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게임에 총기사고 책임을 묻다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3.0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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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2월 미국 전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학내 총기 난사 사고와 관련한 언급에서 영화와 함께 비디오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총기 난사 사고의 배경으로 함께 꼽힌 매체는 영화, 인터넷, 비디오게임으로, 그는 젊은이들이 쉽게 노출되는 이러한 매체들이 지니는 폭력성이 지난 학내 총기 난사 사고의 심리적 배경을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트럼프는 교사들이 총기무장해 총기 사고를 줄이자는 해법도 제시했다.

트럼프 플로리다 총기사고 배후로 비디오게임 지목

사실 이 주장은 이제는 좀 식상한 주장이며, 식상하기에 앞서 이미 논점이 어긋나 있는 이야기다. 그냥 폭력성의 문제가 아닌 총기 난사 사고의 배경으로 게임을 드는 것은 예컨대 어찌나 게임을 많이 하는지 세계 e스포츠 상위를 모조리 휩쓸고 있는 한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제로에 달한다는 점으로부터 이미 논파되는 이야기다. 세계 어디서나 게임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는 매체이지만, 손쉽게 가게에서 총을 살 수 있는 나라에서만 총기 사고가 난다는 것을 굳이 모른척할 때만 나올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트럼프의 바보 같은 이야기에서 총기 부문을 떼면 그나마 좀 이야기 가능한 부분이 남는다. 비디오게임과 폭력성은 정말 어떤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그리고 그 역사도 짧은 게임의 역사에 대어 보면 짧은 편이 아니다. 아직까지 합의된 결론의 도출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양 측의 발표들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당대의 게임을 살피는 데 있어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최초의 폭력성 논란 게임, ‘데스 레이스’

비디오게임이 폭력적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공격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논란의 시작을 만든 게임은 1976년에 출시된 ‘데스 레이스’ 라는 게임이다. 1975년에 개봉한 영화 ‘데스 레이스 2000’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이 게임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게임 구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화면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976년의 아케이드 게임 ‘데스 레이스’의 화면.

2인용으로 제작된 이 게임은 자동차(처럼 생긴) 캐릭터를 조작하여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그렘린’(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부딪혀 공격하면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자동차로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치어 죽이고, 그 죽은 자리에 십자가 모양의 무덤이 생기는 방식은 최초로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을 저널리즘에서 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관조하는 방식의 다른 매체와 달리 공격적인 행동을 간접적으로나마 플레이어가 직접 수행하도록 만드는 게임의 방식은 보수적 관점을 견지하는 여러 매체들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그래픽 환경과 컴퓨팅 하드웨어의 발전에 따라 게임이 묘사하는 폭력적인 장면들의 논란은 향상되는 퀄리티에 비례하면서 상승해 왔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연구의 팽팽한 입장 대립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연구들도 시작되었다. 1986년에 출간된 사라 러시브룩의 “Messages of Video Games: Social Implications” 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카운티 지역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비디오게임이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노출하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조사했다. 폭력, 여성, 전쟁 등의 키워드에 대한 반응 조사의 결과로 게임에 더 많이 노출된 대상이 폭력성에 대해 더 우호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범주에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동시대에 그에 반하는 연구 결과도 나타났다. 1983년 제럴드 집 등의 논문 “Personality Differences Between High and Low Electronic Video Game Users” 는 비디오게임 노출 정도를 구분한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적대감, 사교성, 강박 등 몇 가지 성격 변수와 게임 소비시간 간의 상관관계 조사를 했으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적지 않은 연구들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찬반 양론의 주장을 다져가는 와중에 이들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을 시도해 주목받은 아이오와 주립대 크레이그 앤더슨 교수의 2001년 논문은 기존 연구들의 결과를 다시 종합해 분석하여 게임이 이용자의 공격성을 높이는 주장에 한층 더 힘을 실어 주었다. 찬반에 관한 선행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하는 방식은 각 입장의 강화가 아닌 학계의 전반적인 연구결과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에 주목했기에 유의미한 분석으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진 바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앤더슨의 방법론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2013년 오바마 주도의 게임-폭력성 연관성 연구에도 참여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퍼거슨은 앤더슨의 메타분석을 비판하면서 논문이 주로 발표되는 학술지의 경우 대체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 경우가 실리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게임의 폭력성을 다룰 경우 폭력성의 상관관계가 유의미한 결과 위주로 논문들이 편향됨을 지적하면서 앤더슨의 작업 또한 편향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출처: https://sites.psu.edu/siowfa16/2016/12/02/does-playing-violent-video-games-make-people-violent/

폭력적 게임에 현실 폭력 책임전가 일반적 

아직까지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연구들은 딱 부러지게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공식화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 매체가 과연 폭력성을 유발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게임 외의 다른 변수들을 완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게임과 개인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일은 앞으로도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대답을 잠시 미뤄두고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애초에 게임이라는 매체에 폭력성이 쉽게 달라붙게 되는 배경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의 폭력성 또한 무시못할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잔인하고 섬뜩한 장면을 뛰어난 필력으로 세밀하게 풀어나간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소설들을 읽다보면 섬뜩함이 등골을 타고 흐르기도 하는데, 이럴 때 소설이라는 매체 자체를 가지고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의견은 당대에는 보기 힘들다. 한때 영화에서 폭력 묘사의 수위가 높아지는 흐름을 두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지만 그 때도 폭력적 영화를 가리키는 말들은 많았지만 영화매체 자체의 폭력성을 겨냥한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경우는 게임 매체 자체가 공격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두 가지 생각이 가능한데, 첫 번째는 실제로 게임이 다루는 주제 중 적지 않은 부분들이 공격과 방어라는 상호작용에 가깝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규칙과 논리에 의한 상호작용 중 가장 일상적으로 인식가능한 부분이기에 나타나는 일이지만, 여기서의 공방 논리가 과연 우리가 폭력성, 공격성이라고 부르는 그것과 동일한지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 바깥의 보드게임들인 장기가 전쟁으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것이 폭력적인 놀이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논리화한 공격과 방어의 규칙 자체가 공격적 성향에 영향을 준다는 말에는 수긍이 쉽지 않다.

두 번째 생각은 뉴미디어에 대해 언제나 존재해 왔던 포괄적 공포증이다. 인쇄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대량의 출판이 가능해진 시대에는 책에 대한 마타도어가 존재한 적이 있었다. 지성인은 살롱과 카페에서 끊임없이 토론해야 하는데 그저 골방에서 책만 읽는 이들을 비판하며 독서가 신경쇠약과 두통 등을 유발하는 해로운 매체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시대를 넘어,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단 바 있었고, 만화는 60년대 한국에서는 정병섭 자살사건 등의 소동 끝에 분서 사태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폭력적 게임이 아니라 게임 매체 전반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함께 하는 게임의 폭력성 이야기는 그래서 어느 정도 뉴미디어에 대한 공포증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부지불식간에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찬반논쟁과는 별개로 뉴미디어를 올바로 인식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비단 게임 뿐 아니라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여러 매체들이 초기에 대체로 한번씩 겪어 갔던 일이기도 하다.

게임의 폭력성에 관련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한국의 사례는 단연 MBC의 “게임의 폭력성 실험” 뉴스일 것이다. 2011년 2월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된 이 뉴스에서 기자는 관찰용 카메라를 설치한 뒤 게임을 한창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PC방의 전원을 내려 버린 뒤, 쏟아지는 욕설들을 비춰 주면서 게이머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지금까지도 조롱거리로 회자되는 이 뉴스가 기획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에서 언급한 게임 전체에 대한 폭력성에의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밤새 회사에서 작업하던 PC의 전원이 꺼져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게임이 처한 사회적 위치 탓일 확률이 크다. MBC 뉴스도, 도널드 트럼프도, 그리고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이 죽일 뿐이다”라고 발언한 미국 총기협회 부회장 웨인 라피에르도 모두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만만해 보이는 게임에 선입견을 씌워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게임이 폭력적이냐 아니냐의 논의를 떠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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