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피옹챙'으로 불리는 건 로마자 표기법 때문?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2.13 00: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월 9일 제 23회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개막해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디지털 한국의 위상을 아름답게 선보인 개막식 공연과 11년만에 성사된 남북 공동입장으로 특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올림픽과 관련된 명칭이나 용어의 영어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영어 표기가 실제 외국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발음으로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개최지인 평창의 영어표기 Pyeongchang을 외국인들은 주로 [피옹챙]으로 발음한다. 영어에서 y는 우리말로는 잘 표기되지 않는 약간 생소한 발음을 가진 철자다. y가 단어의 맨 앞에 나올 때는 [이-]라는 독립적인 음가를 가진다. 따라서 독립적인 음절로 발음해야 원어민 발음에 더 가깝다.  

캐나다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제임스 하벡이 평창 등 한국 지명을 정확히 발음하는 방법을 유튜브에서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Yes를 우리말로는 [예스]로 표기하지만 사실은 [이에스]에 더 가깝다. you 역시 우리말에서 1음절 발음 [유]가 아니라 [이우] 2음절로 발음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평창'의 '평'을 'Pyeong'으로 표기하면 원어민들은 'Py'와 'eong'을 2음절로 분리해서 [피엉] 혹은 [피옹]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게다가 평창의 '창'을 영어로 chang으로 표기하는 것도 우리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평창올림픽의 주관 방송사 미국 NBC의 거의 모든 중계방송에서 'Pyeongchang'의 'chang'을 미국식 발음 [챙]으로 발음하고 있다. 그 결과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피옹챙'올림픽이 되어버렸다.

같은 '평'인데 Pyeong과 Pyong으로 달리 표기

특이한 점은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리는 용평의 경우 Yongpyeong이 아닌 Yongpyong으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평창의 '평'이나 용평의 '평'은 똑같은데 왜 평창에서는 pyeong이고 용평에서는 pyong일까? 그런 상황이다보니 외국인들이 똑같은 '평'자를 [피엉 pyeong] 혹은 [피옹 pyong] 멋대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하키와 스피드 스케이팅, 컬링 등의 경기가 열리는 강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릉은 우리말 발음 [강능]처럼 영어로는 Gangneung으로 표기된다. 당연히 외국인들은 [갱넝]으로 읽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K-Pop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강남'도 Gangnam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갱냄]이라고 발음한다.

또한 남북 단일팀 이슈 덕에 많이 거론되는 북한의 평양도 Pyongyang으로 표기하고 있다. Pyongyang의 미국식 발음은 [피옹이앵]이 될텐데, 발음이나 철자가 평창과 비슷해서 가끔 외국인들이 골탕을 먹기도 한다. 2014년 아프리카인 한 명이 평창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평양에 착륙한 사고가 있었다. 

케냐 출신의 이 여행객은 결국 북한에 벌금을 내고 중국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한국의 평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평창과 평양의 '평'이란 글자가 평창에선 Pyeong, 평양에선 Pyong으로 표기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예방차원이 아니었을까?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역시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자면 'Soohorang'이 아닌 'Suhorang'이 되어야 맞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자체적인 규제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Soohorang'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 멋대로 발음하는 건 전세계 공통

이쯤 되면 복잡한 로마자 표기법이 올림픽 같은 국제적 행사에서 혼란의 주범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을 우리나라의 표기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인을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똑같은 문제로 골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의 경우, 원래 중국어 발음 [Shànghǎi]에 포함된 성조는 제거되고 [샹]에 가까운 발음이 미국식 발음 [쉥]으로 치환되어 결국 [쉥하이]로 불린다. 태국의 방콕도 마찬가지다. 태국어 บางกอก의 본래 발음은 [방-꼬옥]에 가깝지만 세계인들은 미국식 영어발음 [뱅콕]으로 발음하고 있다. 결국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맞도록 표기법을 아무리 고친들 미국인들이 자기들 멋대로 발음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Shanghai, Bankok, Pyongyang 등에 사용된 철자 -ang을 [앵]이 아니라 [앙]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영어 알파벳보다 한글이 세계지명 더 정확히 표기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 여러 지명이나 이름을 표기하는데 우리말이 영어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노르웨이의 도시 '릴레함메르' Lillehammer의 영어식 발음은 [릴리햄머]이지만 노르웨이어 본토 발음은 [릴러함메르]이다. 영어발음보다 우리말 발음이 훨씬 노르웨이 본토 발음과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도시 Hamburg 역시 본토 독일어 발음은 [함부어크]로서 우리말 표기 '함부르크'가 영어식 발음 [햄버그]보다 좀 더 낫다.

게다가 영어는 같은 철자에 대한 발음의 일관성이 매우 떨어지는 언어다. 영어 단어 but와 put 2개 단어에 사용된 동일한 철자 u의 발음이 [어]와 [우]로 서로 다르다. chance라는 단어의 발음도 미국에선 [챈스], 영국에서 [찬스]로 발음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결국 평창올림픽의 우리 지명을 미국인들이 잘못 발음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하필이면 일관성 없는 발음체계를 가진 미국식 영어가 가장 일반적인 공용어 노릇을 하게 된 탓이라고 할까? 최근에는 영어식 발음을 지나치게 의식해 제정된 우리 로마자 표기법이 오히려 한글 맞춤법 체계를 흔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는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논란을 멈추고 외국인들에게 우리말 발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정확한 한글 발음을 쉽게 가르쳐주는 자료들이 많다. 캐나다의 작가이자 언어학자 제임스 하벡(James Harbeck)은 우리말 지명을 정확히 발음하는 방법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한다. 

야후 스포츠의 Sam Cooper도 역시 한국의 원어민 발음으로 평창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 유튜버로는 Talk To Me In Korean 채널 운영자 선현우 씨의 평창 소개 동영상 등이 있다.

엄정하게 말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취재할 언론과 기자라면 '평창'의 정확한 발음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행사와 방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한글 지명을 발음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평창올림픽 주관방송사인 미국 NBC의 해설자 Joshua Cooper Ramo는 개막식 중계 중에 한일간 역사인식에 대한 망언을 해 한국인들의 공분을 샀다. 곧이어 영국 일간지 The Times 역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보도하며 망언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사건들은 올림픽 개최지 한국에 대한 무관심, 언론인으로서 무책임하고 오만한 그들의 자세가 드러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