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문재앙’ 표현이 위법일까?

  • 기사입력 2018.02.01 00:50
  • 최종수정 2018.02.05 11:12
  • 기자명 이고은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앙’, ‘문슬람’ 등으로 부르는 악성비난 댓글을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비난하며 강력 대응할 의사를 밝혔다. 추 대표는 또 문 대통령 비난 여론의 진앙지를 포털 사이트 네이버로 지목하고 ‘포털 규제론’을 역설하기도 했다. 추 대표의 주장처럼 문 대통령을 비방하는 댓글에 대해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뉴스톱>이 관련 사실들을 팩트체크했다.

추미애 대표는 ‘문재앙’(문재인+재앙)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며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르고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비판했다. 추 대표는 “대표적인 포털 네이버의 댓글이 인신공격, 비하와 혐오, 욕설의 난장판이 돼버렸다”고도 지적했다. ‘문재앙’이라는 표현은 일부 네티즌들이 가상화폐 규제 논란, 부동산 대책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만든 신조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을 ‘문재앙’이라 표현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로 범죄에 해당할까.

명예훼손은 성립불가, 모욕죄는 대통령이 직접 고소해야 가능 

우선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 명예훼손의 정의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인격적 평가를 낮출 목적으로 진실한 사실 혹은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따라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처벌(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받을 수 있지만, 공인이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의 경우(형법 제310조)에는 처벌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 아니라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형법 제307조 제2항에 따라 처벌의 강도(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가 더욱 강해진다. 민법(제750조, 제751조)에서는 명예훼손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앙'이라는 표현은 진실 혹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다. 개인에 대한 주관적 감정과 평가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명예훼손을 적용하려면 진실이든 거짓이든 '팩트'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문재앙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 어렵다.

페이스북 페이지 '문재앙 경보 알림 서비스' 첫 화면.

그러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모욕죄는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추상적인 평가나 경멸의 감정을 표현한 경우 해당된다. '문재앙'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보다는 모욕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모욕죄가 친고죄라는 점이다. 즉 모욕을 당한 당사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가해자를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가 있다. 문 대통령이 국민을 직접 고소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서 모욕죄는 적용할 수 없다.

‘문재앙’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으로 풍자나 비평에 해당된다. 풍자 행위는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였다. 대표적 판례는 1998년 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이 김상택 전 경향신문 화백과 경향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10억 원을 청구한 소송이다. 이 소송은 만평에 대한 명예훼손과 관련된 첫 판례로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법원은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 없이 단지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관하여 비평하거나 견해를 표명한 것에 불과할 때에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공인에 대한 풍자를 규제하는 것에 대한 논란은 과거 정부 때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포털 사이트에 자신을 비판한 연관 키워드 ‘박근혜 생식기’, ‘박근혜 악수거부’, ‘박근혜 부정선거’, ‘박근혜 돌대가리’ 등을 삭제해달라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KISO 측은 해당 검색어를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4가지 연관 검색어 중 ‘돌대가리’만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있다는 소수 의견만 제기되었다.

풍자·비평에 대해 ‘이중 잣대’ 내미는 민주당

인터넷 상의 풍자와 비판이 끊이지 않자,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의 신고만으로 명예훼손을 한 댓글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을 개정하고자 추진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명예훼손은 제3자 신고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되어 있지만, 하위 법령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규정은 당사자나 대리인만 신고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대통령 비판글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가 심의규정 개정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친고죄 규정이 사라진다면 인터넷 상에서 정부, 정치인, 고위 공직자에 대해 이뤄지는 비판과 풍자까지 심의할 수 있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개정에 반대한 당사자는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비판마저도 차단하고 언론의 ‘빅브라더’ 역할을 하겠다는 폭력적인 발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민주당이 공인에 대한 풍자와 비평에 대해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결국 방통위가 밀어붙여 심의규정 제 10조 2항(명예훼손 게시물 심의는 당사자 혹은 대리인의 신고가 있을 때만 심의를 청구한다)은 2015년 12월 10일 삭제되었다.

'문재앙'이 불법이면 '쥐박이' '닭그네'도 문제될 수 있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호칭이 위법이라면 똑같이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호칭도 문제가 된다. 이 전 대통령은 쥐같이 생겼다고 해서 '쥐박이' '쥐새끼'로 불렸으며, 뇌 용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의미로 '2MB'로, 권위주의 대통령이라 해서 '가카'로 불렸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선거의 여왕'이라는 긍정적 호칭 외에도 '수첩공주' '댓통령' '다카키 그네코' '근라임' '닭그네' '닭대가리' 등의 호칭으로 불렸다. '문재앙'을 처벌한다면 과거 대통령 호칭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풍자를 모두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결국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2017년 2월 당시 문재인 예비대선 후보는 JTBC 예능프로그램에 '썰전'에 출연했다. 패널인 전원책 변호사가 문재인 후보에게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참아야죠 뭐. 국민들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의 어떤 비판도 수용한다는 입장인데 여당이 나서서 국민들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뉴스톱의 판단

절반의 진실.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앙’이라고 표현한 일부 네티즌의 발언에 대해 당사자나 대리인이 명예훼손이라 여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공인이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명예훼손에 따른 처벌의 대상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다. 또한 비판과 풍자는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며,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규정한 여타의 권리들에 비해 더욱 강하게 보장받는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야당이던 시절에는 대통령과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풍자를 지지하다가, 여당이 된 입장에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에 뉴스톱은 ‘문재앙’ 발언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절반의 진실로 판정했다.

이고은   freetree@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5년부터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2016년 '독박육아'를 이유로 퇴사했다. 정치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고 온라인 저널리즘 연구팀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아이 엄마로서 아이키우기 힘든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알리는 일에도 열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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