

그는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름을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하는데 Queloz는 [kwelo] 내지는 [kwɛlo] 정도로 발음하고 있다. 즉 ‘퀠로’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프랑스어의 [w]를 ‘우’로 적으면서 뒤따르는 모음과 합치지 않는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예’를 뜻하는 oui [wi]는 ‘위’가 아닌 ‘우이’로 적고 프랑스 소설가 Houellebecq [wɛlbɛk]는 ‘웰베크’가 아니라 ‘우엘베크’로 적는다. 다만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프랑스어의 [w]를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적은 것도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인명으로 쓰이는 영어식 이름 Willy [wili], Wilfried [wilfʁid]는 각각 ‘윌리’, ‘윌프리드’로 적었으며 Guadeloupe [ɡwad(ə)lup]는 ‘과들루프’로 적었다. 프랑스어의 조상인 라틴어에서 모음 앞의 gu, qu가 각각 한 음인 [ɡʷ], [kʷ]를 나타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Guadeloupe를 ‘과들루프’로 적는 것처럼 [kw]로 발음되는 qu도 뒤 모음과 합쳐 한 음절로 적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러니 프랑스어 [kwelo] 또는 [kwɛlo]는 ‘쿠엘로’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퀠로’로 적을 여지도 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찾은 지 얼마되지 않아 국립국어원에서 물리학상 수상자명 표기를 알리는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거기서는 Didier Queloz를 ‘디디에 켈로’로 표기했다. 나는 곧바로 국립국어원에 답장을 보내 방금 찾은 동영상 링크를 소개하며 본인 발음에 따르면 ‘켈로’가 아니라 ‘쿠엘로’ 또는 ‘퀠로’로 써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얼마 후 국립국어원에서는 ‘디디에 쿠엘로’로 표기를 수정하여 전자우편을 다시 발송하였다. 이후 각 언론 표기는 ‘쿠엘로’로 통일되었다.

하지만 이 의견을 보내면서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있었다. Queloz의 qu가 정말 [kw]로 발음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어에서 qu가 [kw]로 발음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성씨는 프랑스어권 스위스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프랑스·프로방스어식 이름인데 그 어원을 감안하면 qu가 [kw]가 아닌 [k]로 발음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오늘날 스위스의 공용어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인데 그 가운데 프랑스어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모어로 쓴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어가 쓰이는 스위스 서부에서 전통적으로 쓰였던 언어는 사실 프랑스어가 아니라 프랑스·프로방스어 또는 프랑코프로방스어였다.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각 지방에서 쓰이던 통속 라틴어는 수십 개의 다양한 언어로 분화되었으며 이들을 통틀어 로망어군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등 몇몇은 훗날 국가공용어가 되었다. 프랑스·프로방스어는 이들에 밀려 2등 언어로 전락한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

프랑스에서 쓰는 로망어군 말씨는 루아르강을 경계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다. 루아르강 북쪽에서는 ‘예’를 oïl ‘오일’이라고 했고 남쪽에서는 oc ‘오크’라고 했다고 해서 북쪽 말씨는 ‘오일어(langues d’oïl)’, 남쪽 말씨는 ‘오크어(langues d’oc)’라고 불렀다. 프랑스어는 파리 주변에서 쓰던 오일어가 표준화된 것이다. 현대 프랑스어의 oui는 oïl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오크어는 국가공용어인 프랑스어에 밀려 프랑스 남부에서도 듣기 힘든 언어가 되었지만 중세 프랑스 남부의 음유 시인들이 쓰던 언어로서 문학사에서는 중요한 언어이다. 오크어는 프로방스와 리무쟁 지방의 말씨가 대표적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오크어 전체를 통틀어 프로방스어 또는 리무쟁어라고 했다.

그런데 19세기 언어학자들의 연구로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국경 지대에서 쓰이는 말씨는 오일어도 오크어도 아닌 독자적인 언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이탈리아 학자는 이 말씨가 오일어와 오크어의 중간 형태라는 의미로 각각 오일어와 오크어를 대표하는 언어의 이름을 따서 프랑스·프로방스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근대 이후 프랑스·프로방스어는 프랑스어의 위세에 밀려나 주요 언어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스위스 서부의 대표 도시인 제네바는 16세기에 프랑스 북부 출신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다스리고 프랑스어를 쓰는 신교도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프랑스어를 주 문자 언어로 쓰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이웃 사부아 공국도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면서 프랑스·프로방스어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사부아 공국은 후에 이탈리아로 영토를 확장하여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이 되었고 대신 원래 영토였던 사부아(Savoie)를 프랑스에 넘겼기 때문에 이탈리아어식 이름인 사보이아(Savoia) 공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세기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흔히 프랑스 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는데 글은 프랑스어로 썼고 프랑스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산장’을 뜻하는 프랑스·프로방스어에서 온 단어인 chalet ‘샬레’는 루소의 작품에 실리면서 프랑스어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프랑스·프로방스어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 고립된 마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Valle d’Aosta)주에서 그나마 프랑스·프로방스어가 아직도 활발히 쓰이고 있다. 대신 프랑스·프로방스어의 흔적은 이들 지방의 고유명사에 남아있다. 이곳 지명은 Chamonix [ʃamɔni] ‘샤모니’, La Clusaz [laklyzɑ, -za] ‘라클뤼자’와 같이 -x 또는 -z로 끝나는 것이 많다. 중세 서기들이 프랑스·프로방스어 이름을 기록할 때 끝 음절에 강세가 올 때는 -x를 붙이고 끝에서 둘째 음절에 강세가 올 때는 -z를 붙여 구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강세 음절을 나타내는 철자로 다른 음가는 없다. 대부분의 프랑스어 화자들은 이런 관습을 잘 모르기 때문에 Chamonix를 ‘샤모니’ 대신 ‘샤모닉스’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프로방스어식 성씨 가운데도 Agassiz는 [aɡasi] ‘아가시’로 발음되지만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성씨 Berlioz는 오늘날 프랑스어 화자 대부분이 [bɛʁljoːz] ‘베를리오즈’로 발음한다. 원래 묵음이었던 -z를 철자의 영향으로 [z]로 발음하는 것이다. 프랑스어 성씨 가운데 에스파냐어에서 나온 것에서는 어말 -ez가 보통 [ɛːz] ‘에즈’로 발음되기 때문에 프랑스·프로방스어식 성씨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발음하면 안 되는 -z도 발음하기 쉽다. 하지만 원래 프랑스·프로방스어가 쓰이던 스위스 서부에서는 전통 발음이 잘 지켜지는 듯하다. Queloz가 프랑스인이라면 몰라도 스위스인이니 Queloz의 -z는 묵음일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철자 qu는 보통 [k]를 나타낸다. 라틴어 qualitas ‘콸리타스’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qualité [kalite] ‘칼리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통속 라틴어에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를 거친 프랑스어 어휘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équation [ekwasjɔ̃] ‘에쿠아시옹/에콰시옹’ 같이 후에 라틴어에서 들여온 일부 고급 어휘에서는 원래의 라틴어 발음을 흉내내어 [kw]로 발음하며 영어에서 차용한 quiz [kwiːz] ‘쿠이즈/퀴즈’에서도 원음에 맞게 [kw]로 발음한다.

프랑스어에서 qu는 일찌감치 [k]로 발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철자 e 앞의 [k] 음은 어원과 상관 없이 qu로 적게 되었다. 예를 들어 라틴어 이름 Dominica ‘도미니카’와 Dominicus ‘도미니쿠스’의 마지막 -a, -us가 중세 프랑스어에서 -e로 합치면서 프랑스어 철자는 Dominique로 합쳐졌다. 오늘날에는 -e도 묵음이 되어 [dɔminik] ‘도미니크’로 발음한다.

라틴어의 qu가 [k]로 변한 것은 프랑스·프로방스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라틴어 quia ‘퀴아’, quam ‘쾀’, quid ‘퀴드’ 등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que는 [kə] ‘크’로 발음되는데 이에 대응되는 프랑스·프로방스어 que는 [kɛ] ‘케’로 발음된다(이 단어는 철자 ke로 적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프랑스·프로방스어식 이름이라면 Queloz의 qu가 [kw]로 발음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 Queloz의 e는 어떻게 발음될까? 원래의 프랑스·프로방스어에서는 -z가 끝에서 둘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 것을 나타냈으므로 e는 강세 모음이었다. 그러니 원래는 [ˈkɛlo] ‘켈로’ 정도의 발음을 나타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어에는 강세 있는 음절이 따로 없고 철자 e의 발음 방식도 다르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어식 철자에서 개음절, 즉 모음으로 끝나는 음절의 모음이 악센트 부호가 없는 e이면 보통 ‘불안정한 e’ 즉 [ə] ‘으’를 나타낸다. 국제음성기호에서 [ə]는 원칙적으로 영어 again의 첫 모음과 같은 중설 비원순 중모음을 나타내지만 프랑스어에서 [ə]의 실제 발음은 약간 전설 원순 중모음인 [ø~œ]이다. Delon [dəlɔ̃] ‘들롱’, Renault [ʁəno] ‘르노’의 e가 바로 이 모음이다. 이처럼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프랑스어에 한하여 [ə]를 ‘으’로 적는다.

Queloz는 Que-loz로 음절이 나누어지므로 e는 개음절에 속하니 불안정한 e, 즉 [ə]로 발음되는 것이 원칙이다. 프랑스어의 [ə]는 위치에 따라 탈락하기 쉽기 때문에 불안정한 e라고 불리는데 고유명사의 어두 CəC-에서는 잘 탈락하지 않는다(C: 자음). 그래서 Queloz는 *[klo]가 되지 않고 [kəlo]로 발음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개음절의 e가 [e] ‘에’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다. 에스파냐계 프랑스 배우 Jean Reno는 국내에 보통 ‘장 르노’로 알려져 있지만 Reno는 사실 [ʁeno] ‘레노’로 발음되므로 원래는 ‘장 레노’가 맞다. 에스파냐어 이름 Moreno ‘모레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Queloz도 프랑스어식 철자와 발음 대응을 따르면 e가 [ə]이겠지만 원래의 프랑스·프로방스어 발음이 [ɛ]였다면 이를 흉내내어 프랑스어에서 [e]로 발음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어에서 원어 [ɛ]에 해당하는 개음절 e는 보통 [ɛ] 대신 [e]로 발음되는데 한글로는 둘 다 ‘에’로 표기된다(예: 프랑스어 bene [bene] ‘베네’ < 이탈리아어 bene [ˈbɛːne] ‘베네’).

그래서 Queloz의 프랑스어 발음은 -z가 묵음인지 아닌지, e가 [ə]인지 [e]인지에 따라 [kəlo] ‘클로’, [kəloːz] ‘클로즈’, [kelo] ‘켈로’, [keloːz] ‘켈로즈’로 발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어로 그의 이름을 발음한 동영상을 찾아보면 이들 대부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z를 [z]로 발음한 것은 프랑스 등 타지에서만 주로 관찰되고 프랑스·프로방스어식 이름에 익숙한 스위스에서는 보통 -z가 묵음인 [kəlo] ‘클로’ 또는 [kelo] ‘켈로’로 관찰된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다언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 프랑스어판서는2013년부터 Queloz의 발음을 [kə.lo] ‘클로’로 제시해왔다(원문). 그런데 노벨상 수상 발표가 하루 지난 10월 9일 영어판에서는 Queloz의 발음이 [kelo] ‘켈로’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원문). 즉 언어판에 따라 발음 설명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쪽이 맞을까? 그의 지도 교수였으며 이번에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미셸 마요르는 제자 Queloz의 이름을 [kəlo] ‘클로’로 발음한다(동영상). 스위스의 프랑스어 공영방송 RTS에서도 Queloz를 일관적으로 [kəlo]로 발음한다(동영상 1234). 심지어 다음 영어 다큐멘터리에서도 내레이션에서 Queloz를 프랑스어식으로 [kəlo]로 발음한다(동영상). 그러니 올바른 프랑스어 발음은 [kəlo]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런데 클로는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로서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영어 화자는 아무래도 qu를 [kw]로 발음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알곤킨어 kepék에서 온 캐나다 지명 Québec [kebɛk] ‘케베크’가 영어에서는 보통 Quebec [kwɪ.ˈbɛk] ‘퀴벡’으로 발음된다(표준 표기인 ‘퀘벡’은 관용을 따른 것이다). 더구나 영국 영어에서는 프랑스어 이름에서도 첫 음절에 강세를 주는 일이 흔하며 이 경우 영어에서 [ə]는 강세 음절에 쓰일 수 없으니 [ɛ]로 대체된다. 그래서 그의 주변 영어 화자들 가운데는 그의 이름을 [ˈkwɛl.oʊ̯] ‘퀠로’ 정도로 발음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찾은 동영상에서는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일부러 영어 화자들이 알아듣기 쉬운 발음으로 바꾸어 ‘퀠로’로 발음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씨, 최씨 성을 가진 한국인이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영어 화자들을 감안하여 ‘리’, ‘초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여 국립국어원이 ‘쿠엘로’라는 표기를 배포한지 한 시간 반 만에 그의 스승인 미셸 마요르 및 스위스 공영방송에서 쓰는 발음인 [kəlo]가 올바른 발음일 가능성이 높으니 ‘클로’로 써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보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미 각 언론사에 표기가 발송된 상황이고 ‘쿠엘로’라는 표기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니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미 한 차례 표기를 바꾸었는데 얼마 안 돼 또다시 표기를 바꿔야 한다고 했으니 난색을 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매달 열리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본회의에서 Queloz의 표기를 다시 심의할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국립국어원에서 ‘켈로’라고 처음에 정했을 때 곧바로 연락하지 않고 충분히 검토한 후에 ‘클로’로 적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쿠엘로’로 표기가 배포된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적어도 표기를 재심의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Queloz의 정확한 발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고자 했다. 물론 본인이 프랑스어로 Queloz를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정확한 표기를 알 수 있겠지만 앞서 소개한 영어 동영상 외에 본인 발음을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으로부터 확실한 발음 설명을 듣기 위해 전자우편을 통해 그를 직접 연락했다. 노벨상 수상으로 곳곳에서 연락을 받으며 매우 바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곧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전통적인 발음은 Que-lô, 즉 [kəlo] ‘클로’이고 Qué-lô, 즉 [kelo] ‘켈로’라는 발음도 가능하지만 자신은 전통적인 발음인 ‘클로’를 조금 더 선호한다고 알려왔다. 이로서 이 이름의 발음에 대한 의문은 깔끔히 해결되었다. 여러 발음이 혼용되는 경우 본인이 선호하는 발음을 따르는 것이 좋으므로 Queloz의 표기를 재심의한다면 ‘클로’로 적어야 할 것이다.

Queloz의 표기를 두고 일어난 혼란은 짧은 시간에 올바른 표기를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인명을 한글로 표기하려면 원어 철자만으로는 표기가 확실하지 않아 원래의 발음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전에는 권위 있는 사전에 발음이 실려있지 않은 경우 철자로부터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발음을 추측하는 방법 뿐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위키백과와 같은 자료를 검색할 수도 있고 동영상을 검색하거나 심지어는 당사자를 직접 연락하여 인명 발음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Queloz처럼 원어 화자들도 올바른 발음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아 여러 발음이 통용되는 경우도 있고 언제나 본인의 이름 발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더라도 표기를 잘못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신 어쩔 수 없이 발음을 잘못 안 표기로 정해지는 경우 후에 더 정확한 발음 정보가 추가되면 한글 표기를 고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런 혼란은 한국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발음 설명에서는 Didier Queloz를 DĒ-dē-yā KĀ-lōz 즉 [ˈdiːd.i.eɪ̯ ˈkeɪ̯l.oʊ̯z] ‘디디에이 케일로즈’라고 영어식으로 흉내냈다. Queloz의 발음이 [keloːz] ‘켈로즈’일 것으로 잘못 추측한 결과이다. 대신 영어에서는 같은 로마자를 쓰기 때문에 이름을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고 순전히 발음의 문제이다. 반면 우리는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표기까지도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종성   iceager@gmail.com  최근글보기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실무소위 위원이다. 한글라이즈의 개발 가운데 언어 부분을 맡고 있다. 언어, 특히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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