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가 게임 캐릭터로 '키우기 취미'의 전환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3.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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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모바일 게임의 오픈채팅방에서 있었던 사건이 각종 유머 게시판을 통해 널리 회자된 사건이 있었다. 게임의 이름은 ‘돌 키우기’ 로, 별다를 게 없이 게임 속의 돌을 클릭하면서 키워 가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돌 키우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모이는 오픈채팅방에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유머로 흘러간다. 들어온 이는 무려 수석을 취미로 하는 ‘아재’ 였다.

돌키우기 채팅방에 난입한 수석애호가의 이야기

수석애호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키우는’ 돌들의 사진을 공유했고, 어디들 사시냐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모바일 클리커 게임 유저들은 금방 사태를 파악했고, “아저씨, 여기는 돌키우기 게임 채팅방이에요!”를 외쳤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수석 애호가는 그러나 나가기 버튼도 찾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마지막 멘트로 두어 세대는 훌쩍 지난 유행어, “대머리 깎아라!”를 외치면서 유머 에피소드의 대결말을 만들어 냈다.

유머게시판 등에서 소소한 웃음을 안겼던, 돌키우기 채팅방의 수석애호가 난입 사건은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조금 더 흥미로운 관점들을 내포한다.

얼핏 보면 최근의 트렌드를 잘 이해하지 못한 아재의 해프닝으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왜 아재가 하필 돌키우기 게임이라는 방에 찾아오게 되었나를 좀더 생각해 본다. 아마도 아재는 돌을 키운다는 게임의 제목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클리커 게임(단순한 클릭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 주목적인 게임)의 키우기가 아닌, 수석을 모으고 감상하며 보살핀다는 은유로서의 키우기로 이해했을 것이다.

모바일 게임의 키우기 트렌드와 수집, 관리형 취미의 공통점

키우기. 요즘 한국 모바일 게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XXX키우기’ 류의 게임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임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게임의 핵심인 규칙은 단순하며, 그래픽이나 사운드 등도 조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애호가들이 논하는 조건으로는 사실 게임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힘든 이들 키우기 류는 그러나 비단 키우기에만 머물러있는 게임의 방식은 아니다. 이른바 메이저 게임사들이 뽑아내는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거대 신작들도 마찬가지로 키우기 요소에 게임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복잡한 규칙과 깊은 컨트롤 대신 플레이어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꾸미고,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하며 추가 활동으로 번 골드를 이용해 더 좋은 장비를 구매하고 장착시키는 것이 게임의 핵심에 자리잡은 많은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들은 사실상 확장형 키우기라고 불러도 큰 문제가 없을 형태를 유지한다. 게임의 핵심인 규칙과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소형 게임사들의 키우키 클리커 게임과 대형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들은 별 차이를 드러내기 어렵다.

분재, 수석과 키우기 게임은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가꾸고 키운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지금의 모바일 게임 주류에 흐르는 기류는 고전적인 취미의 일종인 수집과 감상이라는 카테고리와 유사점을 갖는다. 앞서 등장한 수석 모으기, 난초 등의 화초 키우기, 조금은 더 나이 있는 세대의 분재 가꾸기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관심 – 클릭, 현질, 혹은 간단한 명령 조작 버튼 – 을 통해 성장을 시작하며, 알아서 성장하다가도 자동사냥권을 다 쓰거나 에너지가 떨어지는 등의 상황에는 플레이어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비록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주기적으로 게임 캐릭터를 쳐다 봐 주고 돌봐줘야 하는 것이다.

수석이나 분재 등의 취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동과 이는 매우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정원 가꾸기를 설명할 때 영상은 항상 전정가위를 들고 가지치는 인물을 보여준다. 화초는 때에 맞춰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야 하며, 햇빛도 그때그때 쬐어 줘야 하는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키우기 게임과 수집형 취미의 대상들은 모두 직접적인 상호작용까지는 아닌, 말그대로 돌봄 수준의 손길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닮아 있다.

모바일에서 유행중인 수많은 키우기 게임. 수집관리형 취미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키우기형 게임은 수집관리형 취미의 대체재로 기능한다

게임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별반 감흥이나 재미를 주지 못하는 현재의 키우기 중심 모바일 게임들이 매출의 상위권을 휩쓰는 현상은 그래서 조금 게임 바깥의 상상력을 동원해 해석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회사 부장님 책상 한 켠을 차지하던 난초는 스마트폰 속 캐릭터로 대체되었다. 떄맞춰 물 주고 영양제도 사 오던 고즈넉한 취미의 영역은 이제 늘상 충전 잭을 연결한 채로 떄마다 자동사냥 명령 버튼을 눌러줘야 하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로 변화했다.

딱히 게임적으로는 도대체 무슨 재미일지 모르겠는, 자동사냥 시작 버튼을 눌러 놓고 알아서 캐릭터들이 뭔가 하고 있는 걸 구경하는 유저들, 그 와중에 괜찮은 아이템이라도 줍게 되었을 때의 환희와 난초가 꽃을 피웠다며 즐거워하는 애호가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맥락은 아닐 것이다. 전통적 의미로서의 게임이 갖는 가치와 의미가 휘발된 지금의 한국 모바일게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로서, “키우기형 게임은 수집관리형 취미의 대체재로 기능한다”는 가정은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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