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여ㆍ개입ㆍ포용 중 정확한 Engagement 번역은?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1.16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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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마련한 신년 기자회견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전 협의나 미리 짜여진 각본 없이 진행되었기에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날 문 대통령으로부터 지목을 받은 영국 BBC의 외신기자 로라 비커 Laura Bicker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1시간 3분부터)

"Now you have pursued this Policy of Engagement. (최근 대통령께서는 관여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The US policy is one of Maximum Pressure. (미국의 정책은 최대압박정책입니다.)
Is there not a potential for a flash point between those two policies? (2가지 정책들이 충돌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And how will you deal with it?"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BBC 특파원 로라 비커가 청와대 신년기자회견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비커 기자의 질문에는 Policy of Engagement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관여정책'으로 통역되었다.  미국의 최대압박정책과 충돌지점(flash point)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그와 반대되는 성격의 정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쉽지 않은 용어다. 영어 단어 engage는 우리말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조금 복잡한 단어다. 네이버 영어사전은 동사 engage를 1) 주의나 관심을 끌다 2) 고용하다 3) 관계를 맺다 4) 교전을 시작하다 5) 기계 부품을 맞물리다 등으로 정의한다. 또한 명사형인 engagement는 1) 약혼 2) 약속, 업무 3) 교전 4) 관계함, 참여 5) 고용 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각각 의미가 5가지나 되는데도 서로 뚜렷한 유사성이나 관련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외우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engagement는 '관여'로 번역되었다.

사실 engage라는 영어 단어는 '~하게 하다, 가능하게 하다'의 의미를 담은 접두어 [en-]과 '담보, 판돈, 서약'을 뜻하는 gage의 조합이다. 그래서 engage의 근원적 의미가 '담보나 판돈을 걸다' 혹은 '서약을 하다'라는 의미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담보를 잡히거나 서약을 하는 것은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사전조치일 것이다. 결국 engage의 핵심적 의미는 '규칙을 따르기로 약속하고 어떤 일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혼'은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약속을 전제로 관계를 맺는 행위이다. 사람을 '고용'하거나 '업무'를 보는 것도 규칙이나 약속을 전제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군인들도 '교전수칙(Rules of Engagement)'을 준수하며 전투를 시작한다. 모두 특정한 규칙을 따르기로 약속한 후 관계를 맺거나 사안에 참여하는 상황인 것이다. engage와 engagement는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용어인 Engagement Policy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관여정책은 일반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촉을 구축하고 확대함으로써 대상국가의 정치 행태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책을 뜻한다. 1990년대 냉전체제 몰락 이후의 미국 외교정책은 구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체제로 편입시키는 데 주력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공산권과 제3세계 국가들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의 서방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트럼프 집권 이전까지는 중국이나 북한, 이라크 등 '비정상국가'들과도 원칙과 약속을 전제로 다양한 분야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것이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의 핵심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견지하고 있는 최대압박제재정책(Maximum Pressure Policy)와 대조를 이룬다. 냉전시대의 강경책에서 탈피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2018 신년 기자회견에서 Engagement Policy를 '관여정책'으로 전달한 동시통역은 매우 적확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관여'라는 말은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함"으로 정의된다. 비록 engagement의 원어적 의미에서 '규칙이나 약속, 서약'의 의미는 빠졌지만, '관계를 맺고 참여하다'라는 본래 취지를 잘 살린 표현이다.  

그러나 '관여정책'과 자주 혼동하여 사용되는 '개입정책'은 '개입'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끼어듬)를 고려하면 본래 취지와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여정책'과 '개입정책'이 혼용되는 사례는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최대압박과 관여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로 요약된다. 일부 언론은 engagement를 '개입'으로 번역'한다.

최근 조선일보는 "트럼프 행정부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정책수립…北선제타격 후순위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engagement를 개입정책으로 번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고의 압박과 개입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을 골자로 한 대북 정책 원칙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용정책'은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의 또 다른 오역이다. 포용정책은 엄밀하게 말해 '한국형 관여정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의 외교정책인 Engagement Policy를 우리나라 상황과 대북관계에 맞춰 적용한 것을 우리가 '포용정책'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는 것이다. 당연히 포용정책의 영어 번역 역시 Engagement Policy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와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Policy of Peace and Prosperity)가 바로 포용정책 혹은 한국형 관여정책에 속한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관여정책, 포용정책, 그리고 햇볕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압박과 관여를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압박은 있고 관여는 없다. 압박은 최고, 최대 수준으로 왔다. 여기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려 관여로 넘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 관여는 영어로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대북포용 정책은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라고 말한다. 포용정책의 다른 번역어는 햇볕정책이다. 관여는 포용하고 화해하는 협력정책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Maximum Pressure 정책과 문재인 대통령의 Engagement 정책이 충돌할 가능성은 있을까? 비커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압박정책 위주였던 대북관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기 전에 대화가 재개되어 다행"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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