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ㆍ불만 파고든 소수 강경파, 의협을 접수하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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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포털사이트 주요 검색어에 ‘최대집’이라는 이름이 올랐다. 지난 23일 새로 선출된 대한의사협회 제40대 회장이다. 화제가 된 이유는 최대집 신임회장의 이력 때문이었다. 최 신임회장은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현 상임대표로 ‘문재인 케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친박단체나 극우단체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박근혜 무죄‧석방’, ‘서북청년단 정신 계승’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의사들은 왜 극우파 최대집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했을까? 팩트를 통해 최대집 당선과정을 재구성했다.

 

① 회원 중 3분의 1만 투표자격...전체 대비 5.2% 득표

지난 23일 실시된 제40대 의협회장 선거 개표 결과, 총 4만4012명의 유권자 가운데 2만1547명이 투표(전자투표 2만656명, 우편투표 891명)에 참여해 전체 투표율 48.96%를 기록했다. 최대집 후보는 유효표 2만1547표 중 6392표를 얻어 득표율 29.67%로 당선됐다. 최 후보에 이어 김숙희 후보 4416표(20.49%), 임수흠 후보 3008표(13.96%), 이용민 후보 2965표(13.76%), 추무진 후보 2398표(11.13%), 기동훈 후보 2359표(10.95%) 순으로 득표했다.

의사협회 공지에 따르면 신고회원수는 12만1880명, 선거인 수는 5만2510명, 이 가운데 실제로 전자/우편투표가 가능한다고 확인된 선거인수는 4만4012명였다. 의협 신고회원 가운데 14만1000원(대위급 이하 군의관/공중보건의)~37만원(개업회원)의 연간회비를 납부한 경우만 투표 참여가 가능하다. 의협은 의료법상 규정된 법정단체로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이면 자동으로 가입된다. 회비납부는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번 40대 회장 선거인 수는 제39대 회장 선거의 4만4414명에 비해 8101명이 늘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는 회원 8498명을 제외한 4만4012명을 최종 투표 가능인원으로 확정했다. 결국 의협 신고회원 12만1880명 가운데 36%만이 이번 선거에 투표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지난번에 비해 투표율이 높은 편이다. 지난 39대 회장 선거의 투표자는 1만3780명(우편투표 7841명, 전자투표 5931명)으로 투표율은 31.0%였다. 지난 2001년 의협회장 직선제 도입 이후 치러진 7차례 선거 중, 투표자 수 2만 명을 넘긴 경우는 2001년 제32대와 2007년 제35대 선거,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이번 40대 회장 선거의 투표율이 높아진 배경은, 과거와 달리 우편투표를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는 전자투표 방식이 자동적으로 적용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 후보의 득표율은 선거인 수로 보면 약 14.5%, 총 회원 수에서는 약 5.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실 최대집 회장의 선출 전까지 의협회장 선거는 일반은 물론 의료계에서도 관심이 높지 않았다. 의료전문매체인 메디컬옵저버는 이번 선거에 대해 “이번 회장 선거가 좀처럼 이목을 끌지 못하면서 과거처럼 저조한 투표율을 답습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의료계 일각에서는 선거 출마 후보들에 대한 이력이나 공약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는 등 무관심한 태도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강경파가 당선되면서 의협선거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② 6명 후보 모두 ‘문재인 케어 저지'를 외쳤다

선거 출마자는 모두 6명이었다. 기호 1번 추무진 현 대한의사협회 회장, 기호 2번 기동훈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기호 3번 최대집 전국의사총연합 상임대표, 기호 4번 임수흠 의협 대의원회 의장, 기호 5번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 기호 6번 이용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등이다.

각 후보자들은 정부의 ‘문재인 케어’를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공통적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환자가 100%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를 없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지만, 의사들은 건강보험 진료의 원가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 결정이나 진료비 심사에서 자유로운 비급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의사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이를 반영한 듯 후보들 모두 ‘투쟁’을 선거전략으로 들고 나왔다.

최대집 후보는 ▲의사 회원 권익 강화 ▲의사 면허권 수호 ▲건강보험정책 현안 개선 ▲건강보험정책 구조개선 ▲의협 내부 개혁 및 역량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표적인 세부공약으로는 ‘비급여의 급여화 전면 저지와 예비 급여 철폐’, ‘건강보험 수가 현실화’, ‘의약분업 제도 개선’, ‘한방진료 자동차보험 폐지’ 등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 저지를 제외하곤 공약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문재인 케어 저지가 이번 의협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③ 최대집 후보는 가장 강력한 ‘투쟁활동가’

최 회장 당선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국의사총연합 조직국장, 의료혁신투쟁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국의사총연합 상임대표와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이며, 경기 안산시에서 최대집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 당선자는 극우 보수단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린 전력이 있다. 자유통일해방군 상임대표이자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와 석방을 주장하며 수차례 태극기집회에 참여했다. 유튜브 채널 ‘최대집의 지하통신’을 운영하고 있으며,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빨간 우비는 타격 전문가”라며 “경찰 물대포에 의한 사망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대집의 지하통신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해 10월 28일 열린 ‘제28차 태극기혁명국민대회’에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공동 대표로 참석한 그는 촛불집회와 공산주의를 연결지었다. 최 당선자는 이날 연설에서 “촛불 1주년이라고 종북 좌익 세력은 반미 주장을 펼치며 대대적 집회를 펼칠 것”이라며 “촛불 혁명이라는 것은 적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왔는데 그 중심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 박근혜 대통령은 궐위 상황”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구출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며 싸우고 이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박근혜 탄핵반대 인사 중 한명이다. 

최 후보가 당선된 배경으로 우선 꼽히는 것이 ‘투쟁’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의료전문 매체인 데일리메디에 따르면, 최 후보는 다른 공약을 강조하지 않고 오직 문재인 케어 저지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확고한 목표 달성을 위해 상대를 예측하고 정확한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는 투쟁 전문가”라고 출마의 변을 밝힌 바 있다. .

최대집은 투쟁분과위원장으로 지난해 12월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합동설명회에서도 ‘의료를 멈춰 의료를 살리겠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쟁을 전면에 내세웠다. 의사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의료계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투쟁위원장을 맡은 것도 ‘투쟁 전문가’로의 이미지를 강화했다는 평이다. 후보간 핵심 공약이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투쟁력'를 가장 잘 보여준 최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전문의 자격이 없어 분과별 학회 활동이나 시도의사회, 개원의사회 등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최대집이 의료계 내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의협 비대위 투쟁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최 당선자는 중앙일보와의 당선 인터뷰에서 “다음 달로 예정된 상복부 초음파의 건강보험 적용을 취소하지 않으면 집단휴진, 총궐기집회 등의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④ '전의총' 출신 강경파 노환규 전 회장 전폭 지원

최 후보의 당선에는 노환규 전 의협회장의 공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최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힘을 실어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노 전 회장은 전국의사총연합 창립 초기부터 대표를 역임하며 이끌었다. 전의총 활동을 기반으로 대한의사협회 37대 회장에 취임했지만, 취임 2년 만에 의협 대의원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독단적 조직운영과 투쟁일변도 대책에 회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노환규 전 회장과 최대집 현 회장을 배출한 전의총은 2009년 의협이 개원의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만에서 시작됐다. 의사단체 중에서도 우파적 정치적 색깔이 강하며 정부정책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단체다. 전의총은 제약회사에 후원금을 강요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 환자단체와 충돌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MRI 필름’으로 알려진 영상 속 주인공이 실제 박 시장의 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발표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전의총은 실행목표로 ▲요양기관강제지정제 철폐 ▲의약분업 선택분업제 관철 ▲의료수가 현실화 ▲원외처방약제비환수 폐지 ▲불법 실사 폐지 ▲진료권 보호 ▲대체조제 불가 ▲심평원의 부당한 삭감 심사 및 환수 제도 철폐 등을 내세우고 있다. 모두 개업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이다.

노환규 전 회장은 최대집 현 회장과 닮은꼴이다. 노 전 회장은 2013년 정부의 원격의료와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며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칼을 자신의 목에 들이대며 정부 비판 연설을 강행할 정도로 대정부 투쟁성이 강한 인물이다. 노 전 회장은 최 당선인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2018년은 의료계를 송두리 째 뒤흔드는 관치의료 문케어가 추진중이다. 최대집을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노 전 회장을 중심으로 전국의사총연합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노환규 아바타'인 최대집이 회장에 뽑히게 되었다.

전의총은 개표 하루 전날 최 후보의 당선은 물론 후보별 순위까지 정확히 맞췄다. 전의총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뛴 결과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노 전 회장과 전의총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렸다.

살펴본 바와 같이 최대집의 당선 배경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전체 회원 중 5% 지지만 받아도 당선될 수 있는 의협 선거제도의 취약점, '문재인 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과 불안, "감옥에 갈 각오로 문재인케어를 저지하겠다"는 최대집의 호소와 그간 보여준 대정부 투쟁력, 마지막으로 역시 강경파인 전의총과 노환규 전 의협회장의 전폭적 지원이다. 최 회장은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없다며 총궐기와 집단휴진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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