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되세요? 내가 하루가 될 수 있을까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2.1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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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 day”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멋진(근사한) 날을 가져라.’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소유하다, 가지다’의 의미를 갖는 ‘have’를 사용한 것이 몹시 어색했다. 알고 보니 ‘have’에는 ‘겪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멋진 하루를 겪어라’ 정도가 될 터이지만, 우리말로 해석할 때 이 말은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정도가 된다.

'뉴스톱에서 영어 사실 확인 담당은 한마디로닷컴의 박기범 강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영어 얘기냐, 직권남용 아니냐?’는 질문과 지적이 나오기 전에 우리말로 넘어가자. 온라인에서 누리편지(이메일)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아래 사진처럼 대부분 ‘좋은 시간 되세요’나 ‘즐거운 하루 되세요’를 사용한다.

 

 

날마다 이런 인사를 수도 없이 받는다. 이웃의 따뜻한 정과 기원과 축복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그러나 마냥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간 되세요’나 ‘하루 되세요’가 좀 어색하기 때문이다. 영어야 뭐 우리말이 아니니 당연히 어색할 수 있지만, 이건 우리말인데도 왜 이렇게 어색할까? 다음 설명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인사말을 듣는 사람이 문장의 주어가 되는 경우, ‘(당신이) 좋은 하루 되세요.’는 주어와 서술어의 의미상 호응이라는 문법적 기준을 적용할 때 적절하지 않은 문장입니다. “(당신이) 좋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당신이) 좋은 하루를 보내십시오.”, “(당신이) 좋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쓰는 것이 알맞습니다.
- 국립국어원 국어생활종합상담실 온라인가나다

 

그렇다. ‘시간 되세요’, ‘하루 되세요’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 되세요’가 도처에 넘쳐난다. 이것을 사용하는 이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지인, 동네 사람, 편의점 아가씨, 연예인, 국회의원, 시장, 군수, 도지사 등등 남녀노소, 거주 지역, 학력, 흙수저, 금수저, 직업, 노사의 구별이 없다.

⓵ 김OO는 2일 자신의 SNS 트위터를 통해 “2018년 새해복많이받으시고 작년보다 노력하며 행복도 더욱 가득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 TV 데일리 2018.01.03.

⓶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결실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OOO 시의장. KJT뉴스 2018.01.01

⓷ OOO 문화체육과장은 6일 “이번 신년음악회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며 새해의 희망과 각오를 다지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파이낸셜뉴스 2018.02.06

덕담이야 언제 들어도 기분 좋고 행복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해 되시길,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등은 앞서 확인한 것처럼 모두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나는 한 해’도 ‘시간’도 ‘하루’도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시간, 오늘, 하루, 한 해가 되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쯤에서 ‘다 아는 얘기를,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한 얘기를 왜 하나?’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다 알 정도로 그렇게 시시한 얘기인데도 모두가 한결같이 ‘너 시간돼, 하루돼!’를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진지하게 한번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떤 이는 영어보다 어렵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그가 진정 한국인이라면 절대 그럴 리 없다. 외국어는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과 강박이 있지만, 한국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좀 틀리면 어때? 다 알아 듣잖아! 뭘 따져? 아마 조금만 더 버티면 이것도 곧 괜찮다고 할 걸!’ 이런 생각과 태도가 우리말의 정확성과 과학성을 훼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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