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직전 성완종은 기자에게 거짓을 얘기했을까?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1.18 03: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윤수의 법률 팩트체크] '성완종 게이트' 이완구 무죄 확정판결 의미

2015년 4월 9일 오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북한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상의 주머니에서 정부 주요인사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메모지가 발견됐고, 경향신문은 성 회장이 죽기 유력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수사를 받는 게 억울하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고 공개했다.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메모지에 기재되어 있던 사람들 중 하나인 이완구 국무총리는 성 회장으로터 3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취임 69일 만에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불구속 기소됐다. 홍준표 경남지사 역시 성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지급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2년이 넘은 공방 끝에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은 이완구, 홍준표에게 무죄를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결국 성완종 게이트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이들은 어떻게 무죄로 인정된 것일까. 우선 상대적으로 쟁점이 간단한 이완구 전 총리 사건의 판결 이유를 살펴보자.

이완구 전 국무총리(우측)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이 전 총리는 최초엔 성 전 회장과 친분이 없다고 말했으나 언론보도로 1년에 200차례 전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완구 유죄는 성완종의 기자 인터뷰 신빙성에 달려

이 전 총리의 공소사실은 19대 국회의원 재보권선거 당시인 2013년 4월 4일 오후 5시쯤 자신의 선거사무소내 후보실에서 성 회장으로부터 현금 3000만원을 건네받음으로써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정치자금법 제45조 제1항 참조).

문제는 성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성 회장이 죽기 전 경향신문 기자와 나눈 인터뷰의 녹취파일, 이에 대한 녹취서,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뿐이라는 점이다.

녹취파일, 녹취서, 메모는 모두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나 그 진술을 기재한 서류로서 원칙적으로는 작성자 또는 진술자가 법정에 나와 진정하게 성립되었다고 인정해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참조). 그러나 이미 성 회장은 사망해서 법정에 출석할 수 없었으므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인터뷰를 했거나 메모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증거로 삼을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314조 참조).

사건의 주된 쟁점은 성 회장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는지 여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22부는 이를 인정하여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은 성완종 자살 직전 진술 신뢰도 높다고 판단해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고합569 판결에서는, 성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당일인 2015년 4월 9일 아침 일찍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 전 총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털어 놓았는데, 그 전날 성회장이 적극적으로 보도를 전제로 한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인터뷰 전 녹음 준비가 되었는지 재차 확인한 사실을 특히 신빙할 수 있는 근거로 꼽았다. 또한 성 회장은 당시 이 전 총리에 대한 배신감이 심하였음에도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제공사례를 먼저 이야기한 뒤 이 전 총리에 대해서 밝혔고, 금액도 이 전 총리에 대한 제공액이 다른 정치인에 비하여 적었는데, 1심 법원은 성 회장이 이 전 총리를 처벌받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다른 정치인보다 먼저 언급하고 돈도 더 많게 줬다고 진술했어야 하므로 성 회장의 진술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았다.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들어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하였고, 기업인으로서 자수성가해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명예를 중시한 인물들이 사망 직전 거짓말을 남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4월 4일 성 회장을 만난 사실 조차도 부인했는데, 1심은 이와 배치되는 증거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 회장의 비서인 금모씨는 2013년 4월 4일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고 증언했고, 경향신문 보도 후 이 전 총리가 성 회장을 만난 사실을 부인하는 것에 강한 분노를 표시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성 회장의 다른 비서는 성 회장이 부여선거사무소에 도착하기 직전 홍모 의원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립적이거나 이 전 총리와 가까울 것으로 여겨지는 박사모 회장을 지낸 한 모씨나 유모 도의원,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도 성 회장이 부여선거사무실을 방문한 사실 또는 이 전 총리와 독대한 사실을 증언했다.

2심은 이완구에 대한 분노로 성완종의 허위 진술 가능성 제기돼

그러나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제2부는 우선 형사소송법 상 공판중심주의, 구두변론주의, 직접심리주의의 예외를 인정할 때는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야 하고, 형사소송법 제324조 단서의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때“는 허위개입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가리키며, 그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한 금품 수수가 쟁점이 사건에서 금품 수수자로 지목된 피고인은 수수사실을 부인하고, 금융자료 등 객관적 물증이 없는 경우 금품 공여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신빙성은 진술 내용의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뿐 아니라 진술자의 인간됨,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 특히 진술자에게 혐의가 있어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항소심 법원은 성 회장이 자신에 대한 수사 배후가 이 전 총리라고 생각하고 강한 배신과 분노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허위 진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전화 인터뷰 중 이 전 총리는 비난하면서 자신과 관계 되는 분식회계나 비자금에 대한 내용은 은폐하거나 축소해 말했고, 이미 인터뷰 당시 자살을 언급하여 자신에 대한 이 전 총리의 반대신문 기회가 봉쇄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전화 인터뷰이기 때문에 상대방인 기자가 성 회장의 태도나 주변상황을 목격할 수 없어 진술의 임의성이나 신빙성을 확인하는데 제약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법원은 진술 내용에 대해서도 성 회장이 “한 한 한 3000만원”이라고 말하는 등 금액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메모에 기재된 다른 사람은 금액이 적혀 있지만 이 전 총리는 이름만 있으므로, 진술금액의 구체성에 의문이 든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성 회장은 인터뷰에서 검찰이 딜을 제안한다고 언급하는 등 자신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정치인에 대한 금원 공여 정보를 검찰에 제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어 측근들에게 비자금 사용처를 확인하였으나, 이 전 총리에 대한 금품 공여 사실은 언급하거나 사실을 확인하려고 한 사실이 없는 점을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꼽았다. 끝으로 성 회장이 과거 배임수재, 공직선거법 위반, 비자금 조성 등으로 처벌받았고, 자금관리책도 처벌받았음에도 전화 인터뷰에서는 사실과 달리 축소, 부인하였으므로, 성 회장의 전화 인터뷰 등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 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항소심 법원은 성 회장의 비서인 금 모씨가 쇼핑백을 들고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 내 후보자실로 들어가 성 회장에게 전해 주었고, 성 회장이 후보자실을 나올 때는 그 쇼핑백이 없었다고 증언하였으나, 그 진술만으로 성 회장이 쇼핑백을 이 전 총리에게 주었고, 이 전 총리가 쇼핑백 내에 돈이 들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유죄 취지로 증언한 사람들은 모두 수사, 재판 중이었다거나 진술의 내용이 모호하다거나 2013년 4월 4일 성 회장 비서의 철도 예약 취소 내역을 보면 성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금원을 제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성 회장이 당시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음에도 측근들이 다 알게 하는 방식으로 이 전 총리에게 금원을 지급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기타 증거들도 모두 배척했다.

대법원은 2심과 마찬가지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항소심과 같은 취지로 이 전 총리의 무죄를 확정했다.

결국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다. 성 회장이 이 전 총리에 대한 원망감으로 자살 전 거짓말을 했고 측근들 또한 수사 중이라서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숨겨 왔던 진실을 말했다고 믿을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