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머리말', 사이시옷 쓰임새가 다른 이유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3.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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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라디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간단히 ‘「배캠」이라고도 하는데, 1990년 방송을 시작해서 올해로 28년째로 진행자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배철수 씨다. 각각 12년, 18년씩 장기 집권했던 이승만, 박정희를 뛰어 넘어 28년이라는 최장기 진행의 역사를 쓰고 있지만 청취자들로부터 하야하라는 소리가 없는 것을 보면 위대한 디제이임에 틀림없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는 본디 가수다. 1978년 해변가요제에서 그룹사운드 ‘활주로’로 데뷔했다. 40년이나 지났지만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던 깡마른 더벅머리 총각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79년 송골매를 결성했고, 홍익대학교 그룹사운드 ‘열대어’ 출신의 구창모 씨를 보컬로 영입하여 ‘모두 다 사랑하리(구창모)’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구창모)’, 빗물(배철수) 등 수많은 히트곡을 제조했다.

송골매 5집 앨범 표지.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송골매 해산 후에 배캠의 디제이가 되었고,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어 어느덧 60대가 되었지만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여전히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콘서트 7080세대’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탈춤’, ‘세상만사’, ‘하늘나라 우리 님’, ‘새가 되어 날으리’, ‘모여라’ 등을 잘 기억할 테지만, 역시 불후의 명곡은 빗물 아닐까?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꿈속이라도

따스한 불 가에서 쉬어 가소서

가사 첫머리의 ‘돌아선’이 눈에 들어 온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른 분도 있을 것이고,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남자다운 저음에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귓전을 감도는 그의 목소리를 떠올린 분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익숙한 빗물은 ‘비’와 ‘물’이 만나 하나가 된 합성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물’이라고 쓰지 않을 것이다.

비와 물이 만나 ‘빗물’이 되었는데, 슬그머니 꼽사리낀 ‘사이시옷 (ㅅ)’의 존재에 대해 그 누구도 낯설어 하거나 의심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대다수 사이시옷에 대해 어색해 하거나 불편해 하는 태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같은 사이시옷인데 어떤 경우는 공기나 바람처럼 자연스럽고 어떤 경우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건 것처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이유는 무엇인지 한글맞춤법 제30항 1의 (2)를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2)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것

빗물은 순우리말 ‘비’와 ‘물’이 만난 합성어이고, 뒷말 ‘물’의 첫소리가 ‘ㅁ’이어서 비와 물 사이에 ‘ㄴ’ 소리가 덧나는 것이다.

  • 비 + 물 ⇒ [빈물] ⇒ 빗물

빗물을 발음할 때, 설명처럼 ‘ㄴ’소리가 덧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맛비’ 같은 낱말은 [장마삐/장맏삐]가 올바른 발음이지만, [장마비]로 발음하는 사람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서 서로 자기네가 맞는다고 티격태격한다. 이에 비하면 빗물은 온 국민이 [빈물]로 하나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쾌하다. 이제까지 [비물]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빗물처럼 사이시옷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낱말들은 다음과 같다.

  • 메 + 나물 ⇒ [멘나물] ⇒ 멧나물
  • 아래 + 니 ⇒ [아랜니] ⇒ 아랫니
  • 터 + 마당 ⇒ [턴마당] ⇒ 텃마당
  • 뒤 + 머리 ⇒ [뒨머리] ⇒ 뒷머리

멧나물과 아랫니는 뒷말 첫소리가 ‘ㄴ’이고, 텃마당과 뒷머리는 뒷말 첫소리가 ‘ㅁ’이다. 빗물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눈에도 귀에도 익숙하다. 멧나물을 [메나물]로, 아랫니를 [아래이]로, 텃마당을 [터마당]으로, 아랫마을을 [아래마을]로, 뒷머리를 [뒤머리]로, 잇몸을 [이몸]으로, 깻묵을 [깨묵]으로, 냇물을 [내물]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보기에서 빠졌지만, ‘윗니’와 ‘윗마을’ 등도 형태상 동일하다. 

그러면 머리말이 맞을까, 머릿말이 맞을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머리말의 표준발음은 [머린말]이 아닌 [머리말]이므로 사이시옷을 받치지 않고 '머리말'로 적는다. ‘말도 많고 사연도 많고 탈도 많은’ 사이시옷인데,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날 때 사이시옷이 들어간다”는 한글맞춤법 제30항 1의 (2)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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