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 있는 나라가 한국과 잠비아 뿐이라고?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03.30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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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잠비아뿐이다."

최근 조선일보에 나온 주장이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3월 22일 조선일보 뉴스사이트인 조선펍에 '토지공개념제도 있는 나라는 잠비아뿐... 헌법에 도입하면 사회주의국가 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칼럼의 핵심 주장은 아래와 같다. 

'토지공개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아프리카 잠비아 말고는 대한민국뿐이다. 그래서 김정호 박사는 “대한민국 국민은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말로 ‘토지공개념’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략) 토지는 민간재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려고 한다.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설명할 필요 없이 시장경제국가 대한민국을 사회주의로 끌고 가고 있다. 

정말 토지공개념을 도입한 나라는 전 세계에 잠비아 밖에 없을까? 박동운 명예교수는 이 내용을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이 저술한 <땅은 사유재산이다:사유재산권과 토지공개념>이라는 책에서 봤다고 했다. 이 책은 토지공개념과 이를 처음 주창한 미국 경제학자 헨리조지를 비판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이 책의 176페이지를 보면 '잠비아 같은 나라'라는 챕터가 있다. 박 교수가 주장하는 바와 일치한다. 

그러면 정말 토지공개념이 해외 다른 국가에는 없는지, 헌법에 들어간 나라는 한군데도 없는지 살펴보자.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은 한국식 조어다. 지공주의(地公主義), 조지주의(Georgism)로 지칭되기도 하면 Land value taxation (LVT)를 가리킬 때도 있다. LVT는 한국식으로 정의하면 토지초과이득세다. 사용하지 않는 토지의 지가 상승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현행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대통령 개헌안

제128조 ①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과 생활의 바탕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②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추가된 부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이 포함됐지만 그 단어 자체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 헌법에 들어간 말이 토지공개념이든, 조지주의든, LVT든 뭐가 됐든 간에 그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토지의 공공성과 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와 내용이 중요하다.

그럼 이런 내용이 들어간 해외 헌법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 헌법 제 15조는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정도를 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공유재산 및 공동관리 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토지 뿐 아니라 천연자원과 생산수단마저도 공유재산으로 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한다. 박 교수 관점에서 볼 때는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다.

독일 헌법 제 15조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을 살펴보자. 남아공 헌법 제 25조는 재산권을 인정하지만 특별한 경우(공공의 목적 또는 공익을 위한 경우)에 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 5항은 '국가는 가용자원의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부동산 접근 권한을 공평하게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입법 조치 및 기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적어 놨다. 토지공개념이란 단어는 없지만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인 제한'이라는 핵심 주장이 들어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

 

오스트리아 헌법은 토지개혁을 헌법에 명시했다. 제 12조에 따르면 토지개혁에 관한 입법은 연방이 담당하고 시행규칙 제정과 집행은 주(州)의 소관이다. 2항은 '(토지개혁) 평의회의 설치, 업무 및 처리절차 그리고 토지개혁 업무를 맡을 관청의 설치를 위한 기본 원칙은 연방법으로 정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법률을 통해 토지개혁과 토지의 공평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헌법

 

아일랜드 헌법 제 10조는 "아일랜드에 속한 모든 토지와 광산, 광물 및 용수는 국가에 속한다'고 명시한 뒤 '국가에 속하는 재산의 관리와 해당 재산의 임시 또는 영구적인 이전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조항이 법률로 제정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토지의 공공성'이라는 조항은 들어가 있지 않지만 토지 및 천연자원을 국가가 통제 관리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우파들이 보기엔 사회주의나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헌법

이탈리아 헌법에도 토지공개념이 적혀 있다. 제 42조는 개인의 재산(property)은 보호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수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Property는 소유물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부동산(Real Property)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탈리아 헌법

스페인 헌법 제 33조도 법에 따른 적당한 보상이 주어지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유재산을 '박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페인 헌법

이처럼 세계 각국의 헌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유재산(특히 부동산)을 제한할 수 있다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헌법에는 삽입되어 있지 않지만 각 주별로 법을 통해 토지공개념을 실현해 왔다. 근대적 토지공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였다. 영남대 한동근 경제학과 교수는 '토지공개념의 역사와 현실:미국 토지공개념의 실천사례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토지공개념을 실현해왔던 방식을 설명했다. 미국은 18세기말 건국초기부터 토지공개념을 조세제도에 도입했고 지방분권 확립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독립적으로 토지공개념을 실현하는 법안을 실행중이다. 이밖에 싱가포르와 홍콩은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중이며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이스라엘 등도 토지공개념을 부분적으로 적용중이다. 

뉴스톱의 판단

"토지공개념을 실시하는 (혹은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잠비아 뿐"이라는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의 칼럼은 틀렸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이나 법률에 구현해 시행중이다. 박 교수는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이 쓴 책을 인용하며 매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 관련 내용을 인용하면서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박 교수의 칼럼 마지막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라고 친절하게 적어놨다. 틀려도 조선일보 책임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동안 토지공개념을 줄곧 반대해왔던 조선일보가 이 칼럼을 게재한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관계를 검증하지 않은 책임은 박 교수 뿐 아니라 조선일보에게도 있다. 조선일보 칼럼의 주장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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