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없는 'FA자격 재취득'은 어디서 시작됐나?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03.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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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좌익수 김현수, 롯데 중견수 민병헌, 삼성 포수 강민호.

모두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하고 올해 프로야구에서 새 소속팀에서 뛰는 선수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민병헌은 두산, 강민호는 롯데에서 각각 이적했다.

왼쪽부터 LG 김현수, 롯데 민병헌, 삼성 강민호

이 가운데 강민호는 2013년 시즌 뒤에 이어 두 번째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 164조는 FA 자격 재취득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강민호는 이 조항에 따라 롯데와 2014~2017년 4년 계약이 끝난 뒤 다시 FA자격을 얻었다. 반면 강민호와 같은 2014년 FA인 박정진은 한화와 2년 계약을 했다. 2015년 시즌이 끝난 뒤엔 다시 이적의 자유가 없는 신분이 돼 소속 구단 한화와만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계약 기간의 길이와 관계없이 FA 자격 재취득엔 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햇수로 4년이 아니라 일정 조건을 충족한 4년이다.

하지만 2016년 FA 김현수는 볼티모어에서 두 시즌만 뛰고도 LG와 FA 계약을 아무런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의 FA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FA 선수는 계약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자격 재취득 여부는 오로지 선수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프로야구의 대부분 제도가 그렇듯 KBO리그의 FA 규정도 메이저리그를 연원으로 한다. FA로 선수를 잃은 구단에 대한 보상도 마찬가지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FA 보상은 아마추어 드래프트 지명권이지만1982~1985년엔 ‘보상 드래프트’라는 제도가 있었다. KBO리그의 선수 보상제도와 비슷하지만, A구단에 FA 선수를 잃은 B구단은 C나 D구단의 비보호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는 게 차이였다.

FA 자격 재취득 규정 일본프로야구에서 들여와

하지만 FA 자격 재취득에 대한 규정은 메이저리그에서 존재해 본 적이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FA 제도는1976년 탄생했다. 구단주들은 FA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1981년 시즌을 앞두고 직장폐쇄까지 감행했다. 파업에 대비해 로이드 보험사와 1경기 취소당 1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했다. 보상 규정 강화가 구단주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FA 자격 재취득 관련 내용은 없었다.

KBO규약 164조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일본프로야구(NPB) 프리에이전트규약 5조는 FA 자격을 얻은 뒤 NPB 구단 소속으로 4시즌을 뛴 선수는 다시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 전직 KBO 관계자는 “1998년 12월 KBO 이사회에서 FA 제도 도입이 의결됐다. 관련 규정은 NPB 규약을 대부분 따랐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든, 일본프로야구든, KBO리그든 구단은 선수의 자유로운 이적을 선호하지 않는다. 구단이 소속 선수와 독점 계약할 수 있다면 연봉은 낮아진다. 반대로 선수가 자유 시장에 나오면 몸값은 높아진다. FA 자격 재취득은 선수의 이적권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구단 쪽에 유리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규약에는 이런 개념이 없고, NPB과 이를 답습한 KBO에는 있다.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FA 제도의 성립은 보류권의 소멸 내지 약화와 궤를 같이 한다. 보류권은 구단의 선수에 대한 독점 계약권이다. 이 권리는 선수에게 종신 적용된다. 선수는 은퇴하더라도 복귀는 반드시 원 소속 구단으로만 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종신 독점계약권인 '보류권' 1976년 없애

메이저리그에서 보류권은 1879년 처음 생겼다. 선수들은 이에 맞서 100년 가까운 투쟁을 벌였다. 오랜 갈등은 1976년 메이저리그 노사가 FA 제도 도입에 합의하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선수들은 6년까지는 구단의 보류권을 인정하는 대신, 그 기간이 지나면 자유계약 신분이 될 권리를 얻었다. 선수에 대한 종신 독점계약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메이저리그 노사관계에선 FA 자격 재취득 조건이라는 개념도 존재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해방노예 출신 자유시민에게 노예 신분 회귀를 전제로 한 자격 심사를 하는 꼴이다. 뉴욕 메츠 프런트 출신 야구 해설가인 대니얼 김은 “FA 자격 재취득에 4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는 메이저리그 구단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지금의 FA 제도는 1993년 도입됐다. 노동조합인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설립된 해는 1984년. 1978년 후생성이 참의원 법무위원회 질의에서 프로야구 선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뒤 6년이 지나 비로소 노조 설립이 가능했다.

다시 9년이 지나서야 구단 측과 FA 제도 도입에 합의할 수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노조의 교섭력은 구단 측에 비해 미약하다. FA 규약에 메이저리그에는 없는 자격 재취득 관련 조항이 삽입된 데는 교섭력 격차가 영향을 미쳤다.

KBO 이사회는 지금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설립 전에 이미 FA 제도 도입을 승인했다. 보류권 등 야구규약 여러 조항의 잠재적 위법 가능성(특히 공정거래법)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거액을 지불하더라도 스타 선수를 영입해 우승을 노렸던 부유한 구단들의 의사가 크게 작용했다. FA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선수 단체의 의견을 반영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일본 프로야구에서 FA 자격 재취득 조항은 노조의 교섭력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례 존중’이다. 이견의 소지는 있지만 최초로 FA 제도가 만들어진 프로야구리그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NPB다.

일본야구 '10년선수제도'가 FA 제도의 시작 

2차 대전 종전 후인 1947년, 일본프로야구에는 ‘10년 선수 제도’가 만들어졌다. 10년 동안 한 구단에 소속돼 프랜차이스 스타로 활약한 선수에게 이적의 자유를 주도록 했다. 일정 연한을 채운 선수에게 이적의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현행 FA제도와 본질적으로 같다.

1947년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수장인 연합군최고사령부(GHQ)가 일본을 지배하던 시절이다. 군국주의가 해체되고 미국식 자유주의가 일본 사회에 접목됐다. NPB의 현행 야구협약도 GHQ 경제과학국장이던 윌리엄 머컷 소령의 권유에 따라 1951년 메이저리그 제도를 거의 베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 메이저리그에서도 없던 FA제도가 일본야구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임의단체로 존재하던 일본야구선수회와 구단주들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10년 선수’는 자격 취득 뒤 계약에서 사이닝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선수 동의 없는 트레이드는 불가능했다. 원하는 지역에서 은퇴 경기를 열어 수익금을 가져갈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리고 10년 선수가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원소속 구단과 재계약하면 3년 뒤엔 다시 자유계약 신분이 된다. 지금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FA 자격 재취득 기한 4년의 연원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1974년 폐지되기 전까지 ‘10년 선수’는 모두 14명 나왔다. 마지막 14번째 선수는 재일동포 출신 400승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다. 가네다는 1950년 고쿠데스 스왈로스에 데뷔한 뒤 1964년까지 15년 동안 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1959년 ‘10년 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보너스를 받고 팀에 잔류했다. 하지만 1964년 시즌을 끝으로 고쿠데쓰 구단이 후지TV와 산케이신문에 매각되자 남아 있던 이적 권리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쿠데쓰 시절 ‘교진 킬러’로 유명했던 가네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은퇴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1947년 일본 프로야구의 ‘10년 선수’는 오랜 팀 공헌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목돈을 쥐어주는 보너스를 지급한 게 대표적이다. 1976년 메이저리그 FA 제도는 노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맺은 단체협약(CBA)에서 명문화됐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 1993년에 부활한 FA제도는 선수회의 ‘요구’를 NPB에서 ‘수용’한 형식이었다. 한국 프로야구는 선수 조직도 공식화된 요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면 시혜적이다. 그래서 FA 권리에 대한 제약은 미국보다 일본 야구가, 일본보다 한국 야구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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