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② 볼테르 '표현의 자유' 옹호 발언 실상

  • 기사입력 2019.10.29 10:10
  • 최종수정 2021.01.27 18:24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주겠다"(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 볼테르

 

용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격언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주의자의 호방한 ‘똘레랑스(tolerance, 관용)’ 정신을 대표하는 수사로 장소를 불문하고 즐겨 쓰인다. ‘표현의 차이는 참을 수 있으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참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7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7년 1월 페이스북에서, 서정욱 변호사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고문 구속영장 실질심사 변론 자리에서 해당 발언을 인용했다. 모두 편가르기, 탄압에 대한 비판의 논지로 사용됐다. 정청래 전 의원과 고성국 평론가도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17회 방송에 출연해 볼테르를 거론한 바 있다.

저널리즘토크쇼J 유튜브 캡처

 

실상

바로 그 방송에서 정준희 교수도 넌지시 지적했듯 볼테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해당 구절은 볼테르의 저작이 아닌 후세의 역사학자 이블린 홀이 1906년에 쓴 책 <볼테르의 친구들>에 나오는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 클로드-아드리안 엘베시우스가 1758년 <마음에 대하여(De l’esprit)>라는 책을 썼다. 엘베시우스의 책은 무신론 등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고깝게 여긴 파리 고등법원과 소르본 대학은 금서 처분을 내리고 엘베시우스의 책을 공개 소각한다. 볼테르 역시 그의 책을 좋아하진 않았으나 이 박해는 부당하다 여겼다. 이에 대해 이블린 홀은 정확히 이렇게 기술한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죽을 힘으로 싸우겠다’라는 것이 당시 그의 태도였다(‘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was his attitude now).”

따옴표가 있긴 하지만 실제 볼테르의 말을 쓴 것인지 볼테르의 태도에 대해 작가가 쓴 것인지 모호하다. 이블린 홀은 1919년에도 볼테르 서간집을 내면서 볼테르와 엘베시우스의 앞선 일화를 언급한다. 여기서는 같은 문장이 ‘볼테르적인 원칙(Voltairean principle)’으로 소개된다. 이후 1939년 작가는 문학 학술지 <현대 언어 노트(Modern Language Notes)>에 편지를 보내 해당 문장은 “볼테르의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말”이라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사과까지 했다. 위 편지에는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볼테르가 말한 것처럼 오독되는 문장을 적은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블린 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볼테르의 격언은 거침없이 퍼져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볼테르가 원전임을 주장하는 글들 중 명확한 출처가 있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어로 쓰여져 원문처럼 보이는 글도 대부분 홀이 책을 낸 이후에 그의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것들이다.

해당 문구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당사자의 발언이 아니라 하더라도 ‘볼테르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과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실제 볼테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볼테르의 말처럼 휘두른다면 의미적으로도 ‘넌센스’일뿐 아니라 논쟁에서 쓰임에 있어서도 패착이다.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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