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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세종시 설계를? 게임은 재미가 우선이다[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의 현실적용과 한계

‘심 시티’를 대체한 도시 시뮬레이션, ‘시티즈: 스카이라인’

가상의 공간에 내 마음대로 도시를 설계하고 지어 본다. 지어진 도시는 사람들이 들어와 일하고 살며, 교통 체증으로 도시가 막히기도 하고 산업시설 때문에 오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병원과 치안시설 같은 기초 요소가 부실하면 주민들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만족도와 땅값을 향상시켜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게임의 이름은 무엇일까?

조금 오래 된 사람들이라면 ‘심 시티’를 떠올릴 것이지만, 2018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심 시티’보다 앞서 떠오르는 이름은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다. 사실상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의 시조였던 ‘심 시티’ 시리즈는 2013년의 신작에서 혹평을 받으며 몰락했다. 별명이 ‘심 읍내’ 일 정도로 좁은 맵은 향상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도시 운영이라는 느낌을 제대로 주지 못해 전작들의 명성을 따르지 못했다. 원조의 몰락을 대체한 것은 2015년의 ‘시티즈: 스카이라인’ 이었다.

‘시티즈: 스카이라인’은 ‘심 시티’의 몰락 시점에 출현하여 도시 시뮬레이션 장르의 멸망을 막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원조 시리즈의 최신작이 미처 그려내지 못한 많은 점들을 구현해 낸 ‘시티즈: 스카이라인’ 은 ‘심 시티’ 시리즈에 실망한 플레이어들을 성공적으로 흡수해 냈다. ‘심 시티’ 시리즈들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려낸 이 게임은 이용자 수의 증가와 함께 직접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각종 모드들이 덧붙으면서 점점 더 발전했고, 이제는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도시 시뮬레이션의 대명사로 자리했던 ‘심 시티’의 자리를 꿰찬 것으로 보인다.

게임을 활용한 정책제안 이벤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러한 점이 가장 두드러진 최근의 사례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관하는 ‘Smart 도시시뮬레이션 경진대회’다. 세종시의 5-1 생활구역의 건설에 시민참여를 포함하기 위해 열리는 이 대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제 세종시의 특정 구역에 대한 건설계획의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공모접수를 위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로 선정된 것은 전용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아닌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이고, 그 대상은 ‘심 시티’가 아닌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다. 도시시뮬레이션의 중심이 바뀐 것이다.

공모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시티즈: 스카이라인’ 게임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공모전을 위한 할인 프로모션도 연계하고 있다.) 그 다음 공모전 홈페이지를 방문해 실제 세종시 대상구역을 재현한 맵 데이터를 다운받아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주어진 구역에 자신이 구상하는 도시구역을 건설하고, 완성된 도시의 세이브 파일, 사용한 모드, 에셋 파일들을 같이 제출해야 한다. 물론 별도로 구상 콘셉트를 설명할 수 있는 별도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필수제출 자료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관하는 스마트 도시시뮬레이션경진대회 홈페이지.

아직까지 현역 게임으로 분류될 수 있고 많은 플레이어들이 즐기고 있는 게임이 정책제안의 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언론들이 오락 용도의 게임도 실용적인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테마로 삼아 이 뉴스를 다뤘는데, 이러한 접근은 물론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게임매체를 너무 실용성 측면에서만 다룬다는 맹점 또한 존재한다.

유희목적으로서의 게임 매체가 갖는 한계에 대하여

게임은 어쨌거나 유희를 근본 목적으로 삼는 매체다. 대중문화 속에서 게임의 가치는 대체로 재미의 유무에 의해 매겨진다. 물론 매체라는 측면에서 재미 대신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메시징 중심의 게임들도 적지 않으며 그러한 경우에는 재미가 아닌 쪽에서의 가치를 평가할 수도 있고 또 그런 가치평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게임의 재미 유무가 아니라, 근본에 자리하는 유희적 목적 때문에 발생하는 본질적인 전제가 일부 간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티즈: 스카이라인’ 은 대중 유희를 위해 발매된 상업 게임이고 그렇기에 같은 소프트웨어라 할지라도 도시의 설계와 시뮬레이션을 현실의 설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와는 차별점을 갖는다. 만약 현실 도시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중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게임은 그것을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제한된 컴퓨팅 자원 하에서 하나의 도시가 돌아가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작동을 만들어내는 여러 요소 중 낮은 우선순위 요소들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논리와 규칙으로 만들어지는 게임 속 세계는 가상의 영역 안에서 그럴 듯 하게 돌아가야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요소들의 수는 특히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더 많은 것들의 생략을 요구하며, 이 때 특정한 요소의 선택과 배제는 시대별로 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심 시티’ 시리즈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다. ‘심 시티’ 의 초기작에는 없었던 쓰레기 문제는 시리즈가 지속되고 시대가 변해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지고 다양해지면서 점점 게임 규칙의 중심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단순히 쓰레기 하치구역을 만들고 주변 오염이 심해지는 정도로 처리되던 게임 속 쓰레기 문제는 최종작에서는 쓰레기 수거차량이 도시에 몇 대 배치되는지에 따라 가정에 남는 쓰레기의 지속시간이 위생 문제로 연결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거 차량이 몇 대 없는 상황에 교통체증마저 심해지면 각 주택 곳곳에 쌓이는 쓰레기가 질병의 원인이 되어 도시 보건상태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 시티’ 최신작의 쓰레기 수거 규칙은 꽤 설득력이 있지만 그러한 규칙이 없었던 시절의 작품들을 도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각 시리즈는 각각의 규칙에 대한 관점으로 나름의 도시를 재현하고 있으며, 적어도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 안에서만큼은 자체적인 규칙에 의해 완결성을 부여받는다. 지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가 굳이 없어도 게임 속 도시는 온전히 돌아간다는 뜻이다.

게임 '심 시티'에서 건물을 짓기 위한 땅가치를 표현한 모습. 모든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대체로 땅값의 상승이라는 주제를 게임 규칙의 기본구조 안에 포함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문제 등이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게임의 규칙은 이러한 점은 잘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분히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해 도시설계 공모전에 사용되는 ‘시티즈: 스카이라인’ 또한 게임 공간 안에서의 내적 완결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실제 도시환경에 대한 적절한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도시의 땅값이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구 건물의 철거-재건축 과정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사회문제는 굳이 다뤄지지 않을 것이지만, 게임 속 도시라는 가상 공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완결성을 갖춘 채 잘 돌아간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완결성은 그래서 어디까지나 가상공간에 한정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 물론 그 어떤 매체와 이론도 현실 세계를 그대로 모사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은 더더욱 재미라는 주제를 향하고 있기에 더욱 강한 추상과 생략이 가능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없는 내적 완결성을 갖춘다.

비록 정책제안의 도구로 게임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게임을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게임으로도 도시를 설계할 수 있어요!’ 같은 단순 감탄사로서의 의미는 아니다. 공사의 제안설명서를 살펴보면, 1차 제안은 문서로 된 아이디어 제안이며 2차 제안에 게임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 그저 게임만으로 제안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재미는 재미의 영역에, 실용은 실용의 영역에

재미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축약과 생략으로 완성된 게임의 세계는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이 게임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게임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게임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 안에 여전히 갇히는 이야기인지라 인식 개선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유희활동이라는 사실 자체를 등한시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세종시 정책제안에 게임이 활용된다는 사실은 그래서 게임으로 도시설계가 가능하다는 의미로서보다는 누구나 손쉽게 도시설계라는 방식을 간단하게나마 체험해 보고 큰 맥락에서의 제안을 해볼 수 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좀더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러한 이벤트는 말 그대로 간단하고 흥미로우며 누구나 손쉽게 해볼 수 있는 이벤트이지 이를 심각하게 게임을 이용한 정책제안으로 확대해석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벤트의 주최자인 공사가 제공하는 안내문에서는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과 대안이 명확하게 자리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사가 주최하는 이벤트를 가지고 게임으로 세계를 재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확대해석이며, 게임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는 주장일 수 있다. 게임과 시뮬레이션이 현실에 대해 갖는 차이는 조금 더 명백해질 필요가 있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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