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생뚱맞은 판례로 '이재용 재산국외도피'에 무죄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2.1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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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 2월 3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 받아 석방됐다. 재벌 회장은 “1심 5년, 2심 3년에 5년 집행유예”라는 속설에 거의 근접한 결과다.

본지 기사 “이재용 2심 집행유예 세가지 가능성은?”에서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방법을 예상했다. 첫 번째는 법정형의 하한이 5년 이상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 위반(횡령, 국외재산도피)을 전부 또는 일부 무죄 받아 횡령 및 재산도피액을 줄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횡령액을 50억원 미만으로 감축함과 동시에 특경가법위반(국외재산도피) 법조항 자체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는 것이고, 마지막은 작량감경을 받는 것이었다.

 

항소심, 특경법 재산국외도피 무죄에 작량경감까지

항소심 법원은 먼저 첫 번째 방법을 택하여 1심에서 인정된 횡령액 약 80억원 상당을 약 36억원으로 감축시킴으로써 적용되는 법조항을 특경가법 제3조 제1항 제1호에서 제2호로 바꿨다. 법정형 하한이 5년 이상에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내려갔다.

제3조 (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① 「형법」 제347조(사기), 제350조(공갈), 제350조의2(특수공갈), 제351조(제347조, 제350조 및 제350조의2의 상습범만 해당한다), 제355조(횡령·배임) 또는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 “이득액”이라 한다)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한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특경가법위반(재산국외도피) 부분을 모두 무죄로 봤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고될 수 있는 법정 최저형은 3년형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 번째 방법, 즉 형법 제53조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에 따라 작량감경까지 했다. 작량감경으로 법정형의 하한이 1/2인 징역 1년 6월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이재용 회장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항소심 판결은 쟁점도 다양하고 비판 지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범위를 한정해서 특경가법위반(국외재산도피) 중에서도 항소심에서 파기된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자.

특경가법 제4조 (재산국외도피의 죄)

① 법령을 위반하여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국민의 재산을 국외로 이동하거나 국내로 반입하여야 할 재산을 국외에서 은닉 또는 처분하여 도피시켰을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해당 범죄행위의 목적물 가액(이하 이 조에서 “도피액”이라 한다)의 2배 이상 10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의 경우 도피액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도피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5년 이상의 유기징역

<특경가법위반(재산국외도피) 관련 공소사실 및 판결 내용>

 

공 소 사 실

1심

항소심

특경가법위반

(재산국외도피)

실제로는 코어스포츠를 통해 최순실에게 반대급부 없이 돈을 주는 것임에도 외국환거래법상 신고를 요하지 않는 거래로 가장하기 위해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체결하여 총 36억 3,484만원을 국외 도피시킴

유죄

특경가법 제4조 제2항 제2호, 제1항

법정형 : 5년 이상의 징역

무죄

말 및 차량 구입 용도로 삼성전자 명의 독일 계좌에 42억 5,946만원 외화 예치

무죄

무죄

 

'뇌물공여자' 이재용이 쓸 수 없는 돈이라며 재산국외도피 면죄

독일 법인 코어스포츠는 최순실이 뇌물을 받기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여 삼성전자 승마단의 독일 승마훈련을 지원, 관리하는 등의 용역을 제공해 줄 수 없었다. 특검은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컨설팅서비스’를 지급사유로 코어스포츠 독일 계좌로 약 36억원을 송금한 것은 허위의 지급신청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외국환거래법 등 관련법을 위반하여 대한민국의 재산을 국외로 이동시켰다고 기소했다. 1심 역시 이를 인정했으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2도7262 판결을 인용하여 재산국외도피죄의 성립 요건으로, 국내 재산을 해외로 이동할 때 두 가지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 번째는 자신의 행위가 법령에 위반하여 국내재산을 해외로 이동한다는 인식이고, 두 번째는 그 행위가 재산을 대한민국의 법률과 제도에 의한 규율과 관리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해외에서 임의로 소비, 축적, 은닉 등 지배․관리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행위라는 인식이다.

즉, 위 대법원 판결에서 말한 두 번째 인식 중에서도 특히 “자신”에 방점을 두고,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송금한 돈은 최순실이 사용할 것이지 이 부회장이나 삼성전자가 소비 등 지배, 관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재산국외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위 대법원 2002도7262 판결의 사실 관계를 보면, 이 부회장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위 판결의 피고인들은 국외로 자금을 송금하면서 송금처에 즉시 다시 송금해 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2-3일 내에 국내로 다시 송금됐다. 대법원은 처음부터 해외에서의 사용을 예정하지 않고, 즉시 반입할 목적으로 송금하였다면, 해외로 이동하여 지배ㆍ관리한다는 재산도피의 범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 사건에서 최순실은 삼성전자로부터 송금받은 돈을 국내로 즉시 반입할 의사도 없었고, 독일에서 소비했다. 그런데, 사용 주체가 삼성전자나 이 부회장이 아니라고 해서 과연 법령을 위반하여 국내재산을 해외로 이동하여 해외에서 소비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항소심 판결에 의하면, 신고하지 않고 외국환거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모해서 A는 B가 사용할 돈을 B의 해외계좌로 송금하고, B는 A가 사용할 돈을 A의 해외계좌로 송금해도 모두 재산국외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송금한 돈이 송금자 “자신”이 해외에서 소비할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순실 뇌물'이 왜 재산국외도피가 아닌지 논증 안해

또한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7도3681 판결을 인용해서 당시 행위자가 처하였던 경제적 사정 내지 그 행위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한 경제적 이익의 내용 등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행위의 방법 내지 수단이 은밀하고 탈법적인 것인지 여부, 행위 이후 행위자가 취한 조치 등 여러 사정을 두루 참작하여 재산도피죄 성립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위 대법원 2007도3681 판결의 사안에서 피고인은 외국회사와의 중개거래를 통해 취득한 중개수수료를 지정거래 외국환은행장에게 신고하지 아니한 외국은행계좌로 입금받았다. 이것이 국내에 반입할 재산을 국외에서 은닉한 것인지 문제되었다. 피고인은 현지 영업비용을 원활하게 조달할 의사로 수수료를 외국 은행 계좌로 입급받은 것이었다. 대법원은 명의가 피고인 실명이고, 송장 등 무역관계서류에 기재되어 있어 그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국외재산도피가 아니라고 보았다. 사실관계가 이 부회장 사건과 너무 다른데, 단지 재산도피죄의 성립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에 인용한 것일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은밀하고 탈법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는 뇌물공여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일 뿐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킨다는 범의는 없다고 보았다. 왜 은밀하고 탈법적인 수단이 단지 뇌물공여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일 뿐인지에 대해서는 논증이 없다.

재산국외도피는 이 사건 법정형의 하한을 정하는 매우 중한 범죄다. 그런데 항소심 판결은 이 사건에 왜 인용했는지 의심스러운 대법원 판결을 한 페이지 정도 인용한 다음 구체적인 논증도 없는 판단을 한 페이지 적어 1심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법관은 판결로 말을 한다는데,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한 법관의 말이 충실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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