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라고 다 같은 미투운동이 아니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1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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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룸 인터뷰 로 시작돼 한국을 뒤흔들 것 같았던 미투운동이 조금 다른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안희정 전 도지사가 수행비서를 성폭행했다’라는 폭로를 기점으로 문화계를 거쳐 정치권으로 거침없이 확산될 것 같던 미투운동이 몇몇 정치인들에 대한 폭로가 논쟁으로 번지면서 한국의 미투운동이 변질됐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미투운동과 관련한 팩트를 정리했다.

 

1.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미국에서 시작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MeToo)는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시작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1997년 타라나 버크는 성학대를 겪은 13세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그것이 미투 운동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타라나 버크는 성범죄에 특히 취약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 간의 공감을 통해 연대 의식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한 단체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SNS에서 ‘Me Too’라는 문구를 쓰도록 제안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미투 운동의 폭발적인 확산 계기가 된 것은 미국 영화계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폭력 스캔들이다. 2017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가 기사를 통해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혐의를 폭로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지난 30여 년 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여배우들과 직원들에게 성추행과 성폭력 등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7년 10월 15일 배우 알리사 밀라노(Alyssa Milano)가 트위터를 통해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자고 제안하면서 빠르게 확산했다.

제안 직후 많은 사람들이 SNS에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고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연대 의지를 밝혔다. 하루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뒤따랐으며 페이스북에만 처음 24시간 동안 약 1200만 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유명 배우들을 시작으로 문화계와 언론계, 정계, 재계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례를 고발했다. 전 세계 80개 이상 국가에서 미투 해시태그를 통한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으며, 특히 사회 각 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의 심각성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2. 한국은 2016년 문화예술계 성추문 폭로 사건이 시작

미국에서 타라나 버크가 시작한 미투운동이 배우 알리사 밀라노로 인해 폭발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국내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기 전인 2016년 문화예술계의 성추문에 대한 폭로가 이어진 적이 있었다. 김현 시인이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문단 내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폭로하자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SNS에 ‘#문단_내_성폭력’해시테크와 함께 여성문인 지망생들과 출판 관계자들의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소설가 박범신, 시인 박진성, 배용재, 황병승, 김요일 등이 성추문과 성폭력 혹은 성폭행 추문에 이름이 올랐고 당사자들이 공개 사과 후 절필을 선언하거나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문단 뿐 아니라 미술, 인디음악, 만화계와 한예종, 홍익대 미대 등 문화예술계 여러 분야에서 폭로가 이어졌다. (<PD수첩> 문화예술계 성추문 파문, 폭로는 시작됐다)

 

3. 폭로대상은 권력형 성폭력

‘권력형 성범죄’란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저지르는 성폭력이다. 법적으로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나 추행이 이에 해당된다.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가해자의 조직 내에서의 우월적 지위나 권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는 폭로에 따른 부담과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 어려워하고 있다

 

4. 미투운동으로 43명 유명인이 수사망

현재까지 미투를 통해 고발된 성폭력들은 대부분 성폭행, 성추행 등 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범죄행위다. 지난 13일 경찰청은 “미투 운동과 관련해 현재까지 43명의 유명인을 수사망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6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정식 수사를 받고 있고, 10명은 범죄 혐의를 확인하는 내사 단계, 나머지 26명은 내사 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상황이다. 사망한 피의자 1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3월 2일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는 미투 가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구속됐다. 2007~2012년 사이 미성년자 2명을 수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5. 미투폭로가 수사로 이어지기 쉽지 않아

주로 SNS를 통해 진행되는 미투 운동은 오래전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기억과 진술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에 필요한 구체적 물증이 부족해 혐의 입증이 어렵다. 또 대학이나 병원, 기업체, 언론계, 국회 등에서 폭로된 사례들은 폭로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익명인 경우가 많아 수사망에 올리기조차 어렵다. 주로 일대일로 은밀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특성상 법적인 판단 단계에 가서도 구체적인 협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무고’ 등의 법조항 때문에 피해자들이 수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6. 미투운동 지지여론 압도적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가 있은 뒤 사흘 후인 2월 2일 여론 조사에서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여론이 반대하는 여론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전국 성인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미투 운동에 대한 입장을 조사한 결과 '지지한다'는 응답이 74.8%, '반대한다'는 응답은 13.1%로 각각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 달 후인 지난 3월 초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시장조사기관 두잇서베이와 함께 국내 성인남녀 3914명을 대상으로 ‘미투운동’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미투 운동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또 ‘미투 운동이 성범죄ㆍ성폭행 피해 예방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8.8%가 ‘그렇다’고 답했다.

 

7. 미투운동 변질과 악용가능성 우려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공감과 연대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필연적으로 ‘폭로’라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폭로’는 진실 이외에 과장, 왜곡 심지어 거짓까지 섞여 정확한 검증이 없으면 ‘마녀사냥’ 등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의 미투운동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게 된 것은 유명인들이 자신을 드러내면서부터였다. 유명인들의 실화는 큰 파급력을 가졌고 그로 인해 사회 운동으로 커지면서 퍼지면서 일반인들도 실명을 공개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의 미투운동은 ‘조직을 우선시하고, 몇 명 거치면 아는 사람’이라는 한국의 사회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알려지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기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은 익명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이를 이용한 거짓 폭로와 조작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방송인 김어준 씨에세 성추행을 당했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파장이 커지자 ‘장난이었다’며 삭제한 사례도 있었다.

미국에서처럼 피해자 신분 노출, 가해자 가족에 대한 지나친 비난 등 2차 가해도 미투운동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투운동이 남성과 여성보수와 진보의 진영대결 논리로 이용되기도 한다. 앞서 인쿠루트와 두잇서베이의 여론조사에서도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투운동’과 관련해 허위 사실 유포나 정치적 이용 등의 악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3.4% ‘그렇다’(매우 그렇다 13.4%, 약간 그렇다 40%)고 답했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8.9%, ‘별로 그렇지 않다’는 3.7%에 그쳤다.

 

8. 최근 논란에 휩싸인 한국의 미투 폭로

현재 논란 혹은 수사가 진행 중인 한국의 미투 관련 사건 가운데 파급력이 큰 사건들을 표로 정리했다. 성폭력을 성폭행과 성추행으로 구분했고, 가해자의 인정여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관계 여부, 폭로형태, 피해자 실명 공개 등으로 구분했다.

미투의 특징을 '권력형 성폭력'과 '실명공개'로 본다면 미투운동으로 구분짓기 어려운 사건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언론 인터뷰를 활용한 정치인 성추행 익명 폭로가 늘고 있는데 초반 미투운동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미투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이혼한 아내가 이혼 당시 내연 관계의 여자가 있었다고 폭로한 내용이며 민주당원이 엮여 있는 '정치스캔들'이자 '불륜' 논란이다. 민병두 의원의 경우는 희말라야 여행 중 알게 된 동갑내기 중소기업 사업가와 노래방에서의 신체접촉이 주 내용이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의해 알려졌는데 보도당시부터 미투운동에 해당되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됐다. 민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하면서 뉴스타파 후원을 끊겠다는 후원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정봉주 의원의 경우 본인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BBK 허위사실 유포로 1년형이 확정되어 입감을 사흘 앞두고 본인이 알고 지내던 대졸 지지여성에게 키스를 하려했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권력형 성추행'인지 여부를 놓고 사람들간에 이견이 있다. 

최근 미투폭로는 언론이 전면에 나서면서 정치인 가해자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나온다. 언론이 미투운동 분위기를 등에 업고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없이 폭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실명공개가 미투운동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폭로를 한 피해자에 대한 실명공개 요구가 커지는 것도 최근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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