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해밀, 제다이와 조커의 이중생활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7.12.1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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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그동안은 뭘 하고 있었을까

한국에서는 대중적 흥행보다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한 열풍에 좀더 가까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신작 ‘라스트 제다이’가 베일을 벗었다. 게임칼럼에서 영화의 최신 시리즈를 다룬다면 당연히 게임으로 컨버전된 스타워즈 이야기를 다루는 게 일반적이겠으나, 오늘 다루려는 이야기는 게임으로서의 ‘스타워즈’ 이야기는 아니다.

스타워즈 7편 '깨어난 포스'에 출연한 루크 스카이워커역의 마크 해밀

‘스타워즈’ 의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는 에피소드 4, 5, 6편에 이어 시퀄에서도 계속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작품의 주인공이기에 루크 스카이워커의 인지도 또한 결코 낮은 편이 아닌데, 그에 비해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하는 배우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마니아층을 벗어나면 사실 루크 스카이워커를 맡은 배우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바로 영화배우 마크 해밀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7-80년대의 대히트작 ‘스타워즈’ 주인공으로 출연한 뒤 마크 해밀은 눈에 띄는 영화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눈썰미 있는 영화팬들은 2014년의 영화 ‘킹스맨’ 앞부분에서 대학 교수로 잠깐 출연한 그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대니얼 래드클리프처럼, 마크 해밀은 배우 해밀이라기보다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라는 이미지를 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스타워즈’ 이후 대중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영화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조금 성립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의외로 게임 팬들은 마크 해밀이 누구인지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는 편일 것이다. 그의 활동은 영화보다는 한동안 게임 쪽에서 두텁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윙코맨더 4’에 등장한 루크 스카이워커와 김리

1996년 출시되어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그래픽과 CD-ROM 6장의 방대한 분량으로 인기를 끌었던 우주 전투기 시뮬레이션 게임 ‘윙코맨더 4’ 는 FMV(Full Motion Video)라는 방식을 도입해 전투기 탑승 전투 이외의 게임 부분들을 실제 영화배우들을 동원해 촬영해 인터랙티브 비디오를 구현한 바 있었다. 게임 속 우주항모 안에서 여러 선실을 돌아다니다보면 실사처럼 살아 움직이는(어디까지나 당시 기준으로) 여러 등장인물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임무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처럼 그래픽으로 모델링된 인물들이 아니라 실제 영화배우의 연기로 만들어진 인물들이었다.

‘윙코맨더 4’의 주인공인 최강의 우주 전투기 조종사 크리스토퍼 블레어 또한 배우의 연기를 촬영해 만들어졌고, 그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마크 해밀, 전직 루크 스카이워커였던 그였다. 마크 해밀은 ‘윙코맨더’ 시리즈가 처음으로 배우들을 촬영해 게임에 투입하기 시작한 ‘윙코맨더 3편' 이래 줄곧 에이스 파일럿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작인 ‘스타워즈’ 의 우주 전사 이미지를 게임 분야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고전게임 윙코맨더 주인공으로 출연한 마크 해밀. 이때까지만 해도 스타워즈의 영향권 근처인 우주 전투기 조종사 배역을 맡던 그는 이후 다른 영역을 통해 스타워즈 그늘에서 벗어난다.

‘윙코맨더’ 의 FMV에는 비단 마크 해밀 뿐 아니라 꽤나 쟁쟁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연배우였던 말콤 맥도웰은 ‘윙코맨더’에서 지구연방 우주군의 사령관으로 출연하며, ‘반지의 제왕’ 김리 역으로 알려진 존 리스 데이비스는 ‘윙코맨더 4’ 에서 주인공 편대의 파일럿 제임스 태거트로 등장한다. 영화 촬영과 기법 면에서 유사한 FMV라는 방식이 유의미하던 시절이었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게임의 완성도와 직결되었고, 톱스타 급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이름있는 수준들의 배우가 게임 제작에 참여하던 시절이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조커로 등장하다: ‘배트맨 아캄 3부작’

3D그래픽기술의 발전으로 FMV방식의 게임 캐릭터 제작이 무의미해진 뒤에도 그러나 마크 해밀은 또 한번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앞선 ‘윙코맨더’ 시리즈가 적어도 자신의 출세작과 유사한 우주 전사 캐릭터라는 면에서의 연계감이라도 있었다면, 게임에서의 두 번째 히트 배역은 조금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배트맨 아캄 3부작’ 시리즈에서 대표 빌런인 조커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출연했다.

* 90년대부터 배트맨 애니메이션에서 조커 성우를 맡아 온 마크 해밀은 게임 ‘배트맨 아캄 3부작’ 에서 놀라운 수준의 조커 싱크로율을 보이면서 다시한번 찬사를 받는다.

성우 쪽에 관심있거나 배트맨 시리즈의 마니아라면 의외로 익숙할 사실인데, 마크 해밀은 오히려 루크 스카이워커보다는 조커 전담 성우로 더 명성이 높은 편이었다. 90년대부터 오랫동안 마크 해밀은 각종 애니메이션을 통해 조커 목소리를 전담해 왔다. 다만 게임화된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도 성우를 기용할 정도의 캐릭터성이 드러나는 게임이 많지 않았기에 배트맨 아캄 3부작에서의 마크 해밀 조커는 많은 이들에게 ‘어? 그 목소리네?’ 라는 신선함과 반가움을 함께 주는 요소가 되었다.

게임 속 유명 배우들, 그리고 돌아온 마크 해밀을 위하여

‘스타워즈’ 에피소드가 다시 이어짐에 따라 마크 해밀은 루크 스카이워커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는 많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성우로서의 의미가 더 강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처럼 영화 등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게임에 출연하는 경우는 쉽게 인지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꽤나 자주 있는 편이다.

앞서 언급된 ‘시계태엽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은 ‘폴아웃 3’ 의 미국 대통령 존 헨리 이든의 목소리로 출연한다. ‘폴아웃 3’의 주인공 아버지인 제임스 역의 성우는 그 유명한 리암 니슨이 맡은 바 있었으며, 미드 ‘24’로 유명한 키퍼 서덜랜드는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 페인’에서 주인공 스네이크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미국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은 ‘브루털 레전드’라는 메탈 관련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게임에는 상당수의 록스타들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이제는 할리우드 스타로도 불릴 영화배우 이병헌 또한 한때 ‘로스트 플래닛’ 이라는 게임의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 적이 있으니 이제 배우들의 활동 영역은 비단 스크린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말콤 맥도웰은 '시계태엽 오렌지'로 유명하지만 게임 분야에서는 '윙코맨더' 시리즈의 톨윈 사령관, '폴아웃'의 인공지능 존 헨리 이든 대통령 역할로 알려져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재시작과 함께 돌아온 루크 스카이워커, 아니 마크 해밀을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게임 마니아들은 어찌 보면 마크 해밀이라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래 족적을 남겨 온 한 배우가 자신의 시작이었던 영화에 그 배역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 또한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내게 있어 마크 해밀이란 배우와의 첫 조우는 ‘윙코맨더 4’의 에이스 파일럿이었기에 마크 해밀의 ‘스타워즈’ 복귀는 ‘윙코맨더’ 세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웅의 뒷모습 같은 느낌을 남긴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인기 성우였던 마크 해밀의 스크린 복귀에도 포스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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