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어떻게 답할까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8.02.2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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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뜨거운 감자다. 어원이나 의미에서부터 논란이 이어지고, 성별 간 갈등을 부추기는 ‘이념’처럼 변모한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홈페이지 내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지난 5일 완료되면서 21만3219명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아이들이 양성평등을 제대로 알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에선 주기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고 학생뿐만 아닌 선생님들까지도 배우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출처: https://twitter.com/egreycucumber/status/901450766115717122

그러나 이 청원 자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에서 여성 비하적인 용어를 학습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이 높은 반면, 페미니즘 교육이 성소수자를 옹호하기 위한 교육이라든가 여성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페미니즘이 성별을 가르는 이념처럼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청와대는 30일간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청원에 참여하면 답변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답변이 나올지 주목된다. <뉴스톱>이 페미니즘 교육과 관련한 여러 사안들을 살펴봤다.

 

페미니즘 교육, 왜 화두인가?

지난해 학교 현장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화두였다. 7월에는 온라인 영상매체 <닷페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송파구 위례별초등학교의 최현희 교사는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화제가 됐다. 최 교사는 인터뷰에서 학교 운동장을 남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키우는 문제, 페미니즘이 인권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자 최 교사는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과도한 인신공격을 받았다. 페미니즘 교육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보수 성향 학부모단체로부터 파면을 요구당하기도 했다. 최 교사 등 교사 21명이 활동하던 초등학교의 ‘페미니즘 북클럽’도 자진해산해야 했다.

하지만 최 교사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나섰다. 정치권을 비롯해 페미니즘 교육을 지지하는 여성 인권 단체가 최 교사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1일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권미혁 의원을 비롯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누리꾼 모임 우주당, 닷페이스 등은 국회에서 최 교사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 인권단체들은 연합해 ‘#학교에 페미니즘을’ 운동을 시작했고, 시민들과 함께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맨스플레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도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교사를 비롯해 페미니즘 교육을 주장하는 교사들의 이유는 명확하다. 학교 내 성불평등 현상 및 성적 고정관념이 시대착오적으로 공고하고, 여성혐오 등 성차별의 정서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여성위원회가 지난해 5월부터 한 달 가량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남녀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성평등 인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교육 현장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경우가 59.2%를 차지했다.

실례로 ‘앙 기모띠’는 기분이 좋다는 일본어로 일본 포르노 동영상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데, 이를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명한 인터넷 BJ가 유행어처럼 쓰면서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가장 자주 쓰는 말 중의 하나가 됐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도구화하는 포르노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학생들에게서 성평등 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이’, ‘애자(장애인을 비하하는 말)’, ‘느금마(엄마를 비하하는 말)’ 등의 용어가 상대를 비아냥대거나 공격하는 말로 만연하게 쓰이는 현실 역시 아이들에게 성불평등은 물론 소수자를 혐오하는 정서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여성혐오와 성불평등, 학교에서 해결될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자, 교육은 사회의 반영이다. 엄마를 ‘맘충’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멸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학교에서의 ‘느금마’라는 표현으로 변용된다. 각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폭로하고 있는 ‘#미투’ 운동의 근간에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포르노에서 자주 쓰이는 말 ‘앙 기모띠’가 아무렇지 않은 농담으로 쓰이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 환경이 자유로워졌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은 부족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유튜브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무런 제지 없이 흡수한다. 페미니즘 교육만으로 학교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는 그대로인데 학교 현장에서만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 교육 시스템은 사회적 필요도가 높아져 새롭게 실시하는 교육 아젠다를 교육 시수를 채우는 방식으로 형식적으로 소화하는 한계를 지닌다. 일례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교육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자 2016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안전 교육 51시간 실시를 의무화했지만, 실제로는 동영상 단순 시청이나 형식적인 훈련에 그치는 ‘시수 맞추기’, ‘시간 떼우기’식 형식적인 교육으로 유익하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때문에 “(해당 청원이) 단순히 ‘성평등 교육 교과 도입’ ‘1년에 일정시간 성평등 교육 이수’ 식의 단순 해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정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는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한편 페미니즘 교육으로 인해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페미니즘이 성별, 성적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따른 각종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며 반발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양성평등’이라는 정책 용어 대신 ‘성평등’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불발된 상태다.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용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018년부터 5년간 시행할 2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과정 중,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교체하려다 혼용하겠다는 입장으로까지 후퇴했지만 결국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한국기독교연합을 방문해 ‘성평등’이 영어 ‘Gender Equality’를 단순 번역한 것이라 해명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현 정부의 성평등 정책 실현에 대한 빈약한 철학과 의지를 지적하는 여성계 및 시민사회계의 질타도 이어졌다. 올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개헌안 가운데 ‘양성평등’ 조항을 ‘성평등’으로 개정하자는 의견도 여성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분위기다. 젠더 이슈가 그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되어, 표가 생명인 정치권에서 선뜻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난망이기 때문이다.

다시 페미니즘 교육으로 돌아가서, 최현희 교사는 “페미니즘은 인권 교육”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한 인간으로서, 개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법적으로 금지 대상이 아니며(군대 제외, 군형법 제92조 6항이 동성애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된다), 성 소수자에 대한 법률적 권리 보장의 문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립해갈 문제다.

성 소수자들을 비롯해 성별에 따른 차별과 혐오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은 시대적 요구다. 사회는 물론 학교까지 침투해 만연한 성차별과 타인에 대한 혐오의 멸시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청와대의 답변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보수 진영의 표를 의식해 페미니즘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한 채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감수성을 가를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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