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된 실리콘밸리 '오아시스 펍'은 왜 문 닫았나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03.0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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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실리콘밸리 한 맥줏집의 폐업 얘기를 하려 합니다. 고작 맥줏집 한 곳이 폐업한다고 하는데 실리콘밸리 언론들이 비중 있게 보도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30년 경력 샘 화이팅 기자가 맥줏집을 현장 취재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경쟁 신문인 머큐리뉴스도 적지 않은 분량의 기사로 다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맥줏집이 문을 닫는다'며 아쉬워하는 내용입니다.

사정을 들여다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한 가족이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며 60년 동안 운영해온 이 맥줏집은 근처 스탠퍼드대학 학생과 교수, 인근 주민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맥줏집이 급등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오아시스 비어가든 입구 로고

60년 만에 폐업하는 이유는 월세 급등

3월 7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는 공고를 낸 맥줏집은 오아시스 비어가든(The Oasis Beer Garden), 통상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10여 종류의 생맥주와 버거, 피자, 치킨, 샐러드 등을 파는 곳인데요, 버거와 피자가 특히 인기 있습니다. 이곳은 스탠포드 캠퍼스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멘로파크(Menlo Park)라는 도시에 포함되죠. 1958년부터 올해까지 토가스 씨 가족(Tougas Family)이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며 운영해온 곳입니다.

이 맥줏집 정문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폐업 공지문이 붙은 건 지난 2월 21일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공지문 내용을 핵심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건물 주인과 수 개월 동안 월세 협상을 해왔는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문을 닫기로 어렵게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안타깝지만 친애하는 멘로파크와 스탠포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게 됐다.”

건물주가 요구하는 금액 만큼 월세를 올려주기 어려워 장사를 그만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월세를 올려 달라고 했는지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진 않았습니다. 60년 동안 운영해온 가게 문을 닫기로 했으니 상당한 금액 인상을 요구했을 것으로만 짐작합니다. 건물주는 실리콘밸리 중심부 대로변에 있는 이 맥줏집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땅과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유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주는 일단 새롭게 맥줏집을 운영할 세입자를 찾는다고 얘기하는데, 건물을 팔거나 2층 짜리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상업용 빌딩을 짓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많습니다.

세입자인 토가스 씨 가족은 대를 이어 실리콘밸리 여러 지역에서 맥줏집을 운영해 왔는데요, 2014년 6월엔 이번에 문을 닫는 오아시스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던 보드워크(The Boardwalk)라는 맥줏집 문을 닫았습니다. 건물주가 해당 건물을 팔았는데 새 주인이 건물을 허물고 빌딩을 짓기로 하면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죠. 지역언론 보도를 보면, 토가스 씨 가족은 이곳에서 1975년부터 38년 동안 영업을 했습니다. 장사가 제법 잘 됐다고 하는데요, 건물을 사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38년 된 맥줏집 문을 닫은 지 4년도 안 돼 이번엔 60년 된 맥줏집 문을 닫게 됐습니다.

오아시스 비어가든 내부 전경

실리콘밸리 너드(nerd)들이 사랑한 맥줏집

이번에 문 닫는 맥줏집은 개인용 컴퓨터 초창기였던 1970년대 중반 컴퓨터를 취미 삼아 조립하고 만들던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홈브루컴퓨터클럽(Homebrew Computer Club) 얘기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온 존 마코프(John Markoff)는 <What The Dormouse Said>란 책에서 홈브루컴퓨터클럽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만든 실리콘밸리 컴퓨터 관련 회사가 적어도 23개는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클럽이 실리콘밸리에서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발전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합니다.

1975년 3월 탄생한 홈브루컴퓨터클럽에서 활동한 회원들 중엔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스티브 잡스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1976년 4월 애플을 창업했는데요, 이 클럽에서 개인용 컴퓨터 동호인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창업을 한 셈입니다. 워즈니악은 자서전  <스티브 워즈니악> 에서 애플컴퓨터Ⅰ, Ⅱ를 만든 뒤 홈브루컴퓨터클럽에서 발표를 했다고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모임 장소는 주로 물리학 연구기관인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였습니다. 이 클럽의 핵심 회원으로 컴퓨터 관련 회사들을 창업한 기업가이자 컴퓨터역사박물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렌 슈스텍(Len Shustek)은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모임이 끝나면 한 무리의 참가자들이 멘로파크의 오아시스 비어가든에 뭉쳐서 토론을 이어갔다고 회고합니다.

폐업 소식에 온라인 청원, 15000명 서명

나무 탁자와 의자가 있는 허름한 막걸리집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주위에 있는 스탠포드대와 멘로파크, 팰로앨토 등을 무대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했습니다. 나무 탁자와 의자엔 스탠포드 학생들의 이름, 이니셜, 학번(입학연도가 아닌 졸업연도)이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출출할 때 학교 근처 이 맥줏집을 찾아 버거와 피자, 맥주를 마시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던 학생들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풋볼팀을 비롯해 스탠포드대 운동부 포스터도 걸려 있습니다.

오아시스 비어가든 탁자에 누군가 새겨넣은 이니셜.

이곳은 또 스탠포드 캠퍼스에서 주기적으로 공부모임을 갖거나 세미나를 여는 사람들의 뒤풀이 장소로 사랑 받아왔습니다. 스탠포드 캠퍼스에서 테니스, 축구, 야구 등의 경기를 하는 동호인들도 운동이 끝나면 이곳을 찾아 가볍게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떨어왔죠.

폐업 공지가 나오자 앨리슨이라는 주민이 온라인 청원을 올린 것도 사랑방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듣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와서 버거를 먹었고, 커서는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맥줏집의 TV 화면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 경기를 보곤 했다고 합니다. 

청원이 올라온 지 10일이 지난 3월 2일 현재 1만5000명 가량 서명을 했습니다. 자신이 캘리포니아에  산다고 밝힌 서명자가 7000명을 넘었는데요, 캘리포니아 밖에 살면서 서명한 사람들도 이 맥줏집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온라인 청원이 법적 효력을 갖는 건 아니라서 아쉬움은 전할 수 있겠지만 폐업을 되돌릴 순 없을 겁니다.

실리콘밸리는 '거대한 공사장'

굳이 비유하자면 맥줏집 오아시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찾아보기 드문 무려 60년이나 된 노포(老鋪)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오아시스의 폐업은 낡은 건물에 세를 들어 운영해온 이런 오래된 상점들이 급등하는 월세와 재건축 열기 속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조금 과장하면 요즘 실리콘밸리 일대는 거대한 공사장 같습니다. 주택을 허물고 콘도(한국의 아파트 개념)를 지어 분양하는 곳도 많고, 오래된 저층상가를 최신식 고층상가로 재건축을 하는 현장도 어딜 가나 눈에 띌 정도입니다. 한인 상점들이 모여 있는 샌타클라라 코리아타운(로스앤젤레스와 비교할 정도는 아닌 미니 코리아타운)에서도 제법 큰 규모의 쇼핑몰을 헐고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실리콘밸리 호황이 불러온 변화입니다. 고임금 직장인(주로 엔지니어)이 밀려 들면서 이 지역의 상업용 건물 월세부터 주택과 아파트 월세, 그리고 건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물론 번화한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정도가 훨씬 심합니다.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거용 집값과 월세만 살펴보겠습니다.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와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사이에 써니베일(Sunnyvale,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양촌리쯤 되겠습니다)이란 도시가 있는데요, 2013년 1월 70만 달러 수준이었던 이 지역의 한 개인주택 가격은 부동산정보사이트 Zillow.com 같은 곳에서 확인하면 2배 이상 뛴 걸로 나옵니다. 월세의 경우는 어떨까요. 과거 이 지역에서 3년 동안 살았었는데요, 그 때 살았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아파트' 월세는 2012년 12월 6개월 월세 계약을 할 땐 1900달러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3000달러 수준입니다. 동네마다 집값 월세 인상 비율은 다르지만 대략적인 움직임은 이렇습니다.

오아시스 비어가든 페이스북에 올려진 60년만의 이별 아쉬움을 담은 포스터. 3월 7일(현지일자)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는다.

집값 월세가 급등한 건 다른 수치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현지 언론이 실리콘밸리의 경쟁력과 혁신을 연구하는 단체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게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2010-2016년 실리콘밸리의 일자리는 29% 증가한 반면 주택 숫자는 4% 증가했다고 합니다.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공급은 크게 부족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는 사이 실리콘밸리 지역 집값은 중위가격(median value)이 100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지만 집값 월세 때문에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평균 통근시간이 교통지옥으로 악명 높은 뉴욕시(74분)에 이어 2위(72분)로 나타난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선 '인재가 몰리고 돈이 몰리지만 주민들은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푸념이 들려옵니다. 추억이 깃든 오래된 공간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월세를 감당 못하는 오래된 세입자는 밀려나고 낡은 건물은 최신 빌딩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맥줏집 오아시스처럼 말입니다.

폐업 공지 이후 오아시스에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고자, 옛 추억을 되새기고자 찾아오는 손님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점심 때에도 주차할 공간을 찾기 힘들 만큼 붐빌 정도입니다. 단골 친구들이 하는 말이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어 한참 서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5년 동안 이 맥줏집의 단골이었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7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이 맥줏집은 26년 근무했다는 종업원의 친근한 얼굴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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