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체르노빌 사고 사망자 수천명"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7.08.1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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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천 명이며 피해자는 수십만 명이 넘는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정재승 KAIST 교수, 6월 30일 tvN 방송 <알쓸신잡>중

 

tvN <알쓸신잡>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 규모에 대해 얘기중인 유시민 전 장관과 정재승 교수.

자유한국당이 8월 6일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5회차 방송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재승 KAIST 교수가 한 발언에 대해 지난 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 심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과 정 교수는 지난 6월 30일 방영된 방송에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천명이며 피해자는 수십만 명이 넘는다”고 발언한 바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유 전 장관과 정 교수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체르노빌 포럼의 2005년 보고서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인한 직접적 사망자 수는 50여명이며 4000명이 피폭에 따른 암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밝혔다”면서 “하지만 해당 사고와 암 발병이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등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뉴스톱>이 <알쓸신잡>의 발언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했다.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노출로 인해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숲의 황량한 전경. 소나무가 고사되어 붉은 숲으로 불린다. 출처:위키미디어

1986년 4월 구소련(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 4호기가 폭발했다.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국제기구의 공식 보고서에 담긴 피해 추정치가 제 각각인데다가 30년간 업데이트 되면서 작성시점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 자료를 모두 살펴보아야, 알쓸신잡의 발언의 진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사고로 인한 인체 피해 규모는 논쟁중인 사안이다. 당시 구소련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원전 종사자 2명과 소방관 29명 등 총 31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 이후다. 직간접적 영향으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집계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원전 폭발로 인한 직접적 사망자와 방사선 피폭에 의한 간접 사망자수를 추산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방사능 피폭에 의한 피해는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하기가 쉽지 않고, 원인 규명에 오랜 시일이 걸린다.

체르노빌 포럼, "방사선 노출 500만명"

우선 자유한국당이 근거로 제시한 '체르노빌 포럼' 자료를 살펴보자. '체르노빌 포럼''은 2005년 9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렸으며 여러 국가가 참여한 사실상 최초의 공식보고서라는데 의의가 있다. 당시 포럼에는 유엔(UN),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World Bank), 주요 3개 피해국(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정부가 참가했다. 이 포럼에서 IAEA는 직접 사망자가 56명, 사고로 인한 암 사망자는 4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UN은 직접 방사능 노출로 인한 암 사망자가 4000명~9000명에 달할 것이라 보았다. 2005년 보고서를 기준으로 하면 얼핏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원자력학회 (American Nuclear Society)에서 2005년 10월에 발간한 체르노빌 포럼 요약본을 보면 20만명의 노동자가 원전 폭발 뒤 정리작업에 동원이 됐으며 약한 방사능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총 60만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매우 강한 오염으로 출입금지구역(Exclusion Zone)에 살다가 이주한 사람은 11만6000명이며, 총 40만명이 방사능 오염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슘 137이 제곱미터당 37킬로베크럴 이상인 (above 37 kBq/m2 of Cs-137) 지역에 거주한 사람은 500만명이었다. 500만명이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는 의미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놀이공원은 폐허가 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방사능에 의한 사망자 규모 갑론을박

논란의 지점은 원전폭발이 건강에 미친 영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선 노출로 20만명의 작업자, 11만6000명의 이주민, 그리고 27만 오염지역 거주민 중에서 3940명이 암으로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낮은 수준의 오염지역 거주민 500만~600만명 중 추가로 4000명 가량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추산된 피해 규모가 너무 작다며 이를 반박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인데 20년간 고작 4000명이 추가로 사망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수치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지만 피해자와 사망자 규모는 이견이 있었다. 20년간 수천명이 암에 걸려 사망한 것은 맞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방사능 노출인지에 대해서는 참가자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이다.  

즉 체르노빌 포럼은 알쓸신잡의 발언을 입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2005년 당시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 중 4000~8000명이 암에 걸려 사망했으며, 수십만명은 직접 방사능에 노출됐으며 수백만명이 방사능 영향권에 있었던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포럼은 다양한 참가자가 사실에 기반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이견이 있어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유 전 장관과 정 교수가 포럼의 일부 수치를 인용했다고 해서 틀린 주장은 아니라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에 전시된 기형 강아지. 출처:위키미디어

토치보고서 "방서선 노출로 27만건 암 발생"

이듬해인 2006년부터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직간접적 사망자수 예측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체르노빌 포럼 보고서는 UN, WHO 등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와 피해 당사자국들이 참여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보고서이긴 하지만, 이중 IAEA는 원전 문제의 이해 당사자이기도 해서 오히려 공신력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2006년 체르노빌 포럼에 참가한 기구 중 하나인 WHO는 암 발병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가 9000명이 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유아동 및 청소년이었던 주민 가운데 갑상선 암에 걸린 사람이 5000명에 이르며, 새로운 암 환자가 앞으로도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늘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당시 체르노빌 포럼에 참여한 WHO가 예측 사망자수를 수정했기 때문에, 2005년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한 수치를 공식 자료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봐야 한다.

2006년에는 유럽과학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체르노빌 20주기 보고서 ‘토치(TORCH·The Other Report of Chernobyl)'도 발표됐다. 토치는 암 환자가 IAEA 추정치의 7~15배인 3만~6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사고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27만 건의 암이 원전 사고로 인한 것이며, 치명적 수준의 암 환자인 9만3000명은 사망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암 이외의 다른 질병까지 포함하면 2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2009년 미국 뉴욕과학아카데미는 체르노빌 참사로 사고 당시부터 2004년까지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알렉세이 야블로코브(Aleksey Yablokov)의 연구 저서를 게재하기도 했다. 같은 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진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방사능 낙진에 노출된 아동들의 발암 위험성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방사선 피폭량이 많을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25년이 경과한 후에도 발암 위험이 낮아지지 않았다. '체르노빌 어린이 프로젝트' 등도 기형아 출산, 암과 백혈병 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CIA에서 작성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확산 지도. 출처:위키미디어.

유엔과학위원회 "인과관계 명확하지 않아"

반면 피해 규모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 (UNSCEAR)는 사고 2년 뒤인 1988년부터 지속적으로 체르노빌 보고서를 발행했다. 2012년 UNSCEAR 보고서 를 보면 53만명의 체르노빌 정리작업에 참여한 노동자가 방사선에 노출됐으며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오염지역에서 6000건 이상의 갑상선암이 보고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보고서는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암의 원인을 체르노빌 사고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고 이전에도 암발생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모든 종류의 암 발병과 방사선 노출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는 2000년, 2008년 보고서에서도 지속적으로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다고 밝히고 있다. 2000년 9월 제출한 보고서는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14년 동안 심각한 공중보건문제가 발생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유엔방사성영향과학위원회는 방사선에 의한 인체 피해를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13년 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리포트를 발간했는데, 후쿠시마 주민에게서 암발생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원전 30km 반경내에 살고 있는 유아에 한해서 갑상선암의 증가가 확인될 가능성은 있으나 데이터가 부족해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일본정부가 신속히 주민들을 대피시켜 피해가 적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방사능이 직접적 사망 원인임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위원회가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측정해 피해를 축소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체르노빌 사고 30주년을 맞아 2016년 4월에 발간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체르노빌 업데이트에 따르면, 2006년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 보고서 작성 뒤 10년동안 암환자가 수천건 급증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직접 피해를 입은 3개국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방사선 노출 영향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환자수는 2016년까지 1만1000명이 넘는다.  

뉴스톱의 판단

정재승 교수는 지난달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우 정치적인 이슈로 환경연합·녹색당과 한수원·원자력공학과 출신이 서로 인용하는 수치가 아예 단위가 다르고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인근 지역의 갑상선암 등 암 발생에 대해 2000명 수준에서 43만명 수준까지 수치가 다양하다) 과학적 근거도 달라 매우 당혹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정 교수의 말 대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불확실’하며 그 누구도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뉴스톱>은 이처럼 정확한 체르노빌 사망자 수는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라는 점을 밝힌다. 어쩌면 원전 사고의 가장 큰 위험성은 방사능 노출로 인한 피해규모를 산출하기 어려운 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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